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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부부를 다시 정의하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소통을 위해 내 생각을 내려놓는것
그것이 바로 부부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LOVE' 가 사랑임을 아는 것은 그 단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 입력 2023.10.27 06:30
  • 수정 2023.10.27 07:26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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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이 만나 하나가 되어 가는 모든 과정을 부부라고 한다 ⓒpixabay 
▲ 둘이 만나 하나가 되어 가는 모든 과정을 부부라고 한다 ⓒpixabay 

건강하게 첫 아이를 출산하고, 한참 아이 키우는 재미와 신혼 재미에 빠져 있어야 할 지영씨는 상담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결혼도 후회되고, 이 사람을 만난 것도 후회되고, 자신이 너무 바보 같다고 울먹였다.

세 남매 중 큰딸로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보다는 부모님이 시키는 것을 하면서 “착한 딸”이라는 칭찬을 들어왔고, 동생들에게도 모범이 되는 언니, 누나로 살아왔다. 지영씨 아버지는 권위주의적인 데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로 존댓말은 물론이고 아버지가 집에 오기 전에 그 누구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말이라면 순종하면서 자녀들 역시 자신처럼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아버지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를 기대했다.

이렇게 조심하면서 지냈음에도 지영씨 아버지는 가끔 화를 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응원이나 격려 한마디 없으시다가 지영씨가 시험을 못 봐서 성적이 떨어졌거나, 엄마가 아버지의 기분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을 때였다. 물론 아버지의 화는 억지에 가까웠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를 탓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자라다 보니 지영씨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식이 습관화되어 버렸고,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데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는데, 호방하고 화끈한 데다가 무조건 지영씨 편을 들어주는 모습이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누가 부탁을 하면 거절도 못 해서 속앓이를 하던 지영씨에 비해 지영씨 남편의 첫인상은 야무지고, 강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남편이 옆에 있으면 세상 무서운 것도 없고, 어떤 말도 당당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뭐 어때서, 괜찮아.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지”였다.

 ‘그래, 이 사람 곁이라면 나답게 살 수 있을 거야!’

그 믿음 하나로 남편과 결혼했는데, 결혼 이후 남편은 달라졌다. 아니 지영씨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어 했던 아버지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지영씨가 하루 종일 집 안 청소며 아이 돌보느라 힘든데도 집에 오면 따듯한 밥에 항상 새로운 반찬과 국을 원했고 육아와 살림은 전혀 돕지 않았다.

"너처럼 유난 떨지 않았어" 아내를 비난하는 남편의 말

아이 돌보는 게 힘들다고 하면 “아이를 너 혼자만 키워? 우리 엄마는 세 남매를 키웠어도 너처럼 유난 떨지 않았어…. 남들은 나가서 돈도 벌고 애도 키우는데 넌 애만 키우잖아!”라며 지영씨를 몰아세웠고, 시간이 갈수록 지영씨를 무시하는 말과 행동은 점점 심해져 갔다. 가끔은 힘들여 차려놓은 밥상 외에 갑자기 다른 메뉴를 요구하면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버럭 화를 내거나 욕을 하기도 했다.

▲ "너처럼 유난 떨지 않았어" 배우자를 비난하는 남편의 말 ⓒpixabay
▲ "너처럼 유난 떨지 않았어" 배우자를 비난하는 남편의 말 ⓒpixabay

남편이 처음 자신에게 욕하는 것을 들었을 때 지영씨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잘못 들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또렷하게 귓전을 때리던 그것은 틀림없는 욕설과 비난, 그리고 무시였다. 하지만 남편에게 왜 욕을 하느냐고, 왜 별일 아닌 것에 화를 내느냐고, 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묻지 못했다. 지영씨는 남편의 모습에서 엄마에게 화를 내던 아버지를 보았고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린 시절 충분히 채워지지 못한 욕구를 상대방을 통해 채울 거라 기대하면서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  눈치 보는 사람은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만나고, 조용한 사람은 활달한 사람을 만나고 배를 곯아 본 사람은 먹고 살 걱정 없는 성실하고 밥 잘 챙겨주는 사람을 만나고, 심리적으로 허기진 사람은 따듯한 사람을 만나 위로를 받고 그 위로가 평생 자신에게 향할 거라고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결핍을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상대방이 무엇을 채워주고 있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기분 여하에 자신의 행복을 맡기고, 상대방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자신의 가치를 매긴다.

▲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스스로 뿐 ⓒ pixabay
▲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스스로 뿐 ⓒ pixabay

남편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을 때 세상 무서울 게 없던 지영씨는 이제 남편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졌고, 남편만 곁에 있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시간이 남편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고, 남편이 자신을 바라봐 주던 시선 안에서 가치 있다고 여겼던 자신이 남편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짐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불행해졌지만 남편은 바뀔 생각이 없다. 아니 바뀔 이유가 없다. 남편은 자신이 불편하지 않고,  세상 어떤 사람도 타인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상담에 찾아온 지영씨는 상담 안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아버지의 분노 앞에서 자신을 감싸주지 않았던 힘 없는 엄마를 만나고, 잘해야 된다는 각오 하나로 눈물을 삼키던 자신을 만나면서 가족, 사랑, 안전, 역할에 대해 변화보다는 참는 것이 더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자신이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어떤 말로 위로를 얻고 어떤 말에 용기가 생기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만약 알아줘야 한다면 그건 자신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하고, 자신도 잘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사회성이고, 자존감이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연인이 되고, 지인이 되고, 또 부부가 되었기에 서로를 알아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 모습은 혼자만의 언어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독재, 불통과 다를 게 없다.

지영씨는 남편에게 자신은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에게 욕을 하는 상황이 너무 무섭고 행복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남편 역시 지영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 들었으면서 듣지 않은척하는 사람, 타인의 말에 귀 닫고, 눈 감아 버리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겁쟁이 임을 들킨 것이고, 변화하기 싫은 고집불통임을 인정하는 것이며, 외로움과 친구 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상대의 언어를 배울 때 사랑이 시작된다 ⓒpixabay
▲상대의 언어를 배울 때 사랑이 시작된다 ⓒpixabay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며 살아온 세월만큼 서로를 이해하고, 가정이라는 따듯한 울타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소통,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LOVE' 가 사랑임을 아는 것은 그 단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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