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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여양중 역사 탐방] 4‧3평화공원에서 그날의 기억을 되살리다

기억의 자살을 막는 방주와 같은 곳, 제주4‧3평화공원
역사 탐방은 과거와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숨결 같은 것

  • 입력 2023.11.07 07:05
  • 수정 2023.11.07 07:25
  • 기자명 김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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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양중, 사제동행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탐방하다.
▲ 여양중, 사제동행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탐방하다.

제주4‧3평화공원은 4‧3으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당시 제주도민의 지울 수 없는 핏빛 상처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장소이다.

4‧3 대하소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은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역사가 없는 곳에는 인간의 존재가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주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제주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기억의 자살’이라고 불렀습니다. 공포에 질린 섬 주민들이 스스로 기억을 망각으로 들이쳐서 죽이는‘기억의 자살’인 것입니다”고 일갈하였다.

4‧3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들추다

5일 여수 여양중학교는 사제동행(12명)으로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았다. 이어 그날의 진실을 기억하기 위하여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1층 영상관에서 4‧3과 관련된 영상을 시청하며 근대사의 희비극을 개괄적으로 이해하였으며 본격적으로 1전시실부터 해원의 퐁낭까지 둘러보며 4‧3의 역사를 한 장 한 장 들추어 보았다.

역사의 동굴, 4‧3 당시 피신처로 쓰였던 동굴을 모티브로 조성된 입구를 지날 때 짓누르는 중압을 느낄 무렵 하얀 비석, 백비(白碑)가 눈에 띄었다. 제주4‧3은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등으로 불려오면서 아직까지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했다. 백비는 바른 이름을 찾아줄 것을 울부짖는 듯했다.

해방과 좌절을 고스란히 반영한 흔들리는 섬, 2전시실에서는 해방 전 국제정세와 제주도, 해방 이후 도민들의 자치 열망, 4‧3의 도화선이 된 1947년 3‧1 발포사건, 3‧10 총파업과 탄압의 사건들이 1948년 4‧3봉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보았다.

무장봉기와 분단 거부로 인하여 바람타는 섬, 3전시실에서는 1948년 4월 3일 새벽에 일어난 무장봉기의 발생과정과 배경, 향후 초토화 작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5‧10 단선‧단정 반대 사건 등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였다.

▲ 백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여! 나에게 올바른 이름을 지어 다오.
▲ 백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여! 나에게 올바른 이름을 지어 다오.
▲ 국가권력에 희생된 민초들의 모습
▲ 국가권력에 희생된 민초들의 모습

무슨 이유에선지 가슴이 시렸다

초토화와 학살을 그려낸 불타는 섬, 4전시실에 들어섰을 때는 무슨 이유에선지 가슴이 시렸다. 초토화 작전과 그 이후 한국전쟁 기간까지 제주에서 자행된 학살의 면모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희생자들의 죽음을 다양한 형상의 아트워크로 표현했는데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날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였다.

후유증과 진상규명운동의 공간, 5전시실 평화의 섬에서는 4‧3후유증, 민간에서 시작된 4‧3진상규명운동, 2000년 1월‘4‧3특별법’제정, 진상 조사보고서 확정, 대통령 사과, 4‧3유해 발굴 등 4‧3이후부터 현재까지를 꼼꼼하게 파악하였다.

기억의 터널 6전시실을 지나며 좌우 벽면과 천장에 4‧3희생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어 4‧3의 기억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으로 다시 생각하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서 눈시울이 붉힐 수밖에 없었다.

▲ 기억의 터널을 지나며 인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다.
▲ 기억의 터널을 지나며 인권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다.
▲ 전시실 관람 후 마음을 담아 글을 써 퐁낭에 걸다.
▲ 전시실 관람 후 마음을 담아 글을 써 퐁낭에 걸다.

각자의 마음 담은 편지...퐁낭에 걸다

마지막으로 해원의 퐁낭과 마주쳤다. 퐁낭은 팽나무의 제주말로 동네 주민들이 나무 그늘 아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던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그것을 모티브로 이 해원의 퐁낭이라 이름 지었는데 모두 함께 4‧3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며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여양중학교는 마지막 장소인 해원의 퐁낭에서 각자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서 퐁낭에 걸었다. 김아현 학생(2학년)은 “제주 4‧3이 이렇게 아픈 역사인지를 몰랐다. 국가의 역할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늦게나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고 말했으며, 허은별 학생(3학년)은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제주도민의 10분의 1을 죽였단 말인가? 이런 동족상잔의 비극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전시관 관람을 마친 여양중학교 학생은 실외에 조성된 위령탑, 각명비, 귀천, 위령제단, 위해봉안실, 행방불명인표석, 비설까지 돌아보며 4‧3 당시 발생한 민간인 학살과 제주도민의 처절했던 삶을 기억하며 진실과 용서 그리고 화해와 상생의 소중함을 떠올렸다.

여양중학교 김갑일 교장은 “이번 탐방을 통해 제도4‧3의 아픔을 공감하였다. 내년에는 전교생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겠다. 그날의 역사를 기억의 저장소에 담아 간직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4‧3의 온전한 아픔을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바른 삶을 지키는 일이다‘고 역설하였다.

▲ 감명비를 돌아보며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위로하다.
▲ 감명비를 돌아보며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위로하다.
▲ 위령탑, 대립을 넘어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승화하다.
▲ 위령탑, 대립을 넘어 화해와 상생의 어울림으로 승화하다.

순이 삼촌의 작가 현기영은 "끊임없이 4‧3을 재기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재기억이란 지워졌던 역사적 기억을 되살려 끊임없이 되새기는 일, 대를 이어 미체험 세대가 그 기억을 계승하는 것을 말합니다"고 말했다.

역사 탐방은 과거와 미래의 삶을 이어주는 숨결 같은 것이다. 결코 역사를 후손들에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있는 그대로 안내해서 통찰하게 하고 기억하게 해야 한다. 더불어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올곧은 정신으로 역사를 대면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주체성과 존재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기억의 자살을 막는 방주와 같은 곳, 제주4‧3평화공원을 한 번쯤 가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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