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지내라고 큰아들, 큰며느리 있는 거지!”
결혼 생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시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평소 무릎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운동하면서 양쪽 무릎 인대파열로 45도 이상 구부리기도 힘들고 통증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 제사였고 제사 비용만 드리고 시어머니께 양해를 구하러 갔더니 “제사 지내라고 큰아들, 큰며느리 있는거지 왜 작은 것들한테 부담을 주냐?” “제사 안 지낸다고 어찌 되겠냐? 하시며 시어머니께서는 비아냥거렸다. 그 말을 들으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도 참 서러웠다.
무릎이 어떻게 얼마나 아픈지 물어보는 건 놔두더라도 똑같은 자식인데 큰아들, 큰 며느리라며 굴레를 씌우며 압박하는 시어머니에게 질리며 한동안 멘붕에 빠졌다.
그동안 모든 일에 큰 며느리는 당연했고 작은 며느리들은 어찌 그럴 때만 갑자기 몸이 안 좋고 일이 생겨도 그냥 넘어갔다.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내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상처가 되살아났다.
10여년 전 친정아버지가 쓰러지셨고 의식도 없이 3개월을 중환자실에 계시다 돌아 가셨다. 그 당시 내 아이들이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고 언니 아이들도 거의 또래였다. 언니와 내가 하루씩 번갈아 가며 아이들을 맡고 한 명은 병간호했다.
그때 시어머니 ”너희 친정은 참 희한하다. 아들, 며느리들은 다 뭐하고 딸들이 간호하냐?“ “다음에 나도 아프면 우리 딸한테 간호하라고 할거냐? 어린 나이에 그때도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나중에 어머니 늙으면 봅시다’ 하며 시간이 흘렀다.
허리뼈 골절로 고생했던 시어머니
얼마 전 시어머니가 허리뼈 골절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당신은 통증으로 힘들고 며느리들은 반찬 해다 나르느라 청소하러 다니느라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내 마음이 더 힘들었다.
‘정성을 다해? 말아? 대충 해?’
이런 내적 갈등이 더 심했다.
대접도 못 받으면서 내 할 도리를 다하며 몸과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내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가 있는거냐, 아니면 미련한거냐?“
시어머니는 기억도 못 하겠지만 그 옛날 왜 그렇게 모질게 말했냐며 가끔은 묻고도 싶지만 그 조차도 싫다. 지금에서야 나 혼잣말로 되뇌어 본다.
”어머니, 그 옛날 저희 친정아버지 병원에 누워 계실 때 꼭! 그렇게 모질게 말씀 하셔야 했나요?“
- 햇살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