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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부적응과 갈등...폐쇄형가족을 고발합니다

'가족이 다 같이!!' 를 외치기 전에 존중부터
가족은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긁어 부스럼 만드는 폐쇄형 가족

  • 입력 2024.09.22 09:35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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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Pixabay
▲ ⓒ출처: Pixabay

아버지가 정한 규칙과 시댁의 법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하소연하는 그들에게 오늘은 ‘폐쇄형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지난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시댁에 가는 문제, 친정 식구들과의 갈등으로 상담을 찾는 분들이 계셨다. 도저히 시댁의 고집을 이해할 수 없고, 남편의 태도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그뿐만 아니다. 중간고사가 눈앞인데 무조건 할아버지께 가야 한다는 아버지 때문에 답답해 미치겠다고 호소하는 학생도 있다. 공부면 공부, 친구 관계, 어른들에 대한 예의까지 아버지가 정한 규칙을 어긴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상담하다 보면 개인 연락처를 묻는 분들이 계신다. 그중에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싫지만 통제하고 싶은, 하지만 자신의 양육 방식에 확신이 부족한 엄마들은 상담사의 말을 앞세워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개인 연락처를 물어오기도 한다.
“상담 선생님이 그러셨는데….”라고

자녀를 키워본 한 사람으로 그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단순한 호의와 염려가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익히 경험해 본 후라 지금은 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최대한 알려주지 않으려고 한다.

초심 상담자였을 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에 개인 연락처를 알려줬는데, 이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해 왔고 당장에 해답을 내놓으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요구했다. 엄마가 보낸 문자를 보면 당초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약속했던 부분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음에도 나 역시 어머니가 의도한 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꼭 필요할 때, 위기 상황에만 연락하기!’
‘자녀를 통제하기 위한 방법을 요구하지 않기!’

하지만 어머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아이가 얼마나 미운 행동을 하는지 고자질하는 목적이 강했으며, 이렇게 미운 아이를 혼내 달라는 요청이 결론이었다. 상담이 종결된 후에도 계속되던 어머니의 문자는 결국 매우 나쁘고, 이기적인 상담사라는 타이틀을 얻고서야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렇게 강력한 경험이 있음에도 나는 지금도 가끔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게 된다. 세상에 잡고 의지할 지푸라기 하나 없을 때, 자살 위기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을 때 등이다.

▲ ⓒ 출처: Pixabay
▲ ⓒ 출처: Pixabay

민주는 자살이나 자해 시도가 없음에도 나에게는 위기 학생이었다. 그래서 언제든 힘들면, 속상하면, 문자를 보내라고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민주의 아버지는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이며, 어머니 역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 처음 민주를 만났을 때 그 나이답지 않은 행동과 대답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좋아하는 과목은?”
“양자역학이요”

“꿈꾸는 삶이 있니?”
“로마의 성당같은 삶이요”

대답을 했지만 한번에 알아듣기 힘든, 의도를 알기위해서는 두 번세번의 질문을 반복해야 겨우 의도와 의미를 알아챌수 있는 이런 대답으로 인해 민주는 친구가 없었다. 평생소원이 친구랑 파자마파티를 해보는 일이었고, 노래방에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불러보는 일이었다.

민주의 엄마도 아빠도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지 못하는 민주에게 상당한 불편감을 느끼고 있었고, 표현하고 있었다.

“뭐가 부족해서…. 그냥 먼저 말 걸고, 다가가고 그러면 되잖아!”

문제는 엄마가 이렇게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면 아버지가 덩달아서 야단을 치고, 비난을 퍼부으면서 민주는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기보다는 혼자 감추고 있다가 가출과 비행을 통해 답답함을 분출하고 있었다.

새벽에 차도를 혼자서 걸어 다니거나,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잠이 들거나,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다리 위에서 몸을 난간에 걸치고 흔들거나, 가출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까지 아이가 절박함을 호소하는데도 민주 부모님은 아이는 심정을 헤아리기보다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용돈을 끊어버리고, 핸드폰을 정지시켜 버리고, 집을 나가면 다시는 못 돌아올 줄 알라며 윽박질러댔다.

그런데 정작 민주가 가장 힘든 점은 바로 아버지만이 고집하고 있는 규칙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은 가족이 다 같이 먹어야 하며, 자녀의 용돈중에 방세를 꼭 내게했으며, 용돈도 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도 사 먹을수 없는 용돈이 적다고 호소하면 ‘안 먹으면 되지!’라고 얘기하고, 다른 친구들은 먹는다고 하면 ‘그렇게 경제관념 없는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마!’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친구와 잘 어울리길 바라고, 공부도 잘하길 바라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어서 가출한다는 민주의 소원은 친구들과 햄버거를 사 먹고, 방과후에 와플을 사 먹고, 노래방에도 가보고, 피자를 먹은후 똑같이 돈을 내 보는 것이다.

그 아버지에게 가족 식사가 어떤 의미인지를 물으니, 가족이라면 응당 하루 한 끼는 같이 밥을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고, 자신의 원가족도 그랬노라고 당당하게 얘기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시험 기간이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할아버지 댁을 반드시 방문해야 했다.

▲ ⓒ출처: Pixabay
▲ ⓒ출처: Pixabay

가족의 의미와 기능이 반드시 저녁을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 행위적인 것일까? 아이가 친구 문제로 고민하고,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건 ‘특이하고, 적응력이 부족한’ 부분으로 취급하면서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아버지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이런 행위가 바로 폐쇄형 가족이다.

폐쇄형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구조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소통은 없고, 독재가 존재하며, 힘의 차이가 분명해서 억울함과 분노가 쌓이며 반드시 희생양이 존재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부적응으로 가족이 점점 더 위태로워진다고 호소하지만 진짜 문제는 아버지의 징크스와 같은 가족 규칙, 가족 모두와 소통하지 못한 채 우기고 있는 아버지 자신임을 알아야 한다.

▲ ⓒ출처: Pixabay
▲ ⓒ출처: Pixabay

민주는 지금도 가출 중이다. 시댁 문제로 갈등중인 재은 씨는 이혼을 고민 중이며, 친정 식구들의 부당한 요구에 질릴 대로 질린 미영 씨도 가족과의 단절을 고민 중이다. 민주가 가출을 언제쯤 끝낼지 모르고, 재은 씨가 언제 이혼을 결정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불편하고, 불안하고, 서러운 날들이지만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집에서, 시댁에서, 친정에서 힘들어하느니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비단 민주네뿐만 아니라 가족마다 하나 정도의 규칙은 존재한다. 며느리의 에너지와 시간을 시댁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행위, 결혼한 자녀를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개입하는 행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보는 연습을 해야 할 사춘기 아들의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통제이며,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다.

‘우리 집은 반드시 식사를 가족이 다 같이 해야 한다.’
‘우리 집안은 한 달에 한번은 반드시 가족 모임을 해야 한다.’
‘가족 대소사는 반드시 며느리가 챙긴다.’
‘모든 집안 대소사는 장남이 챙긴다.’ 등등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해왔던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칙과 법은 최소한의 제약만 존재한다. 규칙과 법은 통제가 아니라 건강한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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