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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묘도, 이순신 최후의 전투를 바라보다

이순신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 "

  • 입력 2025.03.23 10:09
  • 기자명 황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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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도 봉화산 정상 ⓒ황수연
▲묘도 봉화산 정상 ⓒ황수연

묘도 답사를 시작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동아시아 최대의 전투이자 최후의 승전지, '노량해전' 전투를 준비했던 곳이 여수 묘도다.

명나라 진린 도독을 설득하여 조·명연합군 합동전선을 폈다. 묘도 봉화산 봉수대를 중심으로 여수 산단 쪽은 조선 수군이, 광양만 쪽은 명나라 수군이 맡았다. 이순신은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말라"고 호령하며 전투를 지휘했다.

섬의 형상이 고양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여수 묘도(猫島)는 임진왜란 막바지인 정유재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진을 쳤던 섬이다.

북쪽으로는 이순신대교로 광양, 남쪽으로는 묘도대교로 여수와 각각 연결된 곳이다. 작은 섬으로 묘읍, 온동, 창촌, 광양포, 도독의 5개 마을이 있다.

▲좌)조명연합수군 해전상황도, 봉화대입구 안내판 ⓒ 황수연 . 우)네이버지도를 이용해 편집한 지도 ⓒ오문수 
▲좌)조명연합수군 해전상황도, 봉화대입구 안내판 ⓒ 황수연 . 우)네이버지도를 이용해 편집한 지도 ⓒ오문수 
▲ ⓒ황수연
▲ ⓒ황수연

묘도를 중심으로 2번의 전투가 있었다. 왜교성전투와 노량해전이다.​ 왜교성전투는 정유재란 시기였던 1598년 9월 20일부터 11월 19일 노량해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조·명연합수륙군과 왜군이 순천 왜교성과 여수 장도· 묘도 일원에서 싸운 전투이다.​

노량해전은 11월19일 조·명연합수군과 왜군이 노량해협 및 현 광양만과 여수반도 동쪽 바다 일원에서 씨운 해전이다. 이 전투에서 왜선 500척 중 200여척이 분파되고 150여척이 파손됐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과 진린의 조·명연합수군이 대승을 거둠으로써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노량해전은 이순신 최후의 전투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왜군은 남해 방면으로 도망쳤는데 이순신 장군은 한 명의 왜적이라도 살아 돌아가면 반드시 또 쳐들어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추격전을 펼쳤던 것이다.

▲ 조명연합수군지였던 묘도 역사공원 표지판과 봉화대 올라가는 길 ⓒ황수연
▲ 조명연합수군지였던 묘도 역사공원 표지판과 봉화대 올라가는 길 ⓒ황수연

이순신대교 홍보관 가기 전, 광양만과 여수산단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묘도 봉화산 전망공원, 봉수대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간 올라가니 산 중간 정도에 작은 주차장이 있어 차를 주차했다. 20여 분을 걸으면 된다해서 만만하게 봤더니만, 평소 운동 부족인지, 맛난 점심을 과식해서인 몸이 무거워 20분이 버거웠다.

묘도 봉화산 정상에 왔다. 복원한 봉수대와 전망대 등이 있었고 주변 경관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실제 명나라 수군 도독(都督) 진린 장군이 주둔했던 도독마을, 이순신장군이 배를 감추어 둔 곳에서 유래된 창촌마을의 선장(船藏)개와 온동마을 뒷산에는 유두산성터가 있다고 한다.

▲묘도 봉화산 봉수대 ⓒ황수연
▲묘도 봉화산 봉수대 ⓒ황수연

봉수대를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확인해보니 봉(烽)은 밤에 봉화(烽火)를 올려 연락하는 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봉수대(烽燧臺)는 지형에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군사의 이동 사항이나 적의 침입에 대한 정치·군사 정보를 전해주는 그당시가장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한마디로, 적의 동태를 조기에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곳이다. 봉수대는 신호를 보내기 적합하도록 시야가 탁 트이는 산꼭대기에 설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대개 봉수대 사이에 10km 정도 거리를 두었다.

수원 화성에는 봉돈이라는 봉수대가 성곽에 설치되어 있는데 굴뚝(화두)간의 간격을 3~4m정도로 하여 10km밖에서도 5가지 신호를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봉화산 전망대와 답사팀 ⓒ황수연
▲봉화산 전망대와 답사팀 ⓒ황수연

비오는 날씨로 시야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아, 전투가 벌어졌던 노량 바다를 구름 속에서만 짐작할 수 있었다.

맑은 어느 날 다시 와서, 도독마을 등 묘도를 찬찬히 답사하리라 마음 먹고 예상치 못한 꽃타령 선물을 받고, 치열했던 왜교성전투와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노량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순신을 떠올려본다.

▲이순신대교 및 세계의 교량들에 대한 전시장이 있다 ⓒ황수연
▲이순신대교 및 세계의 교량들에 대한 전시장이 있다 ⓒ황수연
▲이순신대교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오문수기자와 고흥해설사들 ⓒ강지율
▲이순신대교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오문수기자와 고흥해설사들 ⓒ강지율

오문수기자가 곧 묘도에 전해지는 독특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묘도는 고양이가 쥐와 누룽지를 놓고 어느 것부터 먹을까 하는 형상이어서 큰 인물은 나지 않더라도 의식주만은 걱정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구전에 의하면 이상하게도 서씨(쥐 서) 성을 가진 사람은 살 수 없다고 하며 실제로 서씨 성은 한 세대도 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마을로 시집온 서씨 아낙네는 살아가지만, 서씨 성을 가진 남자는 패가망신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시름시름 아파서 죽거나 아니면 갑자기 사망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이름의 강력한 힘일까? 이름대로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내려오면서 이순신대교홍보관를 들러보았다.​

'날씨가 좋았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답사해야할 묘도를 떠나 의승군의 본거지인 흥국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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