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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거절당해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그 또한 배려의 일부다

친절한 얼굴의 무례함 ...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는 순간

  • 입력 2026.01.28 07:56
  • 기자명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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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 휠체어 대여․수거 서비스
▲ 여수시 휠체어 대여․수거 서비스

길에서 누군가의 ‘친절한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다. 말투는 부드럽고 표정도 온화한데,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는 순간이다. 도움이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행동이, 정작 당사자에게는 침범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얼굴을 너무 쉽게 ‘선의’라고 믿어버린다. 그리고 그 믿음은 때로 상대의 삶을 밀어내는 힘이 된다.

얼마 전 인도 위에서 휠체어를 탄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팔에는 힘이 있었고, 움직임에는 익숙함이 묻어났다. 그런데 지나가던 행인이 아무 말 없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제가 밀어드릴게요.”

그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대답도 하기 전에 휠체어는 움직이고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은 놀란 표정으로 “저 혼자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휠체어는 그의 의지와 다른 속도로 나아가고 있었다. 도와주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악의는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가장 당황하고 불편했던 사람은, 도움을 받는 쪽이었다. 그의 하루와 동선, 그리고 선택은 잠시 타인의 손에 맡겨졌다.

우리는 왜 이런 장면 앞에서 쉽게 멈추지 못할까. 장애인을 마주하면 종종 ‘도와야 한다’는 생각부터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생각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로 드러나지 않는 전제다.

‘저 사람은 혼자서는 못할 거야.’

‘내가 나서야 이 상황이 정리될 거야.’

이 전제는 상대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불편함을 빨리 해소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도움은 배려가 아니라 개입이 되고, 친절은 어느새 무례의 얼굴을 띤다. 상대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우리는 너무 쉽게 그의 자율성을 지워버린다.

비슷한 장면은 일상 곳곳에서 반복된다. 다리를 저는 이웃에게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질문, “어쩌다 그렇게 되셨어요?” 시각장애인을 보고 준비 없이 팔을 잡아 이끄는 행동이 그렇다. 궁금해서, 혹은 호의에서 나온 말과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상대의 삶을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일이 되고, 그 손길은 동의 없는 접촉이 된다.

사람의 몸과 삶은, 설명해야 할 사유도 공개해야 할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장애를 너무 쉽게 ‘정보’로 소비한다. 언제부터였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 얼마나 불편한지. 그러나 그 질문들 속에는 상대를 한 사람으로 만나기보다는, 하나의 사연으로 정리하려는 시선이 숨어 있다. 그렇게 정리된 순간, 그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 아니라 ‘이야깃거리’가 된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장애인을 대하는 기본 원칙은 의외로 단순하다. 존중, 그리고 동등함이다. 장애인은 언제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살아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앞서 나가는 친절이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선 태도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이 짧은 질문 하나에는 중요한 마음가짐이 담겨 있다. 상대의 의사를 먼저 묻겠다는 태도, 거절의 가능성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다. 도움은 요청받았을 때 가장 정확해지고, 허락받았을 때 가장 안전해진다. 거절당해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그 또한 배려의 일부다.

길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을 마주친다면, 밀어주기보다 공간을 넓혀주는 것이 더 큰 배려일 수 있다. 먼저 앞질러 가기보다 속도를 맞추는 것, 지나치게 묻지 않고 시선을 낮추는 것. 도움의 크기는 행동의 크기가 아니라, 상대의 선택을 얼마나 존중했는지에 달려 있다.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우리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느냐,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동등한 시민으로 보느냐에 따라, 친절의 의미는 전혀 달라진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순간, ‘같이’보다는 ‘위해서’를 선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움은 분명 따뜻할 수 있다. 그러나 묻지 않은 도움은 때로 가장 차가운 무례가 된다. 진정한 배려는 내가 해주고 싶은 것을 내미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묻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존중은, 생각보다 아주 작은 멈춤에서 비롯된다.

장애를 가진 이웃을 길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출 수 있을까. 먼저 손을 내밀기보다 질문을 건네고, 앞서 움직이기보다 기다릴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짧은 멈춤이, 서로를 동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 비로소, 친절은 태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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