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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부정선거와 여수의 살인선거

"세상을 바꾸려면 이제는 '총칼'대신 투표다"

  • 입력 2016.04.12 14:22
  • 수정 2016.04.15 06:36
  • 기자명 한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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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희생으로 지킨 민주주의 선거

‘3⋅15부정선거’하면 마산 김주열 열사가 떠오른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던 데모 때 실종됐던 마산상고 김주열의 시체가 눈에 총알이 박힌 채 마산앞바다에 떠오른다. 이를 분노한 시민들이 4월 12일 시위를 한 것이 많은 희생을 치른 민주주의 상징 ‘4⋅19 혁명’이 되었다.

김주열군의_시신
김주열 열사 시신(위키백과)

많은 희생을 가져온 ‘4⋅19혁명’이 꽃을 피우지 못하게 한 것이 곧바로 이어진 ‘5⋅16쿠데타’이다. 그 쿠데타의 주역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마산 앞 바다 ‘김주열 열사 표지석’에 참배하는 사진을 보았다. 격세지감이 들지만 다시 한 번 민주주의 꽃인 선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김주열 열사와 같은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에 앞서 여수에서도 ‘3⋅15부정선거’ 희생이 있었다. 지역 역사학자로 돌아가신 김계유 선생님께서 집필한 ‘여수여천발전사’에서 관련된 글이 있어서 소개를 한다. 정권 교체 희망을 생각할 수 있는 ‘4⋅13총선’을 앞두고, 여수에서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을 생각한다.

 

김종필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 스토리

315부정선거와 여수의 살인선거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통령으로 집권한 이승만은 날이 갈수록 정권욕의 화신이 돼 우의(牛意), 마의(馬意)까지를 동원시켜서 악명 높은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켜 억압과 탄압으로 독재정치를 감행하면서 12년 동안이나 집권해 왔다.

 그러면서도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일지기 우리 헌정사상 볼 수 없던 4할 사전투표와 3인조, 9인조에 의한 공개 투표를 자행하기 위해 전국에 걸쳐 일선 경찰서장의 독찰아래 정부 산하의 전 기관원은 물론 심지어는 그 가족까지도 선거운동에 동원하는가 하면 그밖에도 깡패 등 폭력배까지를 동원하여 전국을 공포분위기로 몰아 넣었다.

이때 야당도시로 이름 난 이 고장에서도 여수경찰서장 조광범의 지휘 아래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는데 특히 이 고장에서는 경찰의 사주를 받은 괴한들이 야당 선거 운동원을 타살하는 선거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 세인을 놀라게 했다.

여수여천발전사
지역사학자 김계유, '여수여천발전사'

 

즉, 3⋅15부정선거가 막바지에 이른 1960년 3월 9일 하오 7시 반 경 민주당 여수시당 문화부장 김용호(33세)와 동당 선전부장 김봉채가 교동에 있는 시당 사무실(덕일극장 모퉁이 집) 아래 층 계단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7~8 명으로 보이는 괴한들로부터 철봉, 유리병 등으로 난타 당해 제중병원으로 옮겼으나 10일 새벽 영시 김용호는 숨지고, 김봉채는 치료 끝에 회복되었다.

그런데 그 현장에는 2명의 형사가 있었다고 하여 그 배후가 주목되었는데, 다음 날인 10일 치안국에서 범인 정인석(가명)을 체포하고, 공범 체포를 순천지청 강상운 검사에 의하여 여수경찰서 사찰계 형사주임 정모 경위가 체포되고, 4월 30일에는 당시 여수경찰서장이던 조광범이 파면되었다.

또, 4월 30일에는 공범으로 지명수배 중에 있던 장모가 검찰에 자수했으며 그 동안 은신 중이던 조광범도 자수하여 광주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그는 검찰신문에서 “선거 기간 중 깡패를 사들인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상부의 지시에 의해서 도내 전 경찰이 똑같이 저질은 행위였다”고 폭로해 “서장이 40만환을 주고 여수와 광주에서 깡패를 사들였다”라는 항설을 시인했을 뿐 아니라 “사찰계 형사주임 정경위도 깡패들의 입을 막기 위해 자진해서 2만환씩을 주었다더라”는 말까지도 털어 놓았다.

그 뒤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귀국한 권투사범 박모도 공범으로 수감됐고, 광주깡패인 유모, 박모, 장모, 조모, 유모 등 일당 5명도 공범으로 체포되었는데 광주고법에서 내린 이들에 대한 형량은 다음과 같았다.

조광범 징역7년, 정모형사주임 징역5년, 정모 징역 5년, 박모 공소기각 징역5년, 장모 공소기각 징역5년, 조모 공소기각 징역5년, 류모 공소기각 징역3년, 박모 공소기각 징역3년, 손모 공소기각 징역3년, 류모 공소기각 형량미상
4.19혁명
4.19혁명 시위대(국가보훈처 블로그

 

419혁명과 제1공화국의 붕괴

1960년 3월 15일 밤 3⋅15부정선거에 참다못한 마산시민들이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데모를 벌이자 경찰에서는 발포로 이에 맞서 50 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런데 며칠 뒤 데모 때 실종됐던 김주열의 시체가 눈에 총알이 박힌 채 마산앞바다에 떠오르자 이에 분격한 마산시민들이 4월 12일 다시 거시적으로 데모를 벌였으며,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생들이 데모를 마치고 귀가 도중 관변 측에서 동원한 정치깡패에 의하여 집단습격을 받았다.

19일에는 이에 격분한 서울시민 2만 여 명이 경무대앞가지 밀고가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데모를 벌였는데 경찰과 충돌한 결과 183명이 사망하고 2,269명이 부상하는 일대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이렇게 되자 참다못한 국민들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궐기했는데 정부에서는 계엄령을 선포하여 이를 진압코자 하였으나 대세에 밀린 계엄군(사령관 송효찬)도 국민 편에 돌아서서 데모 군중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 최후의 보루를 잃은 이승만은 급기야는 4월 26일 하야를 성명하고, 4월 28일에는 이기봉 일가가 자살하여 제1공화국의 막이 내린다. (김계유, ‘여수여천발전사’ 중에서)

북한식당보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보도

대통령까지 나선 413 총선, 그만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우리는 지난 선거 때마다 ‘북풍’을 보았다. 현명한 시민들은 ‘양치기 소년’ 우화처럼 이제 더 이상 ‘빨갱이 선거’를 믿지 않았다. 얼마나 ‘선거의 여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안달이면 관권선거인 선거가 임박했는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선동을 할까? 이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시민 정신을 무시한 것이다.

종편과 정권이 나서서 야당을 이간질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1여 다야’ 구도를 즐기는 정치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마산의 ‘김주열 열사’와 여수의 ‘김용호 열사’ 같은 3⋅15 부정선거 희생자들, ‘4⋅19혁명’ 희생자들이 만든 민주주의 선거이다.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다면 시민들에게 경제도, 민생도, 정치도 없다. 세상을 바꾸려면 이제는 총칼이 아니라 시민들의 투표이다.

투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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