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원주건달과 부녀회장의 웅변

귀농일기(14)

  • 입력 2017.04.01 07:16
  • 수정 2017.04.01 07:29
  • 기자명 민웅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자윤

토론의 불씨를 살려놓자마자 건달 좌중은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살맛이 난다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강원도 원주에서 예까지 원정을 왔다는 원주건달이 벌떡 일어났다.

- 죄송합니다, 외람되게 한 말씀 올리지 않으면 오늘 제 뱃속에 모신 돈 선생(삼겹살을 말한다)이 부글부글 끓어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니까, 불가피하게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자고로 자연농법이란 것은 이곳 귀농 선진지인 화순에서도 익히 들어 알고 계실 줄 소생 사료되는 바입니다. 해서, 제가 그런 이론 나부랭이를 가지고 훌륭하신 여러 선배님들 앞에서 뭘 어쩌겠다는 뜻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것을 모두에 미리 양해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여기까지 나름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이고 있던 건달 좌중들이 서서히 소란의 기미를 띠기 시작했다.

- 뭔 말을 할라고 그란지는 모르겄는디, 결론만 비교적 간단히, 요약해갖고 말씀 좀 해붑시다이, 말 안해도 다 아는 야그니께.

침착하던 원주 건달도 예상외의 반응에 조금 당황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 예, 그러니까 우리 장일순 선생님이 그랬잖습니까, 혹시 장일순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면 애초에 말도 꺼낼 필요가 없을 것이니, 아, 거 ‘작은 노자’라 이렇게 하면서, 그 유명한 김지하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여러분 정도의 고매한 건달님들은 다 아실 테니까, 밥이 똥이고 똥이 곧 밥이다, 잡초는 없다, 이랬잖습니까,

지금 시대에 흙 마당을 만들어 유지한다는 것은 일단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백 퍼센트 꼴통이 아니라면 되지도 않을 이야기죠, 안 될 일에다 낑낑 거리다가 단 한 번밖에 없는 금생의 남은 세월만 다 까먹으면 안 되니까, 그런다고 해서 자갈을 깐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무슨 공사판도 아니고, 그래서 잔디를 좌악 깔아가지고 풀이야 나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잔디깎이 기계로 가지런하게 잘라놓으면 보기도 좋고, 아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푸릇푸릇한 자연이 마당에 이렇게 오색빛깔을 수놓는 것처럼 울긋불긋하게 펼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축복이다(그는 말끝마다 ‘자연’을 달고 산다), 이런 말씀입니다.

ⓒ 김자윤

그는 잔디 그 자체가 일단 자연 그대로고, 풀이란 것도 알고 보면 다 약초고, 그러다가 꽃을 피우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낭만주의 좌파다.

야생화와 산나물을 찾아 천지사방을 발품을 팔고 다닌다는 이 자는 원주 외곽의 어느 산 속의 외딴 곳에다 조그만 오두막을 손수 짓고서 그 후미지고 칙칙한 곳에서 홀로 산다고 했다.

듣다보다못한 동네 부녀회장이 손을 들고 나섰다.

그네는 젊은 시절에 이미 새마을 운동을 매우 우수하게 수행한 업적으로 새마을 근공 표창을 받았고, 마을에 전기를 끌어들이는데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마을 진입도로와 안길 포장도 모두 자신이 다 면사무소와 군청을 발이 닳도록 출입을 하고 연줄을 대서 수행한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고, 지금도 나이는 먹었지만 부녀회장직을 맡아서 날이면 날마다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오직 마을이 잘사는 데만 관심을 쏟고 있다, 고 버릇처럼 되뇌는, 반백의 머리에 부리부리한 안광에다 범접하기 힘든 위엄까지 갖춘 초로의 여인이었다.

강호에서는 내노라 하는 건달들이지만 부녀의 등장에 찔끔찔끔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 사람이 다 먹고살자고 농사도 짓고 하는 것 아니요, 잉, 

아예 대놓고 건달들을 휘둘러보며 말머리를 풀어간다.

- 농사가 한두 마지기도 아니고, 그 많은 전답을 관할 할랴, 자식들 멕여살릴라, 도회지에 내보내서 가르칠라, 뼈빠지게 고생해도 될까말까 하고, 소나 개 같은 짐승들 밥 주어 건사하기에도 몸써리가 나는 마당에, 농사짓는 것이 무신 백수 건달들 만치로 그렇게 쉬운 것이간디, 하릴없이 잔디나 보고 노랠 불러서야 쓰겄소, 잉.

약은 병원에 가면 주고, 꽃은 꽃밭을 맹글먼 되제, 먼 잔디밭에 난 풀을 보고 약타령 꽃타령들을 한단 말이오, 그란해도 인자 나이 먹은께 사지가 버글버글허고 비만 올라고 하먼 엉바지와 허리가 건들덜 못허게 쑤시고 아픈디, 그놈의 잔디가 먼 밥을 멕여주요, 떡을 주요, 잉, 젊은 사람들이 힘 뒀다 어따 쓸라고 그라고 몸을 사리고 세월아 네월아 한단 말이오, 오메 나 복장 터져 못살겄네이.

처음엔 쭈삣뿌삣했던 몇몇의 건달들도 이젠 풀죽은 저고리처럼, 바람 빠진 풍선처럼 고개만 내리깔고 아무 말이 없다. 완전히 기세를 탄 부녀의 입은 보란 듯이 막 터져나갔다.

- 아 그랑께, 옛날에 우리 때는 보릿고개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는디, 요즘 젊은 것들은 쌩판 모르는 일이제이, 말이야 바로 말이제 농약을 좀 쳤다기로서니 그것도 없어서 굶어죽는 것보다는 안 나은가, 그거라도 먹고 사는 것이 아 천배는 더 나은 벱이여, 잉,

그랑께, 내말은 다른 말이 아니고, 결론부터 말하자먼, 그냥 시원허게 제초제를 찌크러부러라 이말이제, 요새 시상 좋아져서 농약방에 가면 좋은 약과 비료가 산데미처럼 쌓여갖고 가지각색으로 완비가 다 되어있더란 말이여, 없어서 문제지 있능것이 뭐가 문제가 된당가,

내 말은, 마당 같은데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돈 되는 일에다 젊은 힘들을 팍팍 쏟아 부어라, 이말이제.

ⓒ 김자윤

원래 경향각지의 건달들이란 개성이 남다르고 자신만의 이론과 실천이 능기인 자들이라,

입을 열면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듯한 막힘없는 언변에, 어떤 권위와 위세에 굴하지 않는 기상이 태생적으로 몸에 밴 자들이라, 군수나 면장, 심지어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고 해도 겁을 먹지 않는 용자들이다.

하지만 마을 원주민들에게는 유독 약한 것이 건달들의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이러한 건달들의 약점을 이용해 한방에 치명타를 날렸다고 자부하며 부녀 회장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주관이 뚜렷하면서도 처세에 뒤지지 않는 주인장이 부녀에게 얼른 술잔을 내밀었고, 좌중은 이제 주인 목수 건달의 임기응변을 기다리며 자신의 주관을 일목요연하게 펼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계속)

편집자 소개글

편지를 보낸 민웅기는 전 여수YMCA총무였다. 조선대 평생교육원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의했으며 현재 무등산 인문학당 강사다. 「태극권과 노자」저자이고, ‘무위태극선’,'송계선원' 대표이다. 송계선원은 노자와 장자,공자와 맹자,원효와 최수운의 삶과 지혜를 공부하고, 태극권과 명상 등을 수련하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장자 탈고를 마쳤다. 기존 번역서나 주석서와는 달리 장자 사상을 산책하듯이 풀어서 독자에게 알기 쉽게 필자만의 감상방식으로 저술했다. 본지에서는 ‘청춘일기’를 마치고  ‘귀농일기’ 연재중이다.  마무리 ‘수행일기’가 이어지며, 마무리 후 필자는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필자 연락처 : 전남 화순군 이서면 송계길39.  손전화 010-3621-9835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