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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보내준 시간여행

이혜란의 장도블루노트(8)... 쇼팽 '즉흥환상곡'
장도 음악회에서 가장 많이 요청받는 곡
연주를 하며 예술학교를 다니던 시절 떠올려
시험 당일 한번의 연주를 위해 학기 내 연습해
음악은 실체가 남지 않지만 영원히 기억 속에 머물러

  • 입력 2021.06.05 14:20
  • 수정 2021.06.15 22:41
  • 기자명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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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소개글

'이혜란의 장도 블루노트’ 연재를 시작한다. 피아니스트 이혜란이 건반 대신 펜으로 쓴 음악 에세이다.

그는 예술섬 장도아트카페에서 문화 기획가로 활동 중이다. 연재를 통해 커피를 만들며 피아노 건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전람회장 옆 카페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장도 예술섬 전람회장 옆 카페 단상이면서 문화예술계의 편안한 ‘잡설’을 전할지도 모른다.

한때 ‘해안통’ 문화사랑방에서 문화예술 이벤트프로듀서와 문화사랑방 운영자로서의 경험들이 되살아 날 것이다. 예술섬장도에서 ‘리스타’로서의 멋진 기획들도 만나게 된다. 에세이와 관련된 명곡들은 유튜브 동영상으로 피아노 명곡 감상의 기회도 함께 곁들인다.

▲장도아트카페에서 연주하는 필자
▲장도아트카페에서 연주하는 필자

음악과 함께 지나간 세월을 소환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답다

쇼팽(F.Chopin 810-1849)의 ’즉흥환상곡(Fantasie-Impromtu)‘은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적인 곡이다.

즉흥곡은 생각이나 느낌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만든 곡을 말하는데, 쇼팽은 이 곡을 특히 아껴서 늘 자신의 악보에 넣고 다녔다.

4개의 즉흥곡 중에서도 환상적인 느낌이 강하여 ’즉흥환상곡‘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이들은 거의 다 칠 줄 아는 곡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엇갈리는 3대4의 폴리리듬(Polyrhythm)으로 두가지 이상의 리듬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곡은 실기곡이나 입시곡으로 연주하지는 않지만 곡의 앞부분에서 정확한 리듬으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며 감미롭고 매력적인 중간부분에서는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펴서 자신의 음악성을 키워 나갈 수 있는 자유로운 곡이다.

장도에서 음악회를 열면 연주 신청곡으로 가장 많이 요청받는 곡이기도 하다.

연주하면서 문득 예술학교 다니던 중학교 시절, 함께 공부하였던 미술과 친구들이 떠올랐다.

매 학기 실기시험을 치르는데 음악을 전공하는 우리들은 시험날 그 한번의 연주를 위해 학기 내내 그 곡을 연습한다. 평소에 잘 되었던 곡들이 시험 당일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면서 흡족한 연주를 하지 못했을 때 그 허무함은 말로 다 표현 못한다.

반면에 미술과 친구들은 실기시험 전 2,3일 반짝 밤새워 ’벼락치기‘로 작품을 만들고 제출한다고 여겨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기도 했다. 또 그들은 시험이 끝나면 완성된 작품을 돌려받기까지 한다며..

그들 역시 작품을 위해 보이지 않는 생각과 아이디어를 학기 내내 고민했다는 것은 더 나이가 들고서야 알았다.

 

위의 영상은 1992년생 러시아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쉬스킨의 연주 모습이다. 쇼팽의 '즉흥 환상곡' 중 C#단조 Op. 66을 연주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작품에 몰두하기 위해 밤을 새운 푸석한 얼굴로 나타난 미술과 학생들의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한 것도 떠올랐다.

그들은 연습실에 슬며시 들어와서 움직이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며 음악에 대하여 알고 싶어했고 나 역시 그들의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며 예술가의 꿈을 가진 우리들은 제법 진지하게 토론을 하였다. 그럴 때면 연습은 못했지만 뿌듯한 기분으로 무엇인가를 채워나갔다.

그 모든 것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연습하여 익힌 음악은 기억 저편에 나의 ’작품‘으로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다.

기억속에 켜켜이 저장되어 소장하고 있으니 시간의 흐름없이는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것들도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

미래의 어느 때에 소중한 이 순간들도 ’작품‘으로 간직되어 아름다우리라.

장도에 올때마다 ’소녀의 기도‘를 들려달라는 어르신, 나를 이곳에 불러주신 분의 시, ’겨울 산,겨울 숲‘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차르트의 환타지, 다음에 올 때 꼭 듣고 싶다며 수준 높은 곡을 신청하는 어린 녀석도 있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소나타‘로 미래의 예술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하여 짬짬이 시간을 내서 연습 중이다.

생일을 맞은 어떤 그녀에게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을 들려주었는데 일년이 지난 후에 찾아와 그때의 동영상을 들려주며 가장 행복한 자신의 표정이 담겨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장도에 올 때마다 행복해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음악실에 드나들던 친구 화가들을 만나야겠다.

그렇게 음악과 관련된 추억 하나쯤 갖고 있는 사람과 시간여행을 즐기는 기쁨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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