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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처럼...

이혜란의 장도블루노트(19)... 호로비츠, 트로이메라이
망명생활을 마치고 60년만에 고국에서 연주한 호로비츠
82세의 노신사는 "이제 그만 자야한다"는 말을 남기며 무대서 내려와

  • 입력 2021.09.25 11:36
  • 수정 2021.09.25 12:04
  • 기자명 이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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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문화예술기획자 이혜란 피아니스트가 준비한 '섬, 바다, 달빛소나타'가 이달 14일부터 11월까지 장도아트카페와 예울마루 소극장에서 펼쳐진다.

코로나로 인해 야외공연으로 기획한 공연이 실내공연으로 바뀌었지만 베토벤의 명곡이 가져다주는 감동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도아트카페에서 연주하는 필자
▲장도아트카페에서 연주하는 필자

이번 명절휴가는 둘째딸과 함께 친정엄마가 계시는 깊은 산속에서 지냈다.

휴식을 위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때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찾는 것이다. 이번에는 슈만((R.Schumann,1810-1856)의 음악이었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듣고 난 후에 ‘어린이 정경(Kinderszenen,Op.15)’이 들어있는 CD에 마음이 갔다.

 

이 곡은 어린 날의 동심을 동경하고 기억하는 어른을 위한 곡으로 어린시절 모습을 그리는 음악이다.

이 곡의 제목인 ‘정경(情景)'은 ‘마음에 끌리는 경치’라는 뜻으로 감정을 통해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술래잡기, 목마의 기사, 이상한 나라와 사람들, 난로 옆에서 등의 제목을 가진 13개의 짧은 곡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중 7번째로 나오는 곡이 바로 ‘트로이메라이(꿈)’이다.

슈만은 스승의 딸인 클라라를 사랑하였으나 스승 비크가 그들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에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싶은 희망을 담아 이 곡을 작곡해 연인이었던 클라라에게 선물하였고 마침내 그녀와의 결혼을 이루게 된다.

이 곡을 들으면 블라드미르 호로비츠(V.Horowitz,1903-1989)의 연주가 생각나는데 그는 20세기의 위대한 음악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아래 영상은 호로비츠가 숨을 거두기 3년전 조국인 러시아에 돌아가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모습이다. 호로비츠는 50년간 미국 망명생활을 했다.

 

60년만에 고국 연주를 하였던 그의 모스크바 실황연주에서 ‘트로이메라이’를 앵콜곡으로 연주하는데 이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노신사의 모습이 찍힌 실황영상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영상장면이다.

계속되는 앵콜곡의 요청으로 이제 그만 자야한다는 제스처와 함께 82세의 호로비츠의 어린아이같은 미소 또한 함께 기억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어린이의 맑고 순수한 정서를 마치 시를 읊듯이 피아노로 표현한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친정어머니와 딸의 모습에서 어린시절의 나를 찾아본다.

일본어와 영어,그리고 독일어로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부르고 셰익스피어의 영시를 암송했던 친정엄마는 이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당신의 좋았던 추억만을 기억하며 금방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

둘째딸은 지금도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여 자연속에서 꾸밈없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며 개구리, 귀뚜라미, 새 등 생명있는 모든 것들에게 사랑을 쏟는다.

반려견 사랑은 물론 17년째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있다. 늘 함께 지내왔던 딸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 먼 거리를 운전하는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연주를 위해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있으면 피아노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 잠을 자면서까지 엄마 옆에 있어주었다. 속 깊은 딸이 지금도 엄마를 챙기는 마음에 흐뭇하다.

우리는 서로 꼭 껴안으며 깊은 산속의 달을 바라보았다. 달 옆에 있는 유난히 밝게 빛나는 목성과 토성, 하늘에 있는 별자리도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친정엄마의 어린아이같은 자랑스런 표정과 딸의 순진함, 노신사의 눈물과 호로비츠의 미소가 ‘어린이 정경’의 한 부분이 되어 또 다른 음악으로 들려진다.

달빛에 어우러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몽상적인 분위기에 젖어들게 한다. 은은한 빛으로 감싸주어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한다.

”달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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