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혼
조계수
시월이 오면
어혈을 풀지 못한
여수 앞 바다는
굽이굽이 갈기를 세워 달려든다
신월리에서
만성리에서
애기섬을 돌아오는
저 외치는 자의 소리여
그 소리결에 천 년을 두고도
늙지 않는 바람이
오동도 시누대 숲을 흔들어 깨운다
긴 세월 가려진 햇빛이
비늘을 벗는다
살아서 죽은 자나
죽어서 산 자나
이제는 입을 열어 말할 때
오! 그날 밤
하늘마저 타버린 불길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눈 먼 총부리에 쓰러진 그들은
제 살 제 피붙이였다
밤 내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피묻은 거적을 들추는
어미의 거친 손
통곡 조차 죄가 되던 세상
그 핏물 스며든 땅에
씀바귀 지칭개 민들레
들꽃들은 다투어 피어나는데
아직도
어두운 흙속에 바람속에
두 손 묶여 서성이는 혼령이여
자유하라
그대들을 단죄 할 자 누구도 없나니
허물을 털고 일어서는 진실만이
용서와 사랑의 다리를 놓는 법
그 다리를 건너 오는 아침을 위해
눈감지 못하는 하늘이여
다물지 못하는 바다여
긴 세월 바람 속에 떠도는
호곡을 그치게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