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진혼

  • 입력 2021.10.19 10:40
  • 기자명 김면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혼

                 조계수

 

시월이 오면
어혈을 풀지 못한
여수 앞 바다는
굽이굽이 갈기를 세워 달려든다

 

신월리에서
만성리에서
애기섬을 돌아오는
저 외치는 자의 소리여

 

그 소리결에 천 년을 두고도
늙지 않는 바람이
오동도 시누대 숲을 흔들어 깨운다
긴 세월 가려진 햇빛이
비늘을 벗는다

 

살아서 죽은 자나
죽어서 산 자나
이제는 입을 열어 말할 때

 

오! 그날 밤
하늘마저 타버린 불길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눈 먼 총부리에 쓰러진 그들은
제 살 제 피붙이였다

 

밤 내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피묻은 거적을 들추는
어미의 거친 손
통곡 조차 죄가 되던 세상
그 핏물 스며든 땅에
씀바귀 지칭개 민들레
들꽃들은 다투어 피어나는데

 

아직도
어두운 흙속에 바람속에
두 손 묶여 서성이는 혼령이여
자유하라
그대들을 단죄 할 자 누구도 없나니

 

허물을 털고 일어서는 진실만이
용서와 사랑의 다리를 놓는 법
그 다리를 건너 오는 아침을 위해
눈감지 못하는 하늘이여
다물지 못하는 바다여
긴 세월 바람 속에 떠도는
호곡을 그치게 하라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