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살인 지연(가명)이 엄마는 지연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 지연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매일 떼를 쓰기 때문이다.
맞벌이를 하면서 지연이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키우고 싶어 둘째를 낳지 않았다. 그래서 지연이는 어릴때부터 유난히 응석이 심했다.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다. 돌이 지나서부터 어린이집에 보내긴 했지만 아침마다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 했다.
엄마만 졸졸...아이의 집착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 했지만 지연이는 커갈수록 엄마에게서 떨어지는 것을 싫어했다. 집에 오면 잠이 들때까지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녔다. 자신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지연이를 보면서 엄마로서 책임감과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엄마 역시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남편의 발령과 함께 이사를 하자 엄마에 대한 집착은 극에 달했다.
단 한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토할 때까지 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연이 엄마는 휴직을 하고 지연이와 6개월을 보내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충분히 나누었다. 하지만 복직을 하려고 하자 6개월 동안 애쓴 것들이 무색하게 지연이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학교갈때 쯤이면 당연히 좋아질 것이라 기대했고, 지연이가 학교에 가면 엄마 역시 한숨 돌릴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취학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학교가지 않겠다고 떼쓰고 울어대는 지연이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해져 버렸다.
분리불안 장애 겪는 아이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지연이처럼 분리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울고 떼쓰는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을 만큼 6학년인데 혼자 화장실을 못가고, 중학생이 집에 혼자 있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양육자와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고, 집에서 멀어지는 것을 싫어하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불안을 경험하고 걱정하는 상태를 '분리불안 장애'라 부른다.
분리불안장애는 왜 발생하고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
아이들은 태어나서 36개월이 될 때까지 다양한 발달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오직 나밖에 모르던 자폐적 시기를 지나면, 엄마와 공생하는 단계를 지나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듯이 자신이 엄마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부화’ 단계가 있다. 기고 걷게 되면서 세상을 탐색한뒤 다시 엄마에게도 돌아와 위안을 얻는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이때 스스로 걷고, 기고, 만지는 경험속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후 마치 사춘기 아이처럼 엄마에게 독립과 의존하고 싶은 양가감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 시기를 성공적으로 보내고 나면 비로소 사물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다는 ‘대상항구성’을 갖게 된다. 즉 엄마와 떨어져 있어도 엄마는 항상 마음속에 존재하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마로 부터 안정되고 따뜻한 지지와 위안을 얻게 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촘촘한 발달과정에서 어느 한 시기라도 긍정적이지 못했다면 아이는 ‘대상항구성’ 확립이 어렵게 되고, 엄마가 눈앞에 있을 때만 존재한다고 경험하고, 눈앞에 있어야 비로소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게 된다.
쉽게말해 지금 아이가 보이는 분리불안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수정하기 위해서 주로 제안되는 방법은 행동적인 수정방법이다. 즉, 아이와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이 답이다. 처음에는 교실 안에 있다가, 교실 밖에 있다가 복도에서, 교문에서, 학교 앞 수퍼, 그리고 집까지 서서히 아이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벌려 가면서 아이에게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엄마의 기준이 아닌 아이의 기준돼야
주의해야 할 점은 멀어지는 속도와 거리는 엄마의 기준이 아닌 아이의 기준이어야 한다. 이 과정이 하루 단위가 아닌 완전히 안정화될 때까지는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과정을 반복됨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놀이를 통해 미리 학교에 가는 연습을 해보고,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예상해 대처방법을 찾아보자. 세 번째는 일상에서 아이가 엄마와 떨어졌을때 그때 경험했던 감정과 정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대처법을 찾아야 한다. 주의할 점은 아이가 경험한 정서를 엄마의 시선으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공감과 위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지연이가 “학교가 무서워”라고 했을 때 지연이 엄마는 “학교가 뭐가 무서워, 선생님도 있고 친구들도 있는데...”라며 지연이의 감정을 공감해주지 않았고, 오히려 지연이가 느끼는 감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해버리는 오류를 저지른 점이다. 아이가 이런 말을 할 때 부모는 일단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말을 하면 하나하나 반박할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해주면 된다.
우리 지연이는 학교가 무섭구나. 학교가 왜 무서운지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 지연이가 말한 대로 운동장이 무섭다면 엄마랑 아빠랑 같이 가서 무서운게 있는지 살펴보면 어떨까? 지연이는 엄마 뒤에 있어도 돼!
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하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너무 많이 주입하거나 압박을 줘서도 안된다. 엄마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엄마의 말은 법과 같다. 그런데 자신이 학교에 가서 공부를 잘 하지 못할까봐, 선생님과 잘 지내지 못할까봐,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할까봐 자신이 없고 걱정되는 아이들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그 상황을 피하고 싶을 수 밖에 없다.
지연이는 놀이치료와 4명이 함께하는 사회성 훈련 놀이를 통해 입학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뒤 다행히 친구들에게서 들은 긍정적인 피드백과 선생님의 지지와 위로를 통해 학교생활에 대한 호기심도 갖게 되었다.
인생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있다. 어떤 일이건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입학은 부모에게는 진짜 ‘학부모’가 되는 경험이면서 육아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주지만 아이들에게는 온전히 새롭고 낯선 세상에 첫 발을 딛는 경험이다.
새로운 경험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고 떨리기도 한다. 아이들이 두렵다고 말하는 것은 하기 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두려움을 새로움으로 변화시키고, 떨림을 설렘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부모는 안정된 지지와 위로를 줘야 한다. 아이에게 학교갈 준비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묻기 전에 안정되고 따듯한 지지와 공감, 위로와 격려가 준비 되어있는지를 먼저 점검하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