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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출신 강경아 시인, 두 번째 시집 ‘맨발의 꽃잎들’ 발간

여순 10·19, 제주 4·3 현대사의 굴곡진 흔적 찾아
역사적 상처를 위무하며 현실을 밀고 가는 희망의 메시지

  • 입력 2022.09.22 11:11
  • 수정 2022.09.22 13:04
  • 기자명 곽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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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아 시인
▲ 강경아 시인

여수출신으로 활발한 문단 활동을 펴고 있는 강경아 시인이 2018년 첫 번째 시집‘ 푸른 독방’(시와 에세이) 에 이어 그의 두 번째 시집 ‘맨발의 꽃잎들’을 발간해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시인의 ‘맨발의 꽃잎들’은 시와 에세이에서 출간 된 가운데 첫 번째 시집인 푸른 독방에서는 풍자와 해학, 남도의 신명을 통해 민중의 생명력을 노래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그의 눈에 비춰진 비극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여·순과 제주를 비롯한 광주, 팽목항, 미얀마, 스페인 광장 등 국내외의 비극적 현장으로 뻗어 있다.

특히 개별화된 슬픔이나 가족사적 경계를 넘어 청년 레이, 노숙자, 제주 4 · 3 관련 유가족, 오월의 어머니 등 집단적인 비극이나 타자들의 아픔에 집중되어 있다.

강 시인의 ‘맨발의 꽃잎들’을 놓고 해설에 나선 시인이자 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는 임동확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발길 닿는 모든 길이 통점(痛點)이다
매캐한 연기가 뼛속까지 파고드는데
뒤틀리는 비명 소리 돌담을 넘고
부릅뜬 눈과 입들은 둘레를 이룬다
커다란 돌덩이는 비석이 되어
더 깊은 어둠으로 막아버렸다
달이 환하게 비추는 다랑쉬마을
잊혀진 사람들, 묻어버린 진실
속숨허라, 속숨허라
손톱자국이 핏빛으로 스며드는 길
제주의 사월이다

―「다랑쉬굴」 전문

▲ 강경아 시인, 맨발의 꽃잎들
▲ 강경아 시인, 맨발의 꽃잎들

강 시인은 1948년 제주 ‘다랑쉬굴’ 주변의 양민학살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국가권력의 폭력에 의해 “잊혀진” 제주인들과 그 때문에 “속숨허라, 속숨허라”, 곧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조용히 하라’는 의미의 현대판 전승에 묻혀버린 “진실”이 마치 살갗을 깊게 파고드는 “손톱자국”처럼 자신의 아픔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말 그대로 시인에게는 “발길 닿는 모든” 역사의 “길이” “통점(痛點)”인 셈이다.

누가 너희에게 즉결처분의 권한을 주었느냐
여덟 명의 식솔을 거느리는 가장에게
흙을 일구는 가장 외롭고 가난한 농부에게
살뜰했던 윗마을 아랫마을 평화로운 이웃에게
누가 너희에게 손가락총을 겨누게 하였느냐
좌우로 줄을 세우도록 하였느냐

―「여순의 푸른 눈동자」 부분

이른바 ‘여순사건’에 관련한 시 「여순의 푸른 눈동자」 또한 “누가 너희에게 즉결처분의 권한을 주었느냐”고 단호하게 묻는다. 그러면서 곧바로 “타다당 탕 탕 탕 탕탕” 총살형이 집행되는 당시의 “주암초등학교 운동장”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지금도 “구천을 떠도는” “통한”의 “혼”들이 “밤하늘”의 “차디찬 별이 되”어 “날카롭게 빛나고 있”음을 환기한다. 역사적 단절의 시간을 순식간에 뛰어넘는 순간적인 합일을 통해, “눈”과 “입”을 “가리고” “역사를 지우”며 “수장해버”린 “침묵의 말”(시 「애기섬」)들을 영원한 현재로 재소환해내고 있다. 

그대 가신 의로운 길
정의가 이기는 길
가야 한다면
나는 가야겠네
혼자서라도
나는 가야겠네

―「오월의 어머니」 부분

1,2,3,4부로 나눠진 시집에서 1부는 여수/ 어느 토끼의 겨울밤/고목(枯木)/어머니의 수첩/오땅 할아버지 1/오땅 할아버지 2/오땅 할아버지 3/주간보호센터/외노루발/ 중환자실/미평 수원지에서/나의 대홍 씨(氏)/우리 동네 최 사장 등 12편이 실려있다.

제2부는 청년 레이 1/청년 레이 2/청년 레이 3/ 오늘도, 전태일/ 바닥/노숙의 랩소디/을지로 공구거리/씨앗의 속도학/슬기로운 당신의 권리/방울토마토 1/방울토마토 2/솎아내기/우리는 살고 싶다/사과꽃 피는 밤 등 14편이 실려 있다.

제 3부는 다랑쉬굴/귀향(歸鄕)/이장(移葬)하는 날/우리가 오월이다/무등산/오월의 어머니/오월의 둘레/여순의 푸른 눈동자/애기섬/저 바람은 기억하리/다시, 팽목항에서/민주야, 평화야 12편이, 제4부에는 당신의 방(房)/누룽지/에디터/복어/추천합니다/스페인 광장에서/연탄재/드라이플라워/이레이져/시(詩)와 에세이/시민 속으로 찾아가는 시화전/집으로 가는 길 등 13편 등 모두 50여편이 실려 있다.

강경아 시인의 ‘맨발의 꽃잎들’의 발간에는 임동확 교수의 해설과 함께 시인이자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있는 맹문재 교수, 복효근 시인, 김주대 시인이 약평과 표지를 넣어주며 그의 건필을 기원했다.

강경아 시인은 이번 시집 발간을 놓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목에서 다시 피어나는
목련꽃 한 송이처럼
길 잃은 발들의 조문객이 되고 싶었다
스스로가 별이 되고 눈물이 돼버린
그대가 있어서, 그대여야만 해서
뼈 아픈 한 시절
겁도 없이 시집을 또 낸다
직파된 언어들이 발아가 되어
잡초만 무성한 나의 시(詩) 밭에도
당신을 닮은 초록의 뿌리 내릴 수 있을까

한편 강경아 시인은 여수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2013년 『시에』로 등단했다. 시집 『푸른 독방』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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