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날인 5일 여수시 돌산 둔전리 봉수마을에서는 달집태우기와 마당굿 행사가 열렸다. 행사의 꽃이랄 수 있는 달집태우기 행사에는 지역구 시의원인 박성미 의원과 박희우 읍장을 비롯한 주민 300여명이 참석했다.
해질 무렵 동네 어르신, 꼬마 아이들과 남녀노소 누구나 동네 들판에 모여 달집을 태우고 신명나게 풍물 소리를 올리며 한 해의 소원을 비는 풍습은 옛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파편화되고 개인화되어 가면서 전통 풍습이 사라져가는 걸 안타까워한 놀이패 벅수골 대표 박준호씨는 공동체 정신을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에서 '정월 대보름 잊혀진 마을굿 찾기'를 시작했다. 올해로 27회를 맞는 장소로 봉수마을을 택한 그가 행사 내용을 설명했다.
"놀이패 벅수골에서 해왔던 마을굿 행사는 마을 축제의 취지를 살려 주민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요, 화합을 비는 행사입니다. 대문에 들어가기 전에 '용기(용을 그린 큰 깃발)'를 세워놓고 5분간 '길굿'을 하고 나서 '쥔쥔 문여소! 복들어 간께 문여소!'라고 외칩니다. '주인장 문열어주세요. 복들어갈테니 문열어주세요'라는 뜻입니다."
회원 20명으로 이뤄진 놀이패 벅수골의 행사는 당산굿, 마을샘굿, 마당밟기에 이어 달집태우기로 이어졌다. 개인 집이나 사업체가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마당밟기는 원래 11곳에서 신청했지만 반응이 좋아 21곳으로 늘었다.
마을 뒷산 봉화산 정상에 봉수터가 있어 봉수마을이라 불려
국도 17호선에 접하고 여수에서 동남쪽으로 13㎞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봉수마을 뒤에는 봉화산이 있고 앞으로는 와룡천이 흐르고 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좌수영 본영에 영남지방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피난민 수용대책을 고심하던 이순신 장군이 돌산도를 내정하고 1593년 1월 26일 전라좌수영 본영에 거주하던 경상도 피난민 200여호를 목마장이었던 돌산도에 입주시켜 피난민들이 자활하도록 방편을 마련해줬다.
이 피난민들은 당시 국둔전으로 사용되었던 지금의 둔전리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중 정씨가족 일가가 봉화산 기슭에 자리를 잡아 지금의 봉수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둔전이란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하에 부근의 한광지(閑曠地)를 개간, 경작해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함으로써 군량 운반의 수고를 덜고 국방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왜구가 창궐하던 당시 둔전은 해상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둔전마을 인근에 있는 대미산(359m) 정상에는 월암산성이 있고 인근에는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에서는 밤에는 봉(烽:횃불), 낮에는 수(燧:연기)로 변경의 정세를 중앙의 병조와 지방의 각 읍과 군진에 전달하는 비상 통신수단이었다. 조선시대 봉수망은 5대 직봉이 있었고 여수 돌산은 제5로의 출발지였다. 돌산에서 출발한 봉수대의 소식은 충청도를 거쳐 목멱산(오늘의 남산)에 도착해 왕께 보고 됐다.
봉수마을에는 현재 90세대 약 200명의 주민이 산다. 원래 60세대였던 마을이 90세대로 늘어난 것은 귀농 귀촌한 30세대 때문이다. 차운대(62세) 이장이 귀농인들이 들어온 이유를 "시내하고 가깝고 인심이 좋은 편 때문입니다"라고 자랑했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달집태우기다. 참석자들은 1년 동안 자신이 소망하는 기원문을 써서 달집에 걸고 있었다. 그런데 동백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기원문을 보던 어른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여학생의 기원문 내용이다.
"로또 1등. 체르니. 건물주. 한국축구 이기기. 해외여행. 서울대 가기. 포르세 사기. 건강하기"
1학년 여학생의 기원문을 보고 웃다가 기원문을 그렇게 쓴 이유에 대해 들었다.
"로또 1등이 되면 엄마 아빠가 갖고 싶은 것 하나씩 사주려고요. 건물주가 되고 싶은 이유는 엄마 아빠한테 방 넓은 집을 주기 위해서고, 아빠차가 '모닝'이라 제일 비싼차인 포르쉐를 줄려고요. 공부잘해서 서울대 가서 돈많이 벌고 싶어요."
부모는 정작 "딸이 건강하게 크기만을 바랍니다"라고 말했지만 훌쩍 커버린 아이의 소망을 듣고 폭소를 터뜨렸다. 행여나 불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가운데 풍등 날리기가 시작되자 돌산소방서에서 파견된 소방관들이 만일을 대비해 긴장한 상태로 대기했다.
곧바로 달집태우기가 시작되고 놀이패 벅수골팀의 흥겨운 풍물소리에 맞춰 주민들이 덩실덩실 춤추자 동쪽 하늘에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