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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오든지 간에 우리 다 같은 '꽃'이야

"어디 살든 우린 꽃인데, 왜 차별을 받죠?"
다문화 가정 여성이 던진 무거운 질문...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존하면 좋겠다"

  • 입력 2025.05.06 10:27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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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한국으로 시집 온 인도네시아 여성이 그린 그림책 표지로 "어디서 오든지 간에 우리 다 같은 꽃이야"라는 글귀가 씌어있다. 인도네시아에는 민들레가 없다고 한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에서 날아간 민들레 씨앗이 인도네시아에 핀 '라플레시아' 꽃과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꽃 옆으로 날아가고 있다. 아직은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녀의 이름은 삭제했다 ⓒ오문수
▲8년전 한국으로 시집 온 인도네시아 여성이 그린 그림책 표지로 "어디서 오든지 간에 우리 다 같은 꽃이야"라는 글귀가 씌어있다. 인도네시아에는 민들레가 없다고 한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한국에서 날아간 민들레 씨앗이 인도네시아에 핀 '라플레시아' 꽃과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꽃 옆으로 날아가고 있다. 아직은 이름을 밝히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녀의 이름은 삭제했다 ⓒ오문수

필자는 여수에 시집온 다문화 여성들을 위한 글쓰기 강의를 한다. 지난주 첫 강의를 시작하며 "여러분 마음속에는 차별이라는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을 줄도 모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도와주며 겪었던 경험과 사례들을 얘기하자 인도네시아에서 시집 온 여성 한 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차별이란 둘 이상의 대상에 특정 기준에 따라 우월을 따져 구별하는 행위를 말한다. 특정 기준에는 종교, 장애, 나이, 신분, 학력, 성별, 인종, 생김새, 국적, 출신, 사상 등을 들 수 있다. 차별하는 사람은 특정 기준에 따라 사람을 우대하거나 배제 또는 불리하게 대우하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평등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그녀의 고향은 인도네시아 란타우프라팥(Rantauprapat)으로 수도인 수마트라에서 기차로 7시간쯤 가야한다. 그녀의 조상은 중국계로 증조할아버지가 인도네시아로 이민왔다.

고향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후 '메단' 대학에서 2년 동안 중국어를 전공한 그녀는 중국 광저우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인도네시아 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 중국어를 가르쳤다.

▲그녀 설명에 의하면 한국에서 자유롭게 날아간 민들레 꽃씨가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꽃 인근으로 낙하하고 있다 ⓒ오문수
▲그녀 설명에 의하면 한국에서 자유롭게 날아간 민들레 꽃씨가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꽃 인근으로 낙하하고 있다 ⓒ오문수

그녀가 한국으로 시집오게 된 계기는 남편과의 우연한 만남이었다. 인도네시아 유명 관광지인 발리로 여행 온 한국 청년을 만나 영어로 발리에 대해 안내하면서부터다. 함께 여행하면서 호감을 느낀 둘은 귀국한 후에도 이메일이나 동영상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한국 청년은 휴가 기간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왔다. 그녀도 휴가 기간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사랑을 확인한 그들은 2017년 2월에 인도네시아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그해 12월에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눈물을 흘리던 그녀의 손에는 예쁘게 색칠한 꽃 그림책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그린 책 표지에는 '어디서 오든지 간에 우리 다 같은 꽃이야'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림의 맨 위에는 꽃씨가 달린 민들레 씨앗 3개가 날아가고 왼쪽 아래에는 '라플레시아' 꽃이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에는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라플레시아(Rafflesia arnoldii)'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열대우림에서 발견되는 식물로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을 피우기로 유명하다. 이 식물의 직경은 최대 1m이며 무게는 10㎏에 달하고 꽃은 붉은색 바탕에 흰 반점이 있으며 꽃잎은 두꺼운 육질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에서 날아간 민들레 꽃씨 3개가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인 라플레시아 꽃과 쟈스민 옆에 도착하고 있다   ⓒ오문수
▲한국에서 날아간 민들레 꽃씨 3개가 세상에서 제일 큰 꽃인 라플레시아 꽃과 쟈스민 옆에 도착하고 있다   ⓒ오문수

한국 생활 8년 차로 어린 딸 하나를 둔 그녀는 한국말이 유창하다. 그녀에게 "이 그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제 무의식을 나타낸 그림입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녀가 그림의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교 출신인 저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면서 어머니한테서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종교나 민족 문제에 대한 대화를 할 때는 말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한국으로 시집오기 전 한국은 개방된 나라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차별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라플레시아 꽃과 쟈스민 옆에 도착한 민들레 꽃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오문수
▲라플레시아 꽃과 쟈스민 옆에 도착한 민들레 꽃씨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오문수

자신과 대화하던 한국 사람이 "한국 살기 좋지요?"라고 말할 땐 "너는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한국에서 사는 게 좋지?"라고 말하며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도 했다. 한국으로 시집 온 다문화 여성으로부터 차별받았던 경험을 들었던 그녀는 한국 사람과 대화할 때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하며 조심스럽게 생각한 후 말하는 게 습관이 됐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는 민들레가 없어요. 그런데 민들레는 어디든지 날아가서 꽃을 피우잖아요. 그림에는 한국에서 날아간 민들레 씨앗이 인도네시아까지 날아와 라플레시아와 쟈스민 옆에서 뿌리를 내린 후 꽃을 피우는 겁니다. 저는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날아온 민들레꽃을 환영할 거예요. 어디에서 살든 우리 모두는 꽃인데 왜 환영받지 못하고 차별받죠?"

때로는 "화가 나서 목소리 높여 말해야 하나? 정책 당국에 제안해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한 적도 있다"고 말한 그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공존하는 게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비와 햇빛은 한국 정부에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위해 제공하는 복지제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너무나 고맙다"고 말한 그녀가 안타까운 점을 말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만해도 고마워해야 할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약 문제나 폭력 사건에 연루된 뉴스가 나오면 속상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라플레시아 꽃과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옆에 안착한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는 꽃이라고 말한 그녀는 한국에서 오는 민들레 꽃을 환영하겠다며 차별철폐를 의미하는 그림을 그렸다. ⓒ오문수
▲세상에서 제일 큰 라플레시아 꽃과 인도네시아 국화인 쟈스민 옆에 안착한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 사람 모두는 꽃이라고 말한 그녀는 한국에서 오는 민들레 꽃을 환영하겠다며 차별철폐를 의미하는 그림을 그렸다. ⓒ오문수

외국에서 온 분들이 한국인들과 상호 공존 공생하기를 바란 그녀가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다.

'한국 살기 좋지요?' 라고 질문하는 것보다는 '한국으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지구 전체에 사는 모든 사람은 먼지에 불과한 존재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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