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인가? 항쟁인가? 주철희 박사
70년 묵은 수수께끼 실마리 풀다.
그들은 저항군 이었다.
7일, 현대사 바로알기 두번째 강좌에서
2017년 대한민국의 현재를 놓고 해방 전, 후사를 살펴 볼 때 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박혀 있는 단어 ‘빨갱이’ 그 어원 속에 '1948년 여, 순 항쟁'이 있었다.
지구상 가장 강력한 반공국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빨갱이"는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어떤 경우에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은 빨갱이라는 이 말 한마디가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잡아다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감옥에 쳐 넣고, 고문하고, 조롱하고 비하하고 놀리고 온갖 비인간적인 작태를 행하고 있지만,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 말이 생겨났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
전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연구센터장을 엮임 한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를 강사로 한 여수 해안통갤러리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7시에 열리고 있는 현대사 바로 알기 두 번째 강좌에서 주 박사는 첫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주철희 박사는 이날 이승만 반공정권의 탄생은 1948 제주 4.3, 10월 여.순을 시작으로 빨갱이=민족독립운동가들을 본격적으로 학살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 4.3, 10.19여. 순을 놓고 이승만 정권은 정부 군대의 진압 과정에서 빨갱이란 말 한마디에 억울하게 죽은 무고한 일반 민간인들이 훨씬 더 많았음에도, 이 같은 사건의 실상은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오히려 사실과는 정반대로 언론에 보도됐다. 며 당시 언론인들을 성토 했다.
당시 정부는 피해자들 대부분이 좌익 빨갱이들에 의해 죽었으며, 좌익 빨갱이들을 ‘살인마’라고 선전했다.
이와 함께 당시 신문들은 정부의 보도 자료를 아무런 비판 없이 충실히 지면에 옮겼다. 말 그대로 부하뇌동 한 것.
‘빨갱이’라는 단어는 정권·언론·문인·종교계의 지식이 총망라돼 형성된 담론의 응결체였다. 는 게 주 박사의 말이다.
그렇다면 제주도민을 학살 하라는 명령을 거부 한 당시 여수 14연대 일부 군인들은 반란군 이었을 까?
또 여수, 순천 지역민들은 반란군들과 연합한 부역자들이었을까 ?
아니다. 주 박사는 이날 반란과 항쟁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반란(叛亂)은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킨 것 이라고 할 때 여수 14 연대 당시 군인들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었다. 고 주장했다.
그 예로 반란이 성립 되려면 첫 째 현 권력자를 축출하거나 제거해야 했다. 둘 째 나라의 서울 즉 수도를 점령해야 했다. 셋 째 새로운 권력자를 미리 결정해야 했다. 넷 째 주체 세력은 정부요직에 있거나 군사 고위 지휘자야 했다. 다섯 째 반란을 일으키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계획 구체성 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 하다 . 하지만 14연대는 그 어떤 한 가지도 갖추지 않았다는 게 주 박사의 설명이다.
다만 그들은 같은 한민족, 한 형제, 인 동포들을 학살 하라는 명령을 거부 한 것 일뿐 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 같은 뜻을 정확히 밝히는 소위 정소(呈訴) 운동을 펼친다.
하지만 이들의 뜻이 이뤄지지 않아 다시금 등소(等訴) 운동을 펼치면서 제주도 출병에 대한 거부감, 두려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는 게 주 박사의 설명이다.
결국 그들은 제주도 출병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봉기라는 저항(抵抗)으로 표출 하면서 잘 못된 국가의 폭력적 만행과 살인 명령에 항명하고 민족의 형제들을 지키려 했던 몸부림의 저항 이었지 체제와 국가를 전복 하려는 반란군이 아니다. 는 것을 주철희 박사는 재차 강조 했다.
한편 본지는 앞으로 세 강좌 가 남은 주철희 박사의 현대사 강의를 정리해 연제 할 참이다.
주철의 박사의 현대사 강의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여수해안통갤러리(관장 이혜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