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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미술가 최병수, 새로운 ‘현장’에 “힐링의 품격을 입히다”

여수 돌산 비고리조트를 설치미술 ‘전시장’으로
4개월간 작업 중, 전체 공간에 100점 전시 준비
휴식공간에 전시되는 미술작품은 건축의 일부분
김창주 대표, “휴식의 공간에 예술의 옷을 입혀 품격 제고”
최병수, “나에게 시위 현장이나 리조트나 작품 ‘현장’이다”
이번 리조트 ‘현장’은 주문에 의한 요구를 자신이 실현하는 현장
환경,노동운동 현장이건 예술섬과 리조트에서건 ‘생명’ 추구

  • 입력 2020.07.11 14:08
  • 수정 2020.08.27 15:04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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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리조트 김창주 대표(왼쪽)와 작가 최병수(오른쪽)가 작품 전시 관련 의견을 나누고 있다.

 

“기존의 숙소나 리조트 같은 힐링 캠프들이 그냥 시설 위주, 편의성 위주였다고 한다면 '비고VIGO'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차별성으로 힐링의 '운치'나 휴식의 '품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적정한 예술이 더해졌을 때, 휴식의 공간에 예술의 옷이 입혀졌을 때, 운치나 품격 이런 것들이 가미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설치미술가 최병수를 여수 돌산의 '비고리조트'로 초대한 김창주 대표의 주문이자 기대다.

설치미술가 최병수 작가가 여수 돌산의 비고리조트 숲에서 작품 전시 설명을 하고 있다.

최병수(60) 작가는 최근 여수 돌산의 비고리조트 펜션에 컨테이너를 마련해 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곳에서 새로운 작품 제작과 기존 작품의 배치를 통해 리조트 공간 곳곳이 ‘전시장’으로 변신하게 된다.

이곳은 경도를 바라보는 바닷가다. 리조트에 연결된 넓은 산이 있다. 그리고 풀장과 숙소 건물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배치되어 있다. 최 작가는 "설치될 작품들은 이곳의 산, 바다, 건물이 조화를 이룬 공간에 자연스럽게 건축물의 일부, 자연 일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명’을 설치하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럼 그에게 ‘생명’은 무슨 의미일까?

최병수가 말하고 김진송이 쓴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에는 그 해답이 실려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전시장에만 걸렸다면, 작업이 작업실서만 이뤄진다면 그 작품은 생명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현장으로 달려가는 이유다. (현장에서의) 작품이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주가 생명력을 얻어 어려운 위치의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따뜻한 희망의 새 장을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미술활동을 하고 있다.”
「목수. 화가에게 말을 걸다」 (최병수 저. 현문서가. 2006년) 중에서.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사랑' 작품 배경으로 방문객의 자전거를 배치해 자전거에 사랑'이 실려 있도록 표현했다.

그가 만든 작품 ‘뜨거운 사랑’은 어렵게 구한 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모습이다. 최작가는 비고 리조트에 자전거를 타고 온 관객에게 ‘뜨거운 사랑’을 실어보라고 권한다. 이런 게 바로 현장에서 최병수 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너와 나’의 솟대를 사이에 두고 사람을 세워 촬영을 하도록 유도하고, 하하하 웃음 솟대를 배경으로 앉아 박장대소를 하며 힐링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부부에게 ‘사랑의 역기’를 들어보게 하면서 과연 얼마인지 각자 사랑의 무게를 가늠해보라고 권한다.

최작가의 전시 작품들. '하하하 웃음 솟대', '달 항아리', ‘옷걸이와 옷 꼬리 Homo Vestitus’' '사랑의 역기' 

또 벽에 대형 옷걸이를 변형시켜서 걸어 둔 ‘옷걸이와 옷 꼬리 Homo Vestitus’는 문명의 상징인 옷을 얘기하고 있다. 최 작가는 인간만이 사용하는 ‘옷걸이’를 곰곰이 들여다보다가 떠올린 작품이다.

“인간의 문명을 '의식주'라고 맨 앞에 옷을 중요시한다. 성경에 의하면 선악과를 안 먹었으면 인간도 옷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옷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는 거다. 또 '옷걸이 좋네'하며 사람 자체를 '옷걸이'라고도 말한다는 점에서 보면 '옷걸이'가 바로 인간아닌가. 그래서 '옷걸이'를 그대로 인간으로 묘사한거다.

옷을 입고 관객들이 카펫을 지나가면서 패션쇼를 하는 사진을 찍고, 그 사진들이 모이면 또 다른 작품이 된다. '옷 꼬리"는 인간에게 생겨난 ‘꼬리’의 의미를 관객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겼다.”

최병수는 옷걸이에서 착안한 ‘옷을 입는 인간’이란 용어를 영국의 라틴어 학자에게 의뢰해서 ‘Homo Vestitus'란 학명도 받았다. 흔히 보는 옷걸이에서 구상한 학명이란 얘기다.

멀리 강원도 양양에서 최 작가를 찾아온 ‘글과 그림’ 잡지 동인인 김명길(67), 홍경남 씨 부부는 다양한 설명과 포즈를 취하다가 평소에 알고 지낸 최병수 작품을 접해 본 남다른 소감을 차례로 들려준다.

“최 작가 작품은 전에도 봐 왔다. 사진으로 보거나 차에 싣고 현장으로 다닐 때도 자주 봤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울리니까 놀라운 감동을 준다. 역시 최 작가의 작품은 그 작품이 필요로 하는 현장이 있어야 한다.”

 리조트의 해변에서 '태초에 귀가 있었다' 작품을 설치중인 최병수 작가

최병수도 ‘글과 그림’ 회원이다. 이들에게 작품 안내를 겸하면서 나누는 대화 중에도 가끔 그는 사진 촬영 포인트도 알려주며 현장을 즐기고 있다. 그의 전시 작품들은 이곳에 전시 자리를 이미 잡은 것도 있고, 자리를 잡을 테스트를 하고 있기도 한 상태다. 관객으로 맘껏 현장을 즐기고 있는 홍경남 씨의 얘기다.

"작품을 보니 바닷가에서 만난 생명의 원천들이다. 최병수 작가가 설치하지 않았으면 작품인지 뭔지 모를 정도로 주변에 방치된 듯한데, 그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천재적인 빛나는 아이디어다. 태초의 움직임이 있던 작품도 숲에서 만났다. 인상적이었다.

여인상과 어우러진 저울과 추. 우리는 어떤 가치를 재며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며 추의 무게가 마음에 와닿았다. 모든 것이 돈의 가치로만 재단되는데, 나는 역으로 최병수의 무게를 달아봤다.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아파했던 최 작가의 지난 삶의 시간과 가치가 이 작품에 녹아 있다고 느꼈다.”

최 작가가 '여인상과 저울추' 모빌 앞에서 종과 저울,추에 대한 이미지를 알려주고 있다.

홍경남 씨가 말하는 ‘여인상과 저울추’ 모빌 작품 앞에서 최병수는 추가 설명을 이어갔다.

“고물상에서 구해 온 종인데 무게로 치면 겨우 8Kg. 버려진 깨진 종이다. 종 한쪽은 찢어졌지만 이 깨진 모양 자체에 의미가 있다. 그동안 이 종이 수많은 소리를 냈을 거다. 그리고 수명을 다 한 거지. 그만큼의 세월이 담겨있고, 누구에게 뭔가를 알려온 소리가 담겨 있다.

왜 깨졌을까? 무슨 신호를 보냈을까? 그걸 보는 사람들이 마음의 추로 재 보는 거다. 미인상을 바라보며, 이곳 쉼터에서 힐링의 시간에 자신의 내면을 저울로 달아보는 거다”

1987년 당시 TIME 지 기사 내용. 사진 안에 '한열이를 살려내라' 걸개 그림이 보인다. 자료 최병수 제공
6·10 민주항쟁 33주년인 올해 지난 6월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한열동산에 '한열이를 살려내라' 조형물 역시 최병수의 작품이다. 사진 최병수 제공

작가 최병수는 화가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한다. 그의 그림은 한 때 ‘매체’였다. 80년대 현장에서는 구호였고 슬로건이었다.

‘현장’ 그림들이 그를 세상에 알렸다. 대형 천에 그린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우리나라 걸개그림의 효시로 인정받아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이로 인해 최병수 이름 석 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걸개그림 용어 설명과 함께 등장한다. 그래서 그를 ‘현장 미술가’로 부른다. 또 다른 그림 ‘장산곶 매’나 ‘노동해방도’ 역시 그를 현장미술가, 운동가라고 호명하도록 했다.

설치미술가에게는 붓 외에도 모든 도구가 그의 작품에 동원된다. 현장 작업 광경. 
현장의 실내 작업실과 실외 작업실

운동가로서 작가 최병수는 민중의 함성이 들리는 곳이 그의 현장이었다. 신문의 정치면과 사회면을 장식할 사건이 있는 곳이면 그가 있었다. 분노와 격정의 시간을 광장과 거리에서 그가 시위와 함께한 곳이 그의 ‘현장’이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림으로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할 작정이기 때문에 예술가가 아닙니다”
「병수는 광대다」 (저자 박기범 외. 현실문화. 2007년) 중에서 

그는 박근혜 탄핵이라는 ‘촛불’과 함께 광화문 현장을 지킨 이후, 이제는 여수의 새로운 현장을 찾고 있다. 올해 여수서의 첫 ‘현장’은 광장의 시위 현장이 아닌 예울마루 예술섬 장도였다. 이제 작가 최병수는 장도 예술섬을 지나 또 다른 펜션이라는 휴식공간 ‘현장’에 서 있다.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한 이른바 ‘민중미술’로 평가받는 격동의 시기, 현장은 그에게 의무감에서 자발적으로 찾아가 힘찬 구호를 외쳐야 하는 현장이었다.

리조트 실내 커피숍에 식수 안내판. 최병수 작 '물'

예술섬 장도와 이곳 돌산 리조트 여수 현장은 큰소리로 구호를 외치지 않고 손끝과 발로 외친다. 주문에 의한 요구를 채워줘야 하는 프로페셔널한 현장이다. 주문자와 공급자가 만나는 계약의 현장이다.

이곳 저곳에 설치 중인 작품들

그래서 돌산의 리조트라는 휴식공간 역시 현장 설치미술가 최병수에게는 그대로의 ‘현장’인 것이다.

“사람이 와서 쉬고 잠을 자는 곳이어서 쉼, 휴식, 힐링의 공간이다. 여기서 뜻하지 않은 설치 작품을 만났을 때 관객들은 호기심이 자극되거나 고정관념을 깨는 의외의 느낌을 갖기도 할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서 있었던 현장이 공격적이고 거칠었다면 여기는 평온하고 아늑한 ‘쉼’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 망치질, 끌질, 톱질로 온 사방을 발로 다니며...

1987년에 ‘한열이를 살려내라’고 할 때는 그 상황에 맞는 작품이 관객에게 요구됐었다. 치열함 속에 ‘희망’을 얘기했다. 지금 여기서도 외침의 함성만 없을 뿐 ‘쉼’을 통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여유로운 자연 속에서 저는 관객들에게 ‘희망’을 내 나름의 구호로 외치고 있는 셈이다. 배경과 상황이 다를 뿐 제가 현장에서 추구해 온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본다.”

테이블 위에 메뉴판 옆에 비치된 작품  '양식' 

요즈음 이곳 리조트 현장에서의 작품 활동을 보고 간 ‘마당을 나온 암탉’의 저자인 화가 김환영은 최병수에게 “잘 싸운다”는 간략한 격려 문자를 보내왔다. 광장의 시위 현장에 있었던 최병수나 휴식공간의 멋진 리조트 현장의 최병수는 여전히 ‘잘 싸우고 있다’고 동료 작가들이 인정을 한 셈이다.

비고리조트 김창주 대표의 말 속에는 고객을 상대로 하는 리조트 공간에 최 작가를 초대해서 장기 전시회를 준비하는 그 속뜻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을 지나치게 어려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어떤 예술이라고 하는 게 자기가 바라보는 거울일 수 있는데, 그 거울로 보이고 투영되는 모습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보시는 분마다 생각과 느낌이 다르고, 서로 ‘나는 이렇게 봤습니다’라고 얘기하고, 그걸 소통의 도구로 삼을 것이다. 쉬면서 작품을 보며 대화도 나누고 ‘생명’을 느낀다면 힐링 공간에서 ‘쉼의 격’이 더 높아지리라고 본다. 더구나 유명작가의 작품과 함께라면 더.”

현장에서 늘 김창주 대표(왼쪽)와 최 작가는 '쉼'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곁에 추가 설치 될 작품들이 작업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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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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