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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인사의 김영준 국가유공자 지정, 정당한 과정을 거쳤나?

민간기업 사장 김영준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에 대한 문제 제기
국가보훈처가 국가유공자 지정근거로 내세운 '전시근로동원법'은 1999년 폐기된 법
1961년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실시 전 이미 국가유공자 대상자로 지정된 김영준 행적 재조사 필요
'14연대 반란 50년 결산집'에는 김영준을 우익인사로 표기, 김영준은 반민족행위자,우익인사란 이유로 총살돼..
김영준을 경찰 신분으로 둔갑시켰을 가능성 있어..묘비에 적힌 '전사' 표현도 수정해야
현재 김영준처럼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우익인사는 총 1,303명..국가유공자 전면 조사 요구

  • 입력 2021.02.20 12:38
  • 수정 2021.06.30 09:02
  • 기자명 주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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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희 역사학자
▲주철희 역사학자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는 것은 국가유공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은 국가유공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었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 숫자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름할 수 없다. 우선 밝혀진 인물 중 여수지역에 널리 알려진 김영준(1898~1948)은 국가유공자로 1961년에 지정되었고, 2007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영준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에 대해 국가보훈처에 질의를 하였다. 두 차례 질의와 답변에 나타난 국가유공자 지정에 대한 문제와 김영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 여수미평초등학교 앞  학교 설립에 기여한 김영준 기념비 ⓒ주철희
▲ 여수미평초등학교 앞 학교 설립에 기여한 김영준 기념비 ⓒ주철희

1. 국립현충원 안장자의 우익반공인사 신분의 분류

국립현충원 누리집에는 안장자에 대한 신분을 국가원수, 임정요인, 애국지사, 순국선열, 국가유공, 군인, 경찰관, 군무원, 종군자, 애국청년단원, 대한청년단원 등으로 분류하였다. 또한 신분에 따라 계(직)급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신분 분류에서 모호한 것이 애국청년단원과 대한청년단원이다. 즉 우익인사도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신분은 경찰관이면서 계(직)급에 반공유공자, 애국단원, 대한청년단원, 향방대원, 한청대원 등으로 구분하여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사례도 있다. 즉 민간인의 신분을 경찰관으로 둔갑하였다는 것이다.

김영준의 경우 신분은 경찰이면서 계(직)급은 애국단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김영준처럼 경찰 신분이며, 계(직)급으로 구분하면 반공유공자 3명, 애국단원 318명, 대한청년단원 172명, 향방대원 39명, 한청대원 126명 등 총 658명이 경찰 신분의 우익인사이다.

▲경찰신분 우익인사 분석 ⓒ주철희
▲경찰신분 우익인사 분석 ⓒ주철희

우익인사를 신분으로 분류하면 경찰신분 우익인사, 애국청년단원, 대한청년단원 등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경찰신분 우익인사는 658명, 애국청년단원 623명, 대한청년단원 22명 등 총 1,303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것으로 파악된다.

▲신분에 따른 안장자 분석 ⓒ주철희
▲신분에 따른 안장자 분석 ⓒ주철희

최소한 우익인사라고 일컫는 1,303명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들 1,303명이 모두 부당하거나 부정으로 확인된 인원은 아니다. 근거가 합당하여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인원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김영준의 묘비 ⓒ임재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김영준의 묘비 ⓒ임재근

 

2. 우익반공인사 국가유공자 근거는 무엇인가

1) 국가보훈처 첫 번째 답변에 대한 의문

중요한 것은 우익인사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었던 근거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국가보훈처에 김영준을 비롯한 우익인사가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던 근거(사유)가 무엇인지 질의했고, 국가보훈처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아래 인용문은 보훈처의 답변이다.

ㅇ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 제1호 다목에 의거 애국청년단원 등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4조에 따라 국가유공자로 결정 시 국립현충원 안장대상임

<국가유공자법 제74조 요약>

☞ 「전시근로동원법」(1999년 2월 8일 법률 제5846호에 따라 폐지되기 전의 것)에 따라 동원된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그 밖의 애국단체원 등이 전투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경우는 그 사망 또는 상이등급에 따라 국가유공자(전몰・순직군경, 전상・공상군경)로 보상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유공자법」) 제74조에 따라 국가유공자로 결정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답변이다.

「국가유공자법」제74조를 보면, 우익인사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었던 핵심은 「전시근로동원법」이다. 이 법에 따라 동원된 청년단원・향토방위대원・소방관・의용소방관・학도병, 그 밖의 애국단체원 등이 전투 또는 교육훈련 중 사망하거나 상이를 입은 경우는 그 사망 또는 상이등급에 따라 국가유공자(전몰・순직군경, 전상・공상군경)로 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이 규정에 따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였고,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1999년 2월에 폐기된 「전시근로동원법」을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전시근로동원법」은 법률 제292호로 1953년 6월 3일 제정되었고, 동년 7월 4일 시행되었다.

이 법은 '전쟁완수 또는 재해복구에 필요한 중요업무에 종사케 하기 위하여 국민의 근로를 동원함'을 목적으로 하며, 그 근로동원의 대상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연령 만 17세 이상 만 40세 미만의 남자'로 규정하였다. 즉 1950년 6.25전쟁을 ‘전시’로 표기했다는 점에서, 이 법률은 6.25전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보훈처에 제시한 「전시근로동원법」을 적용하더라도, 우익인사 중 국가유공자 대상자는 1950년 6월 25일 이후 사망자가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를 제기했던 김영준의 경우 1948년 10월 23일 사망했기에 해당 사항이 안 된다.

김영준처럼 1950년 6월 25일 이전에 사망했음에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우익인사는 얼마나 될까? 앞서 살펴본 우익인사 총 1,303명 중 6.25전쟁 이전의 사망자는 164명이며, 전쟁 이후 사망자는 1,139명이다.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우익인사 ⓒ주철희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우익인사 ⓒ주철희

2) 국가유공자 검증은 제대로 되었는가?

다음 질의는 김영준(1948년 10월 23일 사망)이 애국단원으로 분류돼 국립대전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된 절차 및 사유, 사망 후 수십 년이 지난 2000년도 이후에 안장된 이유에 대해서 질의를 했다. 국가보훈처 답변을 그대로 옮겨보면,

ㅇ 위 애국단원(2명)은 국가유공자법에 의거 국가유공자(전몰군경)로 결정된 사람으로서, 국립묘지법에서 정한 국립현충원 안장대상에 해당되어 사망 당시 소속(경찰)에 따라 경찰묘역에 안장되었음

ㅇ 2000년 이후에 안장된 이유는 국립묘지령(「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05.7.29. 제정)」의 전신) 개정(’98.1.1. 시행)으로 애국단원 등도 국가유공자로 결정된 경우 국립현충원 안장대상으로 확대되어 안장되었음

앞서 설명한 「전시근로동원법」에 의거 국가유공자가 되었고, 사망 당시 소속(경찰)에 따라 경찰묘역에 안장되었다는 것이다. 김영준은 사망당시 천일고무공장 사장으로 민간인이다. 경찰관이 아니다.

신분이 경찰로 둔갑한 것은 국가유공자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장난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영준은 묘비 뒷면에는 '1948년 10월 23일 여수에서 전사'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김영준 묘비 뒷면 ⓒ주철희
▲국립대전현충원 김영준 묘비 뒷면 ⓒ주철희

3. 1951년 제정된 경찰원호법이 근거이다

국가보훈처에서는 김영준이 국가유공자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것이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전시근로동원법」적용한 것에 대한 문제 제기와 김영준의 국가유공자 사례는 잘못되었다고 재차 질의를 하였다. 국가보훈처는 두 번째 답변을 해왔다. 그 근거는 1951년에 시행된 「경찰원호법」과 「전몰군경유족과상이군경연금법」의 부칙이라고 강조하였다.

「경찰원호법」 부칙 (법률 제187호, 1951. 4. 12. 제정)

⦁청년단, 향토방위대, 소방관, 의용소방대 등 기타 애국단체원으로서 경찰과 행동을 같이 하여서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할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받은 자, 그 가족 또는 순직한 자의 유가족에 대한 원호는 별로히 원호법이 제정될 때까지 본법을 준용하여 경찰관과 동일하게 원호한다.

「전몰군경유족과상이군경연금법」 부칙 (법률 제256호, 1952. 9. 26. 제정)

② 청년단, 향토방위대소방관·의용소방대 등 기타 애국단체원으로서 군경과 행동을 같이 하여서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할 행위로 인하여 상이를 받은 자 또는 사망한 자의 유족에 대하여는 국방부장관 또는 내무부장관의 인정에 의하여 따로 연금법이 제정될 때까지 본법을 준용하여 군경과 동일하게 연금을 급여한다.

김영준은 「경찰원호법」부칙 및 「전몰군경유족과 상이군경연금법」부칙에 근거하여 1961년에 원호대상자로 등록되었다는 것이 국가보훈처의 설명이다. 그는 국립대전현충원에는 2007년에 안장되었지만, 국가유공자가 된 것은 1961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법은 1962년에 폐지되었다.

국가보훈처는 위의 법의 부칙 ‘청년단, 향토방위대소방관·의용소방대 등 기타 애국단체원’에 해당되어 김영준이 원호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원호대상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원호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는 경찰과 마찬가지로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하는 행위를 하다가 부상당하거나 죽은 사람에 한정하여 해당된다.

김영준의 경우 행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1998년 여수문화원에서 펴낸 '14연대 반란 50년 결산집'에는 김영준이 사망한 10월 23일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원문을 옮겨보면,

10월 23일

<중략>

보안서에서는 20일부터 그 때까지 잡아들인 경찰과 우익 인사들이 약 120여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오전 10시경 아군 정찰기의 엔진소리를 들고 흥분한 나머지 2층에서 뛰어 내리려던 연창희(경찰서 후원회장)와 박귀환(대동청년단장) 등 2명이 보초에게 사살되었다. 여기에 당황한 보안서에서는 그동안 최고심사위원회에서 사형이 확정된 경찰관 2명과 민간인 10명의 집행여부를 놓고, 결정대로 집행을 하자는 유목윤 일당의 강경파와 징역으로 감형하여 주자는 이용기 일파의 온건파 간에 대립이 있어 집행이 보류되어 왔는데 이같은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자 이날 오후 2시 보안서 앞뜰에서 이들을 처형해 버리고 나머지는 전원 석방했다.

처형 당한 경찰과 민간인의 명단은

-경 찰 : 박찬길(사찰계 형사), 박기남(사찰계 형사),

-민간인 : 김영준(천일고무 사장, 한민당 위원장), 차활언(한민당 510 선거출마), 김창업(대한노총지부장), 김수곤(한민당), 최인태(우익), 김본동(우익), 서종형(우익), 이광선(CIC 요원),

인민위원회 심사에서 양심 경찰관이라고 풀려나온 경찰 명단은 다음과 같다.

정홍수(보안과장), 정주용(수사과장), 이해진(경사), 허 종(경사), 김우본동(순경), 이상배(순경), 김형순(순경), 이정호(순경), 정선도(순경)

김영준은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장형 김재준의 생일을 맞이하여 10월 18일 여수에 내려온다. 그리고 여순항쟁을 맞게 된다. 위의 인용문은 10월 23일 김영준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김영준은 민간기업 사장이었으며, 한민당 여수지부 위원장이었다. 한민당 위원장이 국가보훈처가 말한 애국단체원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김영준이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할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준의 사망과 관련된 기록이 1948년 11월 2일 <조선일보>에 보도된다. <조선일보>는 여순항쟁 발발부터 1주일간 여수의 상황을 일지형태로 보도하였다.

10월 24일자 일정에 보면, '오전 9시경 해군 부대가 맹포격을 피고 그 후 상륙을 기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그들은 낭패의 극에 달하여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이때 체포 수감된 연창휘, 박귀환의 양씨가 탈옥 도주하려고 하다가 총살을 당하였는데, 사태의 급박을 눈치채인 반군보안대원은 김영준, 차활인씨를 끌어내어 총살하여버렸다'고 보도하였다.

▲ 조선일보 1948년 11월 2일 신문  ⓒ주철희
▲ 조선일보 1948년 11월 2일 신문 ⓒ주철희

김영준의 사망은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하는 행동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묘비에 기록한 ‘전사’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신분을 경찰로 둔갑한 조작이다. 그의 총살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사’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봉기군 또는 지방좌익이라고 일컫는 인민위원회 사람들은 김영준을 왜 처형했던 것일까?

김영준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 등으로 감수포장을 받았다. 해방 이후에도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여수군지부장과 한국민주당 여수지부 위원장을 지냈고, 여수상공회의소 회장, 조선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했다. 즉, 반민족행위자이며 우익인사라는 복합적인 이유로 총살되었다.

한편 김영준은 여수미평초등학교 설립과 여수상공회의소 활동 등의 기여로 1969년 여수시에서 시민의 상을 받았다. 그의 공적만큼이나 친일행적에 대한 검토 없이 수여한 상이다. 따라서 여수시는 친일행적이 뚜렷한 인물에게 수여한 시민의 상을 취소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  1942년 1월 16일  ⓒ주철희
▲ 1942년 1월 16일 ⓒ주철희

「경찰원호법」과 「전몰군경유족과 상이군경연금법」은 6.25전쟁 와중에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률이 제정된 것은 6.25전쟁에서 경찰도 전투에 참전하여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다보니 경찰의 전투 사기 진작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 짐작된다. 아울러 일명 애국단체원도 전투에 참전할 경우 그 희생을 국가에서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고자 부칙에 ‘청년단, 향토방위대소방관·의용소방대 등 기타 애국단체원’을 명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하는 행위’라는 것은 6.25전쟁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1953년에 시행된 「전시근로동원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6.25전쟁 이전에 사망한 일명 우익반공인사를 이 법률에 적용하여 국가유공자로 등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특히 1961년 김영준을 원호대상자로 등록할 당시 정확하게 공적을 심사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4. 국가유공자 전면 조사가 필요

▲ 국가보훈처가 매달 독림유공자와 유족에게 지급하는 금액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 국가보훈처가 매달 독림유공자와 유족에게 지급하는 금액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국가보훈처는 20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유공자 공적 전수조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시 보훈혁신위원회가 지적한 내용을 살펴보면,

“광복 이후의 사회혼란과 6·25전쟁 전후복구 등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은 1962년도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며 "공적심사 초기에 공적심사위원회의 구성·운영이 미비했고 자료의 한계로 인해 포상 훈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유가족, 기념사업회, 국회, 언론 등에서 꾸준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독립유공자도 1962년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공적심사 초기에 여러 문제가 제기되어 독립유공자 공적의 전수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짜 독립유공자와 관련된 뉴스가 심심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독립유공자 공적심사만 문제가 있었을까? 김영준은 1961년에 원호대상자가 되었다고 국가보훈처는 밝혔다. 본격적으로 공적심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원호대상자가 되었다.

김영준의 사례처럼, 「경찰원호법」과 「전몰군경유족과 상이군경연금법」의 부칙을 적용하여 6.25전쟁 이전의 우익반공인사를 국가유공자로 둔갑했을 가능성이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국가보훈처는 인식하고, 국가유공자의 공적에 대해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국립현충원 그리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 등의 지원금도 세금으로 지급되고 있다.

▲ 2019년 전남도교육정은 학교내의 일재잔재 조사를 했다. 그때 김영준의 친일협력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주철희
▲ 2019년 전남도교육정은 학교내의 일재잔재 조사를 했다. 그때 김영준의 친일협력을 자세히 기록해 두었다. ⓒ주철희

만약 가짜 국가유공자가 이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가짜 독립유공자를 찾아내어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당연하듯 국가유공자도 가짜를 찾아내어 올바른 보훈정책을 실현할 책무가 국가에 있다.

국가기관인 국가보훈처는 이런저런 법률로 해명하기보다는 국민의 정서에 맞는 보훈 정책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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