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을 가려면 여수 여객선터미널이나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타야한다.
금오도를 들러 다음에 배가 닿는 섬이 편안할 안(安)자를 쓰는 안도이다. 안도에 이야포가 있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양새인데 이런 포구를 모항(母港)이라고 한다. 산줄기가 동서로 길게 뻗어 바다를 품고 있는 만(灣)이라 그렇다.
마을사람들은 이야포에서 멸치잡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이야포 건너편에는 여수 열도 마지막 섬 소리도(연도)가 있다. 이 사이 해상으로 삼백 오십 여명 피난민들을 태운 피난선 한 척이 지나고 있었다. 안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경찰은 검문을 하기 위해 피난선을 이야포에 강제로 정박시킨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8월 2일 오후나절이었다.
다음날 오전 아홉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 피난선에 탄 피난민들 사정을 들은 안도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쌀을 거두어 밥을 지었다. 피난민들은 안도 주민들이 해 준 고마운 밥을 피난선 안에서 먹어야 했다. 경찰검문을 기다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명령에 따라 이동하는 피난민들은 정해진 경로를 이탈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난선을 향해 나타난 것은 경찰이 아니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발진한 F-80 '슈팅스타'라는 전폭기 편대 4대였다.
피난민들은 미군전폭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미군전폭기들은 피난선을 향해 50미리 기관포를 쏟아 붓기 시작했다. 기관포를 머리에 맞은 피난민은 머리통이 날아가고, 복부에 맞은 사람은 창자가 쏟아지고, 허벅지에 스친 사람은 뼈가 드러났다.
피난선 안에서 쓰러져 죽고 바다에 떨어진 피난민 150여명이 죽었다. 1950년 8월 3일 일어난 ‘이야포 미군기에 의한 피난민학살사건’ 이다. 이런 사건을 전쟁범죄(War Crimes) 라고 한다.
7월 26일 충북 영동 노근리. 인민군에 패퇴하여 밀려난 미군 제 1기병대가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영동 주곡리 마을사람들은 전쟁에 방해된다며 미군에 의해 소개명령을 받고 남쪽 노근리로 이동하고 있었다. 미군 1기병대에는 방어선으로 남하하는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은 적으로 간주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지상에서는 기관총이 불을 뿜고 그것도 모자라 전폭기를 불러 하늘에서 기관포를 퍼부었다. 미군명령에 따라 피난길에 올랐던 영동 주곡리 마을사람들 200여명이 노근리에서 죽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대표적 학살사건으로 알려진 ‘노근리학살’ 사건의 내용이다.
세월이 흐른 뒤 노근리 학살사건은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급기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유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때서야 한국 국회에서 ‘노근리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비로소 학살 당한 피난민들과 유족들은 빨갱이가 아니었음을 정부가 공식인정 됐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편히 쉴 수 있는 평화공원이 만들어졌다. 구천을 떠돌던 피학살 피난민들 원혼은 평화공원이 만들어지면서 원혼들은 과거역사와 분리되어 쉴 수 있게 되었다. 원혼은 이장(移葬)이라는 제례(祭禮)를 통해서 비극적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장되지 못한 원통한 혼령은 학살이라는 폭력의 끔찍한 드라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속적인 비극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쉽게 표현해서 이승을 떠나지 못한 귀신으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의 비극적 드라마에 의해 귀신이 된 원통한 혼령은 유족이 묘를 쓴다고 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지도 못하며 비극적 역사 드라마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래서 국가 비극드라마에 의한 귀신은 국가가 당주를 맡아 굿을 해서 혼을 달래고 성스러운 묘에서 쉬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국가 제사날인 현충일이고 제사 지내는 곳이 국립현충원이다.
한국전쟁 중 적의 총탄에 맞아죽어 산천초야에 파묻혀 있는 국군 유해를 발굴하여 현충원에 이장하는 것은 혼을 전투라는 끔찍한 드라마에서 분리시켜 안식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여기에 전투에서 패했거나, 탈영하였거나, 적에게 포로가 되어 사망한 군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의 혼은 쉴 곳이 없다. 오로지 유족에 의해 가족제례를 통해 혼이 위로받을 뿐이다.
이렇게 국가는 국가를 위해 죽은 이들을 선별하여 제사도 지내고 묘도 쓰는 사후관리를 통해 국가정체성을 세우고 국민을 국가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킨다. 일본의 경우 전범들의 혼을 야스쿠니 신사에 모아놓고 정치인들이 머리를 조아린다. 일본 국민들에게 천황 파시즘을 합리화하고 재생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미국 알링턴 참전국립묘지에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해외전쟁에서 숨진 자국 군인들 혼을 모아놓고 영원한 군수산업복합경제체인 전쟁국가를 이어가게 조장한다.
그런데 유족조차 원혼이 죽음의 비극적 드라마에서 분리시키지 못하고 혼이 구천을 떠도는 죽음도 있다. 전쟁에 의한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 이차적 피해)로 부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다. 부수적 피해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부당한 죽음을 당한 민간인 사망자를 말한다.
부당한 죽음은 국가정체성을 세우는데 방해가 되므로 가리어진다. 국가가 전쟁 사후정책을 세움에 있어 이물질에 불과한 것이다. 진상이 드러나게 되면 그때서야 전쟁 와중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희생’ 당한 사람들이라고 그럴 듯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죽음이 부당한 죽음이다.
부당한 죽음 축에도 끼지 못하는 ‘원통한 죽음’이 있다. 부수적 피해로 인한 부당한 죽음을 당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적으로 규정되어 학살한 죽음이다. 이들은 ‘희생자’가 아니라 ‘피학살자’ 인 것이다. 여순민중항쟁 당시 이승만 진압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희생자’가 아니라 ‘피학살자’ 이듯이 이야포에서 미군기에 의해 죽임을 당한 피난민 역시 희생자가 아닌 ‘미군기에 의한 피학살된 사람들’이다. 국가에 의해 나쁜 사람으로 규정되어 나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다.
나쁜 국가권력 하에서 나쁜 죽음은 유족이 제사조차 남몰래 치러야 했다. 햇볕 바른 양지가 아닌 음지에서 남몰래 치르는 제례로는 원통한 죽음을 끔찍한 드라마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없다. 우리말로 표현하면 혼이 구천을 헤매게 되는 것이고 유족에게는 한 많은 세월을 보내게 만든다.
이를 끝내고 원통한 혼이 끔찍한 과거와 현재로 분리시켜 주는 방법이 이장(移葬)이다. 그러나 이승만으로 부터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까지 이야포 원통한 죽음은 이장은커녕 제사마저 지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원통한 죽음은 ‘적’ 즉 ‘빨갱이’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를 인지한 지역신문사(여수넷통뉴스, 여수뉴스타임즈)에서 4년 전부터 조촐하지만 추모제를 이야포에서 지내왔고, 올해 71주년은 여수 정관계 인사들도 참석한다고 한다.
이참에 말할 것이 있다. 정부명령에 따라 피난선에 오른 피난민들이 학살당한 것은 부수적 피해가 아니다. 명백히 미군의 전쟁범죄로 살육당 한 것이다. 또한 분명히 밝혀내야 할 것이 있다. 전선이 형성되어 있지 않는 이야포에 정박한 피난선을 미군전폭기가 사전 정찰도 없이 어떻게 나타나 핀셋 폭격을 했으며, 폭격 요청을 한 주체는 누구인가. 그리고 굳이 이야포에 널려진 시신들조차 배에 실어 기름까지 끼얹고 불을 질러 수장시킨 한국경찰은 왜 이차 죽임을 저질렀는가.
노근리 학살사건과 성질이 다른 이야포 학살사건이다. 여기에 대한 진상조사는 국가가 해야 한다.
글 양영제 (소설가. 소설 『여수역』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