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여수에는 고아거지들이 참 많았다. 고아거지들은 주로 미군 깡통을 들고 집집마다 돌면서 밥을 얻었다.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을 것이다. 주로 한국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미군깡통을 들고 거지생활을 해야 했던 전쟁고아들이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민간인 목숨을 앗아갔다. 그만큼 전쟁고아도 많이 생겼다.
서울에는 수많은 전쟁고아나 부랑인들이 배회하였다. 특히 청계천에 많았다. 5.16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서울을 정화할 필요가 있었다. 서울 길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인들을 잡아 어린 고아들은 선감학원 등 수용시설로 보내거나 전라선 호남선에 태워 내려 보냈다.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별다른 전투가 없었던 여수에 거지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전쟁 당시 이렇다 할 만한 교전이 없었던 여수에서 전쟁고아가 발생했다. 1950년 8월 3일 여수 부속섬 안도 이야포였다. 해변에 정박해 있던 피난선에 미군기가 폭격을 퍼부어 150여명이 학살 당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야포 피난선 미군폭격기 학살사건이다. 한국전쟁 중에 피난처를 찾아 가던 피난선을 미군폭격기가 제거한 것이다.
충북 영동 노근리학살사건도 그렇지만 이야포학살사건도 순전히 적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미군의 불안은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대량학살로 제거했다. 더불어 학살고아도 발생했다. 전쟁 부수적피해로 발생한 전쟁고아들이 아니라 전쟁을 빌미로 자행된 학살로 부모를 잃은 고아다. 그 중 현재 마지막 생존자로 알려지고 있는 이춘혁 어르신은 그날의 참상을 증언한다.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함경북도 용평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남한이 살기 낫다는 판단에 월남한 가족이었다.
한국전쟁이 발생하고 이야포에서 졸지에 부모를 잃은 이춘혁 형제는 부산으로 가서 거지생활을 해야 했다. 깡통을 들고 남의 집 대문을 두들기고 구두를 닦고 신문팔이를 하며 거적으로 만든 움막에서 살아내야 했다.
해방 후 남북을 각각 점령한 소련과 미군의 패권 갈등장이 되어버린 한국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 갔고 그만큼 많은 전쟁고아를 만들어 냈다. 어떠한 명분이든 전쟁이 갖고 있는 기본적 속성이다. 전쟁은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명분이라도 전쟁은 일어나서 안 되는 것을 지금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생생히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평화안보 삼각안보 체제구축이라는 명분으로 군사적 긴장관계를 높이고 있다. 대 중국 인도차이나 방어기지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초기지로 이 땅이 쓰이는데 아낌이 없다. 북한을 주적으로 강화시키고 자극하여 정권유지 기반으로 삼으려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 정권유지를 위해 적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고 긴장을 높일수록 집권지지 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그러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물어보고 싶다. 노근리 피난민 학살사건과 이야포 피난선 학살사건, 두룩여 조기잡이 학살사건을 아는지 물어보고 싶다.
8월 3일은 1950년 한국전쟁 개전 당시 전남 여수 부속섬 안도 이야포에 정박한 피난선이 미군기 폭격에 의해 학살 당한 날이다. 우리는 원통하게 숨진 그날의 피난민들을 위령하고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기를 기원하기 위해 추모제를 개최한다. 한반도 진정한 평화는 군사긴장을 높여놓고 선제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와 패배의 의미 자체를 잃을 때라는 것을 되새김하기 위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