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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룩여 특별기고문] 백발이 된 마지막 생존자의 서글픈 애국가

전쟁범죄를 일으킨 국가에 사죄 요구조차 못하는 대한민국
추모제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경종

  • 입력 2023.08.08 15:00
  • 수정 2023.08.08 15:06
  • 기자명 양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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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8월 9일 두룩여 해상에서 조기잡이 하던 중 미군기 폭격에 살아남은 박영근 씨가 증언하고 있다
▲ 1950년 8월 9일 두룩여 해상에서 조기잡이 하던 중 미군기 폭격에 살아남은 박영근 씨가 증언하고 있다

제트기들이 괭이 갈매기처럼 먹이감을 찾아 여수 바다 위를 날아다녔다. 수면 위에는 조그만 어선들이 조기잡이를 하고 있었다.

제트기들은 어선들을 향해 무차별 폭격을 하여 어부들을 픽픽 쓰러뜨렸다. 미군 제트기들이고 조기잡이를 하는 여수 어부들이었다. 배 위에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미군 제트기들은 기관포를 쏘아 20여명 사상자를 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해 1950년 8월 9일이었다.

미군 조종사는 폭격결과에 대해 만족한다고 임무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른바 1950년 8월 3일 이야포 피난선 학살사건과 함께 저질러진 ‘미군기에 의한 두룩여 조기잡이 어선 학살’이다.

이야포 피난선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서울 피난민 이춘혁 소년은 안도 서고지 산에서 두룩여 학살을 목격하고 있었다. 소년은 한국을 도우러 온 미군기가 왜 민간인들을 향해 기관포를 쏘아 학살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73년이 흘러 백발노인이 된 이야포 학살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은 지금도 여전히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추모제에서 의례적인 애국가 제창을 따라 부를 뿐이다. 서글픈 애국가 제창이다.

미군기에 의한 이야포 피난선 학살 73주년 추모제에서 지역 김회재 국회의원은 의미 있는 추도사를 했다. 추모제를 갖는 이유는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전쟁의 참화를 목격하고 있고 그래서 추모제를 통해 전 세계 평화를 구축하는데 작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국가권력을 지배한 큰 힘이 작동되어 진실이 왜곡되고 파묻혀 왔다고 했다. 더구나 당사자가 한국을 도우러 온 미군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고단함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후에는 정의가 승리하는 진실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몇 해 동안 추모제를 진행해 오는 동안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메타인지(meta認知)된 추모사를 듣게 되었다. 메타인지라는 용어는 말 그대로 ‘인지 이상의 것’을 말한다. 김회재 의원 추도사를 나름 해석하자면 이렇게 된다.

‘그동안 미군이 이 땅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억눌려 왔었다. 정권유지를 미국과 밀착할 수밖에 없었던 친미군사정권들이 굳혀 놓은 미군참전 성격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의 전쟁범죄를 밝혀내고 사죄를 받아 내는데 험난한 과정이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실을 밝혀 나가는 과정에서 사실 속에서 드러나지 않으려 하는 진실, 즉 대한민국 평화와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참전했다고 하는 미군이 왜 노근리 피난민 학살이나 이야포 두룩여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는지 뒤집어 생각해 봐야 한다.’

대한민국 국가체제는 한국전쟁으로 확립됐다. 그래서 공산세력과 싸우다 숨진 국군이나 경찰은 호국영령이라 칭하며 현충원에 모시고 해마다 기린다. 반면, 전투 중 북한군에 포로가 됐다가 풀려난 패잔병 국군은 경남 용초도에 가두어놓고 조사하면서 국가유공자에서 배제시켰다.

전쟁 중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조사하거나 위령하지 않았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부에 따라 죽음을 사후관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원통하게 미군에 의해 학살 당한 민간인 죽음 따위가 어떠하랴. 그래서 이런 원통한 죽음을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여간 달갑지 않게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학살 진실을 밝혀내는 것은 그만큼 어렵고 지난한 싸움인 것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민간인을 제거해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거나 책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을 전쟁범죄(war crime)라고 한다. 미국은 한국전쟁 중에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전쟁범죄에 대해 이런 요구를 할 수 없는 정부라면 주권을 가진 국가를 운영할 정부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다가온 8월 9일에는 1950년 8월 9일 이른바 두룩여 조기잡이 어선 학살사건으로 원통한 죽음을 맞은 여수사람들 위령비 제막식도 열린다.

우리는 추모제를 통해서 원통한 죽음에 대해 위령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73년 전 한국전쟁 중에 일어난 미군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추모하고 기리는 까닭은 단지 원통하게 숨진 민간인들 한을 위령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사건 진실을 통해 전쟁의 속성과 미군의 한국전쟁 참전 성격을 다시금 조명하자는 것이다.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는 학술대회나 토론회에서 확산되어야 한다. 그래야 추모제를 갖는 의미가 숙성되는 것이다.

추모의례만 통해서는 추모제 의미가 발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미국에 전쟁범죄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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