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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감정을 포장하면 관계가 멀어진다

좋은 관계는 진실한 만남이 필요하다
진실뒤에 감취진 민낯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은 입술에 올려지는 단어가 달라져야 한다

  • 입력 2023.12.21 07:20
  • 수정 2023.12.21 07:22
  • 기자명 주경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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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을 좇다 의로움을 잃는 세상 ⓒ pixabay
▲ 이익을 좇다 의로움을 잃는 세상 ⓒ pixabay

어느덧 2023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면서 누구나 살아온 한 해를 돌아보고, 살아가야 할 내일을 예상하다 보면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함께 다가올 내일에 대한 설렘, 걱정, 불안, 초조한 감정이 들기도 할 것이다.

교수들이 꼽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 즉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잃는다’는 뜻이다. 생경한 사자성어임에도 뜻풀이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뉴스를 통해 전해 들은 여러 소식으로 인해 성실하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이 느낀 허탈감의 크기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뉴스에 나올만한 커다란 이익만 이익은 아니다. 나를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올 한 해 얼마나 많은 이익을 좇았는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로움을 잃어버렸거나 빼앗겼는지는 뉴스나 신문 지면이 아닌 스스로 질문해 보아야 하며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기준에서 평가해 보아야 한다. 돈을 좇자니 양심이 허락지 않고, 의로움을 좇자니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딜레마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는가를 돌아보자는 것이다.

▲비난의 말과, 분노에 찬 표정이 습관이 된 현실 ⓒpixabay
▲비난의 말과, 분노에 찬 표정이 습관이 된 현실 ⓒpixabay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아버지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친구와 게임에만 빠져 사는 아들을 보는 순간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먹었던 각오는 온데간데없고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던 비난의 말과, 분노에 찬 표정과 경멸에 찬 태도가 습관처럼 나와 버린 것도 선택이었다.

그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아들 역시 선택을 한 것이며, 절망스러운 아들을 발견하고 퍼뜩 정신을 차려보지만 이미 준비했던 단어와 감정은 사라지고 한 뼘 더 멀어져 버린 관계의 협곡 앞에서 애써 태연한 척 감정을 포장한 것도 선택이었을 것이다.

특정 누군가의 아버지 모습이 아니다. 또한 특정 누군가의 아들 모습도 아니다. 아버지의 모습도 아들의 모습도 어쩌면 어느 순간 나의 모습이고, 지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보여주고 있는 지금 나의 모습일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아버지를 비난할 자격, 이 아들을 비난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는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누군가 이들을 비난한다면 그 사람은 포장을 잘 하는 사람일 것이다. 나의 허물은 합리화하고, 나의 초라함을 감추기 위해 애써 더 화려하게 포장하는 그런 삶이 위선임에도 나와 관련이 없는 위선자가 아닌 내 친구, 내 가족, 또는 나이다.

이 아버지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으면 필시 “안 그러려고 했는데….”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러셨을까요?’라고, 물으면 “아들이 기어이 나를 화나게 했다"고 할 것이다.

▲가장 순수한 집단이지만 가장 많은 포장이 이뤄지는 곳, 가정 ⓒpixabay
▲가장 순수한 집단이지만 가장 많은 포장이 이뤄지는 곳, 가정 ⓒpixabay

가장 순수한 집단이지만 가장 많은 포장이 이뤄지는 곳이 가정이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기어이 집에까지 가져와서 가족에게 표출하는 아버지, 남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참는 게 미덕이 되어버린 엄마, 살얼음판 위를 걷듯 위태로운 가정 분위기를 탓하며 부모의 관심을 얻기 위해 절도를 하는 아들, 부모의 문제를 고민하느라 수업에 집중 못 하는 딸까지..

폭력을 포장하고, 분노를 포장하고,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탓으로 포장하다 보니 포장하지 않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포장되어 버린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포장과 페르소나는 엄연히 다르다. 페르소나는 사람, 장소, 목적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능력인 반면 포장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드는 변조와 위조를 말한다.

대화법 중에서도 가장 부적절한 대화법은 암시적 대화법인 것처럼 속인다는 것을 달갑게, 기쁘게 받을 사람은 없다. 자신조차 속이지 못할 거짓이라면 타인은 절대 속일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자신조차 속여버리는 포장도 있고 그건 판단 능력이 없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부모의 ‘말’이다.

착한 아이라는 포장은 힘듦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멋진아이는 안 멋진 일은 말할 수가 없고
똑똑한 아이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똑똑하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고
너무 대단한 그 아이는 대단하지 못할까 봐 이상 행동을 하게 된다.

항상 강인해야 한다고 포장된 아들이 ‘그동안 견디느라 참 많이 고생했다’는 낯선 상담사의 위로 한마디에 아이처럼 눈물 꼭지를 틀고 한참을 엉엉 우는가 하면, 세상 온화한 표정의 어머니 역시 “내쉬는 한숨이 참 뜨겁게 느껴지는데, 마음은 얼마나 끓어오를까요?”라고 말 한마디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채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입술에 오르는 단어의 수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 pixabay
▲입술에 오르는 단어의 수준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 pixabay

내년이 올해보다 나은 삶이라는 증거는 내 입술에 오르는 단어의 수준에 달려있다. 부모로서, 자녀로서, 교사로서, 정치인 또는 연인으로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내가 나조차 속이려고 했던 수많은 포장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란다.

바둑기사는 대국이 끝나면 복기를 통해 자신의 전략과 상대방의 전략을 점검하는 시간을 통해 더 나은 전략을 찾고,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전략을 상대의 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을 경험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고 싶고 더 잘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복기해보고, 그 안에서 나답지 않았던 것들, 나를 위한답시고 결국 나를 상처입혔던 의롭지 못한 선택과 단어들을 찾아 갈무리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진짜 나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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