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서인국 교수는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라고 말했다.
나는 2018년 정년퇴직 후 ‘어떻게 하면 즐겁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을까?’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시간만 잘 활용한다면, 행정복지센터나 평생교육원, 여성회관 등에서 배우고 싶고, 즐기고 싶은 프로그램이 수도 없이 많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런데, 나는 예체능에 재능이 1도 없다. 음치, 박치, 몸치에 손재주도 없다. 하지만 용기를 냈었다. ‘댄스’는 시니어 두뇌 활동과 건강에 좋다고 한다. 나는 행정복지센터에서 하는 ‘스포츠댄스’ 프로그램을 수강했었다.
역시나 스포츠댄스는 재능도 없고 유연성도 없는 나로서는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결국 함께 배우는 수강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쉽지만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다, 노래교실, 캘리그라피 프로그램 등도 수강했었다. 하지만 내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오래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 경험으로라도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고 싶어서 인문학 강좌, 전시회 등을 기웃거리는 노력은 계속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친구 명숙은 평일에는 매일 시 한편씩을 여중․고 동창 단톡방에 올려주고 있다. 명숙은 중학교 미술교사로 근무하다 명퇴해서 지금은 경기도에 살고 있다. 2024년 1월 1일에 보낸 시는 박두진의 시 ‘해’였다. 선정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명숙이 정해서 올려준다.
나는 그동안 눈팅만하거나 그냥 스쳐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댓글은 가뭄에 콩 나듯 일 년에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달고. 댓글을 자주 다는 친구는 서너 명 정도이고, 다른 친구들도 다 나와 비슷하다.
뒤이어 4일 명숙은 박두진의 시 ‘해의 품으로’를 단톡방에 올렸다. “동서양의 화가들이 그린 그림으로 새해의 밝은 기운을 전해드립니다”라고 하면서 ‘일출 그림 18장’도 함께 보내왔다.
우리나라 해돋이 명소에는 솟아오르는 새해의 찬란한 태양을 만나기 위해 많은 인파로 북적댄다. 어두컴컴한 세상이 희미하게 밝아 오면서 하늘과 바다가 불그스레 물들면, 우리는 불덩이 같은 둥근 해가 떠오르길 숨죽이며 기다린다.
새해 첫날 해가 손톱만큼 보이다가, 순식간에 ‘둥근 태양’이 찬란하게 솟아오르면 사람들은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환호성을 지른다. 새해 첫날 해돋이 행사는 각자의 소망을 기원하며 새해의 각오를 다짐하는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다.
게으른 나는 명숙이 덕분에 단톡방에 올라온 일출 그림으로 새해 해맞이 의식을 치렀다.
우리나라 화가 그림으로는 겸재 정선의 ‘목멱조돈(남산의 일출)과 낙산사 일출’을 비롯한 김영국의 ‘WORK(일출)’을 보내왔다.
서양화가로는 인상파를 소개할 때 맨 먼저 나오는 그림, 화가 모네의 ‘인상 - 일출’과 화가 고흐의 ‘노란 하늘과 해가 있는 올리브 나무’ 그리고 뭉크의 ‘The Sun', 달리의 'Egg Sun Ray' 등이 포함된 그림이다. 그 중 일부는 전에 본적이 있었지만 처음 본 그림도 많았다.
달리의 'Egg Sun Ray'는 처음 본 그림이었다. 계란 속에 샛노란 태양이!
두 쪽으로 갈라진 계란에서 샛노란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계란 노른자가 바로 화려하고 강렬한 태양광선으로 변하다니! 눈이 부시게 황홀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을까? 역시나 예술가들은 천재들이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색다른 창의성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뭉크의 ‘The Sun'은 2022년도 예울마루 아카데미 ’정00 도슨트가 진행하는 미술 강좌‘에서 처음 봤던 그림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강당의 벽화로 그려졌다는 뭉크의 ‘태양’(1910-1911)은 정면으로 내뿜는 태양 에너지가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했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와 ‘아픈 아이’ 등을 조금 알고 있던 나로서는 ’태양‘을 본 순간 ’절규의 화가가 이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하며 감탄했다. 강렬하게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태양빛에 새 희망이 솟구치는 가슴 벅찬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왔었다.
뭉크의 ‘태양’은 뭉크를 노르웨이 국민화가로 만들었고, 노르웨이 화폐 앞면에는 뭉크의 초상이, 뒷면에는 뭉크의 ‘태양’이 지금도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명숙은 지난 1월 9일 박두진의 시 ‘거울 앞에서’를 손글씨로 써서 단톡방에 올렸다.
나는 ‘거울 앞에서’를 낭송하며, 가슴 아리게 보고 싶은 엄마를 그리워했다.
손글씨로 올라온 시를 보자 문득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손끝으로 만나는 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생각이 났다. 그때 강사가 ‘손끝으로 만나는 시’ 밴드에 매일 시를 선정해서 올려주면 필사하고 낭송했었다. 새로운 시를 감상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명숙이 올려준 시를 손글씨로 필사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동안 올려준 눈팅만 하고 스쳐지나간 날이 많았는데, 오늘부터 손글씨로 시를 필사하겠다”고 단톡방에 올렸다.
유머러스한 명숙은 “수제자 곧 교장 승진 발령 나겠네. 맛저해 ~♡” 하고 댓글을 달았다.
나는 스스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 현이에게 개인 톡을 했다. “명숙이 단톡방에 올라온 시를 당일 중으로 손 글씨 필사하고, 둘이 서로 인증샷을 남기자”고 약속했다. 현이는 함께 여행 갈 때마다 간식거리를 한 가방씩 준비해 오는 우리 친구들의 천사다.
그날 이후 나와 현이는 매일 ‘필사한 시 인증샷’을 개인 톡에 올리고 있다. 명숙이가 단톡방에 올려준 시 덕분에 매일 새로운 시를 읊조려 본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작지만 선한 영향력으로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일들이 많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서로 나누고 함께 하는 마음은 참으로 고맙다.
시를 필사하고 배우는 것만으로도 내 삶에 작은 기쁨과 위로가 된다. 시를 낭송하며 시인의 감성을 느껴보는 소소한 즐거움으로 포근하게 지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특별한 이벤트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 영은 시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