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여수여해재단(강용명 이사장)이 시민들과 함께 이순신장군 참배길을 걸었다.
28일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충민사에 모인 참가자는 여수시에서 주관하고 여수향교에서 주최하는 이충무공 탄신제를 참관한 후 6.5km에 이르는 참배길을 걸었다. 여수여해재단 강용명 이사장은 행사 시작 전 인사말에서 “재단에서 의미있는 장소만 선정해 참배길을 구상했다. 꾸준히 유지하여 재단의 색깔을 살린 활동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먼저 이들은 충무공 이순신과 또 충민사와 특별한 관련이 있는 석천사를 들렀다.
석천사 홈페이지 소개글에는 “옥형.자운 두 스님이 이순신을 도운 승장이었고 이순신 사후 스님이 나서서 충민사에서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이런 연유로 석천사에는 임란 참전한 승군을 기리는 ‘의승당’ 당우를 지었고, 당우 주련에는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이 지은 싯구가 새겨져 있다. 아래 글은 의승군과 이순신을 기리는 주련에 적힌 싯구다.
“玉炯慈雲(옥형.자운) 두 큰 스님 삼백여 義僧軍(의승군)
임진.정유 왜란에 온중생 허덕일제
연꽃 잡은 손으로 護國(호국)의 기치 들어
왜인의 침략야욕 破邪顯正(파사현정) 하셨네
충무공 순국하여 호국의 龍(용) 되시고
의승군 大乘(대승)의 얼 등불 되어 빛나네.”
이후 참가자는 걸어서 자산공원 이순신동상으로 향했고 이후 임진난수군위령탑에서 참배했다.
현재 이순신참배길걷기는 9기가 활동 중이다. 한 주민은 이순신참배길걷기 푯말을 들고 걷는 일행을 보고 “어디서 오셨냐”고 묻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여수 이순신동상
자산공원 이순신동상은 광화문 이순신동상보다 1년 빠르게 세워져 국내 여러 이순신 동상 중 가장 의미가 깊다.
오병종 사무국장은 “1967년 건립기에 ‘전국 국민의 성금을 거두어 여기에 동상을 세웠다’고 적혀 있다. 자산공원 이충무공 동상 건립 당시엔 동상 앞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 성금 기념비’가 있었으나 시민의 철거 요청으로 동상 정면에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처음 설계 당시 이충무공 동상이 동쪽 일본을 향하도록 할 생각이었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의 자리로 바뀌었다. 그후 한 시민이 ‘원래 자리인 일본을 향하게 해달라’고 1인시위를 했으나 자리를 바뀌지는 못했다. 지금 와서 보니 동상이 일본을 향했다면 더욱 의미 있었을 것 같다.”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여수여해재단 김나현 실장은 노산 이은상(1903~1982)의 시 ‘충무공찬가’를 낭송했다.
“충무공 오 충무공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의 태양이여/ 거북선 거느리고 호령하는 그의 위풍 일평생을 정의에 살던 그이시다 내 동포 살리려고 피를 뿌리신 그이시다”
여수여해재단 강용명 이사장은 이순신동상 옆에 세워진 이충무공 약력을 살폈다.
“이순신 장군은 조선 최고 험지인 산수갑산을 3번이나 다녀왔다. 보통 과거시험에 합격 후 3개월이면 보직을 받는데 이순신은 1년반만에 겨우 보직을 받았으며 하필 그것이 산수갑산이었던 것이다. 세번의 직위착탈, 두번의 백의종군, 세 번의 산수갑산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죽을 때까지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산공원에는 ‘임진난 호국 수군 위령탑’도 자리해있다. 최정규 시인은 위령탑 뒤에 새겨진 박보운의 시 ‘아 좌수영 수군’을 낭송했다. 시는 여수의 선조 할아버지들을 칭송하는 내용이 담겼다.
다음 장소는 고소대이다. 오 사무국장은 “고소대에서 보는 달은 여수10경에 속할 만큼 아름답다. 대첩비각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가 미군정 시기에 찾아와 현재 이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고소대 대첩비각의 원래 명칭은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이다. 2010년 문화재청에 의해 ‘좌수영대첩비’에서 ‘여수통제이공수군대첩비’로 명칭이 바뀌었다.
통제이공수군대첩비는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의 공적을 기리는 국내 최대규모의 비석이다. 대첩비와 대첩비의 내력을 적은 작은 비석 ‘동령소갈’과 타루비, 3개가 한곳에 모여 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각이 지어져 있다. 일행은 이곳에서 대첩비와 타루비에 참배했다.
대첩비각과 대첩비의 내력에 대한 오병종 사무처장의 현장 설명이 이어졌다.
“제5대 통제사였던 유형 장군이 황해도에서 당시 조선 팔도에서 최대 크기에 우수한 석질의 돌을 구해 한강 하구로 옮겨놨다가 서해를 통해 여수로 이동해서 세웠다.
건립 이후 여수좌수영 영민들은 '비각계'를 구성해 300년 넘게 춘추로 제를 지내는 등 대첩비, 타루비, 동령소갈 3기를 관리해 왔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비각이 헐리고 대첩비와 옆의 비석들도 사라졌다. 다시 찾아와 해방 후 건립 할 때 여수시민들은 '비각계'의 정신을 이어받아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를 조직해 현재의 위치에 옮겨 세웠는데 현 위치는 일제 강점기 신사터였다. 이렇듯 대첩비각과 비석에는 여수 선조들의 공동체 정신인 ‘비각계’ 정신과 '충무공비각복구기성회' 정신이 스며있다. 이런 정신을 참배길 답사를 하면서 우리가 이어받았으면 좋겠다”
이순신 참배길 걷기에 함께 한 주해성 씨는 이순신학교 4기 수료생이다. 주해성 씨는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이순신학교를 수료했다.
그는 “고향이 여수이지만 과거에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이나 리더십을 많이 간과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오늘 여수의 역사적 성지를 다니면서 이를 후배들에게 많이 알려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여수밤바다로 유명한 이순신광장에도 이순신장군을 안내하는 시설물이 있다. ‘이순신장군을 도운 사람들’을 안내하는 돌북 형상에는 이억기, 원균, 권준, 어영담, 배홍립, 김완, 김인영, 나대용, 정운 등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오병종 사무처장은 “여수는 서너걸음만 걸어도 이순신장군에 대한 자료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순신학교 8기 수료생 곽수인 씨는 “여해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행사를 알게 됐다. ‘참배길걷기’ 첫 행사인데 매우 만족스럽다. 이미 알고 있던 곳들이지만 오병종 사무국장의 설명을 들으며 걸으니 더욱 의미있었다. 여수에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곳을 많이 알리고 코스도 만들어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여수여해재단은 시민과 관광객이 여수 도심 곳곳에서 이순신장군의 숨결을 느끼길 바라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오병종 사무국장은 “도심에서 반경 몇 키로 내에 참배 장소가 이렇게 많은 곳은 여수 뿐”이라고 말했다.
“충민사, 의승당, 자산공원, 대첩비각, 몇 걸음만 걸으면 이순신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늘 행사는 여수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고 건강을 챙기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시민과 함께 하는 참배길 걷기행사를 이어갈 생각이다.”
혼란스러운 현실... 이순신장군의 정신이 가장 필요해
이날 프로그램은 이순신광장에서 마무리됐다. 이순신학교2기 총무를 맡았던 기문종 씨는 ‘거북선찬가’를 낭독했고 참여자는 박수로 화답했다.
기문종 씨는 “이데올로기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지금, 이순신장군의 정신인 사랑, 정성, 정의, 자력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성인은 물론이고 초.중.고등학생도 참여하는 이순신둘레길걷기를 함께 하고 싶다. 봉사시간도 주어지니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사단법인 여수여해재단에서는 이순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제9기 33명이 등록해 연수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