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 동시게재 기사입니다. 34명의 몽골답사단과 함께 6월 17일부터 28일까지 다녀온 여행기 연재 중입니다.
알타이 답사단 일행이 몽골군이 서역을 정벌하러 떠났던 초원길을 따라 가며 많은 적석총을 관찰하고 울리아스타이시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 간신히 잡은 호텔로 들어가 시설을 살펴보니 70년대 한국 여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호텔이 많이 있으면 골라서 들어갈 텐데 하나밖에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간신히 졸졸 나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알람시간보다 내 몸시계가 더 정확하다.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울리아스타이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랐다. 50여미터 높이 정상에는 스투파들이 있었다.
스투파는 '유골을 안치하고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무덤'이라는 뜻으로 위쪽이 뾰족한 불교의 탑이다. 스투파가 있는 정상에 올라가니 아주머니 몇 명이 운동을 하고 있어 한 분에게 영어로 "굿모닝"이라고 인사를 말한 후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대뜸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이 나왔다.
깜짝 놀라 물으니 알타이시 공무원이다. "반갑다"며 " 8월에 LA에 사는 딸을 만나러 가는데 한국을 거쳐 갈 예정"이란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옆에 군인들 사진이 붙어 있어 알아보니 울리아스타이 시 출신 장군들로 사진 속 장군들 중에서 대통령이 두 명이나 나왔단다.
울리아스타이시 사람들은 징기스칸에 대항해 싸웠고 청나라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자존심이 강한 지역이다. 아침식사 후 울리아스타이 박물관을 들러 유물을 둘러봤다.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들이 우리 문화유산과 닮아있다. 아쉬운 건 영어로 인쇄된 안내문은 고사하고 팸플릿도 없어 통역을 통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 하지만 살림도구로 전시된 많은 것들이 우리와 닮았다.
실크로드에 가려진 초원로드
박물관에서 눈에 띄는 것 하나는 나무로 만든 수레였다. 인류가 발명한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는 수레다. 무거운 짐을 실어 운반할 수 있는 바퀴야 말로 대량의 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손쉬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수레가 전쟁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경이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실제적인 파괴력을 지니게 된 것은 바퀴 테두리를 지탱하는 뼈대를 사방에 부착한 전차 때문이다. 말이 이끄는 전차는 영화 <벤허>를 생각해보면 된다.
박물관에 소장된 수레가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었다. 하지만 네 개의 타원형 나무를 깎아 십자로 된 바퀴살로 고정시킨 수레바퀴의 정교함에 놀랐다. 수레 아래에는 두꺼운 축대를 만들어 장력을 지탱해주는 축에 연결해 놓았다.
13세기 몽골인들은 유라시아 초원길을 통해 유럽의 일부까지 정복했다. 몽골의 세계정복은 이슬람문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지만 한편으로 이슬람을 중용해 동서문화 교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슬람의 천문학, 의학, 음악, 인쇄술, 화약, 도자기, 나침반 등의 보급으로 서구 근대문명을 촉발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말이 이끄는 수레와 전차는 몽골군의 기동력을 대변해줬다.
조직적 통치를 수월하게 유지하기 위한 역참제도
또 하나 눈에 띈 전시물은 역참제도를 나타낸 지도이다. 징기스칸은 통치 지역이 넓어지자 몽골의 전통적인 역참제도를 도입해 연락망을 설치했다. 역참제도는 정비를 거듭해 쿠빌라이 칸 때 완성되었다.
역참이란 수도를 기점으로 하여 각 지방으로 도로를 놓고, 40km 간격으로 여관과 말이 딸린 '참'을 설치한 제도이다. 참과 참 사이에는 소식을 전하는 파발꾼이 사는 마을이 5km 단위로 만들어졌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는 동안'이라는 뜻을 가진 '한참'은 '두 역참 사이의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몽골의 성산 오트공텡게르산을 바라보며 천제를 지내다
박물관 견학을 마친 일행의 다음 여정은 몽골인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오트공텡게르산(4021m) 자연보호금지구역 내에 있는 다얀산. 울리아스타이에서 동쪽으로 4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오트공텡게르산은 옛부터 샤머니즘으로 유명한 산이다. 오트공텡게르는 '가장 젊은 하늘'이라는 뜻으로 한가이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자연과 인간 운명에 관한 불멸의 성지이고 티벳불교의 성산으로 5년에 한 번씩 몽골대통령이 참석해 산을 숭배하는 의식에 참석한다. 몽골신앙에서 '분노한 신들이 많이 산다'고 여기는 오트공텡게르 산에는 1963년 몽골 국내선 항공기가 추락해 2003년부터 등반이 금지됐다. 2017년 10월 27일에는 27명의 등산객이 조난당해 10명만 생환했다.
다얀산으로 가는 길은 관광객들이 출입하는 곳이 아니다. 해발고도가 2752m 높이라 가는 길이 만만찮다.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이 끊어지고 땅이 질퍽거리는 길이라 미끌어지는 차를 밀기도 했다.
선두에서 일행을 이끄는 저리거는 유목민에게 길을 물은 후 다얀산 접근로를 찾느라 4번을 돌고 돌아 목적지 아래에 도착했다. 산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우뚝 솟아 있었다.
일행은 발아래 예쁘게 핀 야생화와 돌무더기들을 살피며 바윗돌을 향해 천천히 올라갔다. "뭘 볼게 있다고 저 바위까지 올라가지?" 하는 궁금증은 바위 아래 도착해서야 풀렸다. 예쁜 야생화가 천지에 널려있었다. 일행이 몽골서부 알타이지역을 답사하는 동안 바라본 자연은 대초원과 황량한 모래사막뿐이었는데 여긴 아니다.
30여 미터 높이 바위에는 수많은 '하닥'이 걸려있고 오트공텡게르산이 바라보이는 쪽에 세워진 오보에는 하닥과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오보'는 몽골초원지대에 있는 돌탑으로 우리의 '서낭당'과 같으며 '하닥'은 주로 파란색 천을 나무나 돌에 감은 것으로 무사안녕을 빈다.
알타이 답사단은 이일걸 단장이 중심이 되어 천제를 드리고 하산했다. 정상에서 100여 미터쯤 내려왔을 때 야생대파가 곳곳에 자라고 있어 깜짝 놀라 이파리를 뜯어먹어보니 우리가 먹는 대파 맛 그대로다. 문득 어릴 적 읽었던 <사람 먹는 나라> 동화가 생각나 파가 이곳에서 한국으로 전래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동화내용이다.
사람이 소로 보여 서로 잡아먹게 되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에 살던 어떤 사람이 동생을 소로 착각해 잡아먹고 절망해 마을을 떠났다. 수십 년 후에야 그 사람은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마을을 찾았다. 마을 사람에게 물으니 파를 먹고 눈이 맑아졌다 했다. 그 사람은 기뻐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파를 심었으나 고향 친구들이 그 사람을 소로 보고 잡아먹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심어놓은 파가 다 자라고, 파 향기에 이끌려 파를 먹게 된 마을 사람들은 눈이 맑아져 다시는 사람을 소로 보고 잡아먹는 일이 없게 되었다.
차를 주차해 놓은 곳에 도착하니 가족들과 함께 여행왔다는 몽골인들이 있었다. 사진을 보여주며 통역을 통해 "야생파를 먹느냐?"고 물으니 "몽골인들도 먹지만 좋아하지는 않으며 성산에 자라는 야생파로 함부로 뜯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교민의 말에 의하면 "몽골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술을 따르는 산과 우유를 따르는 산을 구분해야 한다"고 한다. 다얀산에는 우유를 바쳐야 하는데 술을 따랐다. 일행이 바친 술을 마신 산신은 취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