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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72주년 추념식, 가해자인 '국가'가 빠져 '화해.상생' 무의미

시민 동의 없이 행정의 권유로 이뤄진 화해, 진정성 의심돼
민간인 유족과 경찰 유족은 서로에게 화해 상대 아냐
가해자 국가 빠진 화해 '무의미'...경찰과 민간인과의 '사적'죽음 아냐
여수시가 나선 '전시적 추념식'은 자칫 국가 책임을 흐리게 할 수도
내년 추모식에서도 올해와 똑같은 말을 반복할까 우려돼

  • 입력 2020.10.30 02:00
  • 수정 2021.06.30 09:07
  • 기자명 양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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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최인훈 소설 '광장' 서문 중

이순신광장에서 열린 '제72주년 여순사건 합동 추념식' 모습

광장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올해 여순사건 72주년 행사를 어떻게 치르게 되는지 궁금하여 이순신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광장에는 울타리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초청된 경찰 유족과 희생자 유족만 광장에 들어갈 수 있고 일반시민은 광장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유족도 여수시민도 아닌 나는 울타리 밖 외지인 존재로 머물러 여순사건 72주년 추념식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광장을 구분해 놓았지만, 울타리의 답답함은 숨쉬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콧구멍을 두 개 장만하기 다행이지, 하나였다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원통한 죽음을 애도하는 여순항쟁 민간위령제가 여수시 주관으로 ‘여순사건 희생자합동추념식’으로 명칭으로 이순신 광장에서 열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70주년부터입니다.

화해와 용서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장소도 달라지고, 주관도 민간에서 여수시 행정관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합동추념식이라는 명칭과 달리, 경찰유족회는 경우회를 통해 여수경찰서에서 추도식을 했고, 정작 합동추념식 광장 단상에서는 보훈단체 대표가 여순사건 성격을 ‘반란’이라고 규정하여 소란도 일어났습니다.

지난해 여수경찰서에 설치된 여순사건 피살 경찰 추모분향소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71주년 합동추념식에서는 경찰유족회 대표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민간인 희생자와 같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실토하면서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에 경찰 유족도 포함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피살된 경찰관 유복자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그 또한 통한의 세월이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죽음은 죽음의 성질여부를 떠나 위로받아야 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경찰유족들도 위로받아야 합니다. 물론 여순사건특별법에 피살된 경찰관 유족도 포함되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여수시 주관 72주년 합동추념식에서는 지역정치인과 양 유족회 대표가 공히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였고, 화해 상생을 지향하는 의미로 아동에게 동백 배지를 달아주었습니다. 원통한 죽음과 비통한 죽음으로 이원화 되어 있던 것을 하나의 장소에서 합동으로 추념하는 행사였습니다. 언론들은 역사적 화해가 이루어진 뜻 깊은 자리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추념(追念)이 되새겨 생각해 본다는 낱말이므로 생각해 보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여수시의 72주년 여순사건 합동 추념식에서 여수시장과 여순사건 유족회장과 순직경창찰유족회장이 손을 맞잡았다.

먼저 들었던 궁금증은 계엄군에 학살 당한 민간인 유족 대표와 14연대에 의해 피습. 사살된 경찰 유족 대표가 시장의 화해 권유로 손을 맞잡을 때 상호 인지부조화에 따른 압력을 어떻게 감소시키고 손을 잡을 수 있었는가,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에 반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거나 실제로는 믿지 않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는 외부적 행동과 개인적 관념 사이에 불일치되는 공간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몸에 익어 알고 있는 것, 즉 자신의 관념과 사회적 현상이 다르게 나타날 때 인지부조화에 의해 심한 거부감이 일어나게 됩니다.

원통하거나 비통한 죽음의 성격은 유족에게 정서적으로 상속되어 각인 및 고착되고, 이 정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견고한 관념의 성을 쌓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관념의 성을 허물기는 정말 어려웠을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관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투사가 이루어진 세월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잘못된 국가권력이 죽음의 성격에 대해 재단하여 장식해 놓았다면 착각과 오인까지 더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감소시키는 뭔가가 필요로 하게 됩니다.

바로 보상과 처벌입니다. 여기서 보상은 사회적 인정이고 처벌은 역사적 비판입니다. 이를 통해서 압력이 감소되면 사회는 비로소 원통한 죽음과 비통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애도를 국가에게 법적으로 담보하라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이죠.

특별법제정은 미군정기 한반도 민족모순을 극복하려고 저항했던 지역을 전남동북부와 경남 일대까지 확장하여 지평을 넓힐 것이며,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수시는 광장 추념식을 통해 코뮤니타스(communitas. 행사 같은 일정한 시공간에서 일시적으로 일루어지는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이순신광장에서 추념식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시민사회의 동의와 지지입니다. 근현대 이념적 경향을 이겨내려면 소시에타스(societas. 국가주의 사회가 아닌 민간 시민사회)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추념식 단상에서 일어나는 인지부조화에 의한 압력을 사회적 인정이라는 보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시민사회 지지를 통해 압력을 해소시키고 나면 광장은 비로써 시비스타(civitas. 공적인 사회)추념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지부조화 압력을 감소시켜 나가는 주체는 연대된 시민입니다. 시민사회 토론과 동의 없이 행정관청의 권유에 의한 화해에 순응한다고 해서 인지부조화 압력을 한 순간에 해소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민연대 동의는 공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광장 합동추념식에 공론의 주체인 시민은 없었습니다. 시민들은 만성리 위령비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여순항쟁 위령제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행정 전시적 추념식으로서 정치 행정적 과시는 할 수 있어도 진정한 화해와 상생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시적 코뮤니타스도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또 화해와 용서라는 대상과 주체가 맞지 않습니다. 학살된 민간인 유족과 피살된 경찰의 유족은 화해해야 할 상대방이 아닙니다. 원통한 죽음을 맞은 여수시민들 죽음은 가해자인 국가가 오로지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이고, 비통한 죽음을 맞은 경찰 유족 역시 불온한 명령자인 국가로부터 사과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가해자인 국가를 빼고 양쪽 유족이 화해한다고 해서 해결될 사적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잘못된 분단 국가권력 형성과정에서 비롯된 역사적 죽음입니다. 역사적 죽음은 국가 구성원인 시민사회로 이미 편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 역시 유족을 추념할 책무가 있습니다. 추념할 책무와 동시에 국가로부터 사죄 받을 권리도 있습니다.

여수시에서 주관한 추념식에서 봉기, 항쟁, 학살이라는 세 가지 여순사건 본질 성격이 덮어진 채 유족 간에 화해와 용서를 통한 상생을 내세운다고 해서, 학살과 순직이라는 상호 이항 대립이 소멸되었다고 인정되지 않을 뿐더러, 같은 날 동시에 치러지는 순천과 여타 지역 여순항쟁 추념식보다 발전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유족 간에 압력이 제거된 상호인정이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인정이란 사회적 갈등 속에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 자기의식을 가지게 하는 심리적 조건이고, 이것은 여수시가 전시적 추념식을 통해 부여한다고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객관적 상대주의에 의해 주어지는 상호 화해적 인정관계가 되려면 권리, 연민, 연대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것을 여수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이녁 아부지가 이승만 계엄군들한티 원통하게 죽은 거 맞는디, 마찬가지로 우리 아부지도 처자식들 맥이 살리라고 경찰하다가 맥압시 죽어서 비통한께! 같이 위로 좀 받아야 쓰것소.”

“긍께 이녁 말을 들어봉께 이녁도 짠하요.”

“아따! 그믄 우리가 서로 통한디 무담시 우리끼리 글지말고 우리를 이렇게 데문데문하게 만든 놈이 누군지 광장에 가서 시민들 흔티 물어봅시다잉.”

이런 토론과 공론은 시민연대를 형성하게 되고 그래야만 진정한 추념이 될 것입니다. 시민연대 공론 없이 행정 전시적 추념식은 여수시가 시민사회 동의 없이 역사적 죽음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엇보다 행정력에 의해 귀속시켜 버린 역사적 죽음은 본질이 훼손되고 재단되어 정치도구화가 되기도 합니다. 또 여순사건 성격 본질을 밝히지 않는 채 화해와 용서만 내세운다면, 이야말로 억지 춘향이 역할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추념식 단상 뒤에서 그들이 웃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소도 틀리고 시민사회 동의도 얻지 않는 화해와 용서를 모토로 하는 추념식은 결국 국가책임을 말소시켜 줄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단상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 웃음보가 터집니다. 그들은 국가권력을 시민학살에 사용하고 경찰을 정권 방패로 동원하여 숨지게 한 이승만과 친일파 출신 군 경찰 고위 간부들입니다.

캐터 콜피츠 <애도>

역사적 죽음을 국가나 정치에 의해 사후관리하게 되면 진실은 가려진 채 국가와 정치이익에 맞게 죽음의 성격을 재단하여 순직이니 희생이란 단어로 죽음을 미화 또는 희석시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의 밀실이 광장을 향해 열리지 못하고 광장의 공의가 개인의 밀실로 침투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광장의 울타리가 개인의 밀실로 옮겨져 진정한 화해는 요원해 지고, 결국 내년 73주년 추념식에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화해에 대해 넬슨 만델라는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정의롭지 못했던 유산을 고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첫발'

여수시에서 주관한 여순사건 72주년 합동추념식이 그 첫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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