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시 '진혼'이 여순사건 추모곡이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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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의 시 '진혼'이 여순사건 추모곡이 된 사연
  • 오문수
  • 승인 2020.10.17 0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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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계수와 작곡가 조승필의 만남
72주년 추념식에 추모곡 '진혼'처음 선보여
조계수의 20년전의 시 '진혼' 다시 읽혀져
"이제는 '진혼'을 노래하지 않아도 되었으면~"
10월 18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는 제72주년 여순사건희생자 합동추념식이 열린다. 추모식에서 부를 추모곡을 작곡한 조승필(오른쪽) 교사와 조계수 시인이 담소하고 있다.
10월 18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는 제72주년 여순사건희생자 합동추념식이 열린다. 추모식에서 부를 추모곡을 작곡한 조승필(오른쪽) 교사와 조계수 시인이 담소하고 있다.
진   혼  (鎭 魂) 
- 통곡조차 죄가 되던 세상, 떠도는 혼령이여! -

           조 계 수 (시인, 방송작가)

시월이 오면
어혈을 풀지 못한
여수 앞 바다는
굽이굽이 갈기를 세워 달려든다.

신월리에서
만성리에서
가막섬 애기섬을 돌아오는
저 외치는 자의 소리여,

그 소리곁에
천년을 두고도 늙지 않는 바람이
오동도 시누대 숲을 흔들어 깨운다.
반세기 가려진 햇빛이
비늘을 벗는다.

살아서 죽은 자나
죽어서 산 자나
이제는 입을 열어 말할 때

오! 그날 밤
하늘마저 타버린 불길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눈먼 총부리에 쓰러진 그들은
제 살 제 피붙이였다.

밤 내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찾아
피묻은 거적을 들추는
어미의 거친 손
통곡조차 죄가 되던 세상
그 핏물 스며든 땅에
씀바귀, 지칭개, 민들레
들꽃들은 다투어 피어나는데

아직도
어두운 흙 속에 바람 속에
두 손 묶여 서성이는 혼령이여,
- 자유하라,
그대들을 단죄 할 자 누구도 없나니 -

허물을 털고 일어서는 진실만이
용서와 사랑의 다리를 놓는 법,
그 다리를 건너오는 아침을 위해
눈감지 못하는 하늘이여,
다물지 못하는 바다여,
50년 바람 속에 떠도는
호곡을 그치게 하라.   (2000년 作) 

20년 전의 이 시가 노래가 된다. 
오는 10월 19일은 여순사건 72주년이 되는 날이다. 당시 전남 동부권과 지리산 인근에서는 1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해서 관련 단체에서는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한 원혼을 달래기 위해 추모제를 열 예정이다.

10월 18일(일) 오후 4시 이순신광장에서는 여순사건희생자 합동추념식이 열린다. 추모 일정 중 하나는 추모음악회이다.
이날 추모 음악 중 조계수 시인이 쓴  위 시에 조승필 작곡가가 지은 <진혼>이라는 노래가 처음 발표된다. 또한 연주에 앞서 조 시인도 '진혼' 낭송으로 혼을 달랜다.
노랫말에서는 원래 시에서 한 단어를 바꾼다. '50년'세월이 이제 72년이 됐으니 '긴세월'로 노랫말에서는 고쳤다. 

작곡가 조승필씨는 여도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로 지역교과서 출판위원이다. 동요와 시 노래를 활용해 100곡 이상을 작곡한 그에게 여순사건 추모곡은 어떻게 나오게 됐을까? 

"작년 제1회 여순항쟁창작가요제 이후 노래로 지역의 아픔을 함께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광주 5.18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주 4.3에 <잠들지 않는 남도>가 있듯이 여순 10.19도 대표할 만한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9월 추석 전 여순사건 관련 지역교과서 신설단원 자료제작을 위해 시립묘지에 있는 희생자묘를 찾았어요. 비석 앞에 놓여진 2편의 시가 있었는데 한 편의 시를 읽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 시가 바로 조계수 시인의 <진혼>입니다. 그날 바로 곡을 만들어 시인에게 연락하여 이순신광장에서 열리는 72주년 추모음악회에 이 곡을 올리기로 하였습니다."

조승필 교사가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계수 시인을 소개해줬다. 단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젖은 얼굴이다. "학창시절 시에 관한 상이란 상은 다 타봤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조용히 시를 쓰겠다"고 말한 그녀는 "마스크를 쓰기 전에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남한테 독이 되는 줄 몰랐어요"라며 그녀의 시 <진혼>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순사건 52주기 추모 시로 쓴 시 <진혼>에 곡을 붙이고 싶다는 작곡가 조승필 선생이었습니다. 20년이 넘은 시를 기억해 주는 분이 있어 반가웠어요. 그것도 노래로 만들겠다는 것, 나의 슬픈 시가 노래가 되어 상처와 아픔을 나눌 수 있다면 시 이상의 감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이렇다. 2000년 9월 어느 날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이환희(작고) 선생으로부터 여순사건 52주년 추모시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순간, 죄 없이 죽임을 당한 무고한 시민들의 영혼을 달래는 진혼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불행한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 희생자의 명예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갖게 되었다.

추석무렵 작곡자 조승필 교사가 시립묘지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조계수 시인의 '진혼'시를 발견하고 추모곡을 작곡했다. 묘비 왼쪽은 문병란 시인의 시이고 오른쪽이 조계수 시인의 시이다
추석무렵 작곡자 조승필 교사가 시립묘지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조계수 시인의 '진혼'시를 발견하고 추모곡을 작곡했다. 묘비 왼쪽은 문병란 시인의 시이고 오른쪽이 조계수 시인의 시이다

몇 개의 상징적인 언어가 풀어지면서 단숨에 쓰게 되었다. 이 시가 김금수 선생(한국노동사회 연구소 이사장)에 의해 <한겨레신문> 컬럼(2000년 9월 15일)에 소개되면서 유족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족은 아니었지만 그 아픔이 그녀의 아픔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안에 잠재되어 있는 슬픔의 근원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시를 쓴 지 이십 년이 흘렀지만 떠도는 원혼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없다. 진실 규명도 명예회복도 되지 않았다는 게 더없이 안타깝다.

"슬프다! 긴 세월이 짧아져 진혼을 노래하지 않아도 될 그런 날을 간곡히 기대한다"며 그녀는 소망을 말했다.

"72주기가 되니 52주기 때의 시 내용을 고쳐야 할 부분이 있었어요. '반세기 가려진 햇빛이니', '50년 바람 속'이라는 표현이 맞지 않았는데 악보가 나왔을 때 작곡자에 의해 그 부분이 '긴 세월'로 바뀌어 있었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진혼은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불리어져도 될 듯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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