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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전 미군폭격 참상 그린 '심장에 새긴 이야포'

[인터뷰] 박금만 화백이 그린 이야포 추모비
이야포 평화공원에 세운 높이2.5m, 무게 9.2톤 추모비 건립
8월 3일 민관주도 이야포 첫 추모비 제막식 앞둬

  • 입력 2022.07.19 10:30
  • 수정 2022.07.19 13:27
  • 기자명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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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금만 화백이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모습 ⓒ심명남
▲ 박금만 화백이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모습 ⓒ심명남

한떨기 꽃처럼 져버린 민간인 희생자들을 기억합니다.

남면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2주년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가 8월 3일 (수) 오전 10시 30분 안도 이야포평화공원에서 열린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2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정기명•심명남)는 추모제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민관이 주도하는 추모제와 함께 이야포 조례제정 이후 첫 추모비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야포 미국폭격 사건이 발생한 이야포 평화공원에는 박금만 화백의 작품 '심장에 새긴 이야포' 추모비가 세워진다. 추모비는 높이만 2.5m, 돌무게 9.2톤에 달한다. 

▲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2주년을 맞아 추모비에 새길 박금만 화백의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이 완성됐다 ⓒ 박금만 제공
▲ 남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2주년을 맞아 추모비에 새길 박금만 화백의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이 완성됐다 ⓒ 박금만 제공

추모비에는 박금만 화백이 그린 그림과 함께 당시 피난선에서 살아남은 유족의 증언을 기록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72전 8월 3일 고요한 아침 이야포에서 정박중이던 250여명이 탄 피난선이 미군폭격기의 공격을 받아 150여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다쳤다. 추모비에 기록된 이춘송씨 가족은 3명이 생존했고, 4명의 가족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심장에 새긴 이야포'에는 당시 미군폭격기의 공격당한 상황을 이야포 해변에서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두남매의 모습이 작품으로 탄생됐다. 

이곳 이야포는 조용하고 포근한 곳이라 우리는 배에서 빨래도 널고 아버지가 지으신 쌀밥도 먹었어요. 어린 제가 생각해도 이젠 우리는 안전하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배 안과 밖에서 엄청난 큰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서 비명 지르는 소리가 났어요. 밖에서 폭격하는 비행기는 미군비행기였어요.

 

우리배는 싸우는 배도 아닌 피난선이라서 태극기도 걸려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에게 불덩어리들이 박혔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를 지켜주는 미군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을 죽였어요. 머나먼 남해안에 남은 우리 삼남매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요? 우리는 이제 어떤 말도 어떤 약속도 믿지 않을 거예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이 가슴속에 미군폭격기와 이 바다를 새겨놓았어요. 그리고 우리가족이 바다에서 살아 올 때까지 절대로 절대로 잊지 않을 거예요.

 

1950년 8월 3일 미군의 불법적인 안도리 이야포폭격 희생자들은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부산에서 남해안 도서로 소개되어 피난민 배에 탑승 중인 민간인들이었다. - 박금만 화백 -

여순사건 유족인 박금만 화백은 할아버지가 총살당한 아픔을 겪었다. 박 화백은 이 작품을 옥적 예술인촌에서 일주일을 작업했다. 연필과 콘테로 그린 그림을 레이져로 실사조각한 작품이 탄생했다. 지난 주말 박금만 화백을 만났다.

박 화백은 "저도 여순사건 유족인데 같은 유족의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면서 "원래는 큰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돌사이즈에 맞춰 그림을 그리다보니 처음 생각한것보다 그림이 작아 아쉽다"라며 "앞으로 파고들만한 내용들이 많아 틈나는대로 이야포작업을 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박금만 화백이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모습
▲ 박금만 화백이 심장에 새긴 이야포 작품을 그리고 있는 모습

 

예전부터 계속 이야포에 관해 생각해 왔어요. 양영제 소설가님이 계속 자료를 줬고, 같은 지역의 일이라 여순사건 일을 마무리짓고 이야포 일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업내내 마음이 아팠고 작업을 할때마다 너무 힘들고 아팠어요.

 

전에는 안그랬는데 그동안 쌓여왔나봐요. 그림을 그리다보니 제게도 트라우마가 생긴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고 나서도 우울했고 굉장히 힘든것 같아요. 저도 치료를 받아야 할것 같아요. 앞으로 그림들을 계속 만들어 사람들에게 환기도 시키고 전시회도 가지면 좋을것 같습니다.

제목을 심장에 새긴 이야포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이야포 사건을)피해당한 아이들은 절대 잊지 못한다"면서 "그 나이가 예민한 나이고 미군들이 했던 그런것을 눈으로 보고 마음속에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을것 같아서 이같은 제목을 붙였다"라고 말했다.

작품 구상은 여러내용을 조합했는데 그림도 유족인 이춘석 어르신과 동생 이춘송씨 유족의 증언이 바탕이 되었다. 자세히 보면 배에 남동생을 엄마가 애기업는 내용과 너무 많은 사람이 타서 배가 전복된 전마선도 그려져 있는 장면도 보인다.

한편 제5회째를 맞는 이야포72주년 추모제는 2일밤 이야포 현장에서 노근리 사건을 다룬 <작은연못> 영화상영을 시작으로 다음날 추모제가 시작된다. 이날 여수시의회 전 의원이자 여수MBC에서 활동한 김유화 아나운서가 사회를 진행하는가운데 초대가수 공연과 제막식에 이어 경과보고, 증언영상, 여수시립국악단의 씻김굿 추모공연, 인사말, 추모사, 헌화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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