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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인구 3분의 1이 외지에서 온 손님... 이유는?

편리한 접근성·볼거리·먹거리에 넉넉한 인심까지... "안 올 이유 있나"

  • 입력 2023.02.13 11:35
  • 수정 2023.02.13 14:30
  • 기자명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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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수마을 모습. 마을 뒤에는 봉수대가 있어 봉수마을이라 불렀다. 90세대 중 32가구가 전입한 세대이다. 섬이지만 분지형태를 이룬 지형이라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 뒷산에 있는 '산바위'에 올랐던 마을 분이 떨어졌지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오문수
▲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수마을 모습. 마을 뒤에는 봉수대가 있어 봉수마을이라 불렀다. 90세대 중 32가구가 전입한 세대이다. 섬이지만 분지형태를 이룬 지형이라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이다. 마을 뒷산에 있는 '산바위'에 올랐던 마을 분이 떨어졌지만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오문수

"이장님, 마을 인구현황을 말씀해주세요."
"예! 90세대 중 30여 세대가 외지에서 전입해왔습니다."
"아니! 전국 대부분 지자체가 인구소멸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30세대가 전입했다고요? 기사의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확실히 말씀해주세요."
"못 믿으시겠다면 내일 다시 취재하러 오셔서 확인하세요."


지난 5일,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가 열린 전남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봉수마을을 취재한 후 글을 쓰기 위해 차운대 이장과 필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이틀 후 다시 봉수마을을 방문했다.

차운대 이장을 만나 정확한 숫자를 물으니 정확히는 32세대였다. 봉수마을은 국도 17호선에 접하고 있으며 여수 동남쪽 13㎞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이다. 마을 뒤로는 봉화산(해발 318m)이 있고 마을 앞에는 와룡천이 흐르고 있다.

봉수마을은 전국에서 섬 크기가 10위인 돌산도에 있다. 돌산도는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아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섬이다. 마을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둔전리는 분지형태로 생겨 돌산섬에서 바다가 안 보이는 게 특색이다. 왜구가 창궐한 시기에 이곳에 주둔했던 군인들은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전시에는 전투에 나갔던 곳이라 밭농사뿐만 아니라 논농사도 짓는 곳이다.

이장님을 만나기 전 마을회관에 들렀더니 나이든 할머니들이 "추운데 좀 들어오시라"고 재촉한다. 곽윤심(83세) 할머니에게 "봉수마을이 좋은 이유가 뭡니까?"하고 묻자 답변이 돌아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입니다. 전에는 지하수를 먹었지만 지금은 상수도가 설치되어 수돗물을 먹어요. 서울 자식집보다 여그가 좋지라우. 옛날에는 머리에 이고 지고 여수까지 장보러 다녔는데 지금은 다리도 놔서 편한 세상이 됐지요. 전에 세상같으면 폴세 저 세상 갔지라우. 왜 이리 오래 사냐고요? 안 죽어진깨 살지요. 요새같이 좋은 세상에 죽기는 싫어요"

동네 인심을 확인한 후 이장님 차를 타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나무에 둘러싸인 '춤추는 정원' 앞에 도착했다. '춤추는 정원'이란 팻말이 붙은 대문 위에는 '옴마니반메흠'글자가 붙어있어 예사롭지 않은 집이라는 걸 알았다. '옴마니반메흠'은 불교서적을 적은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말로 '모든 죄가 사라지며, 공덕이 쌓이는 곳'이라는 의미다.

겨울이라 말라붙은 수국과 개나리가 둘러싸인 장독대 길을 내려가니 주인장 최미숙씨가 "어서 오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한다. 한의사인 남편은 여수시내 아파트에서 출퇴근하고 주말이면 이곳에 온다. 최미숙씨가 정원을 가꾸게 된 연유를 말했다.

▲  잡초와 넓은 땅 외에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3천평 땅에 20여년 동안 꽃과 나무, 녹차를 재배하며 명상을 하는 '춤추는 정원'의 주인장 최미숙씨..ⓒ오문수
▲  잡초와 넓은 땅 외에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3천평 땅에 20여년 동안 꽃과 나무, 녹차를 재배하며 명상을 하는 '춤추는 정원'의 주인장 최미숙씨..ⓒ오문수
▲최미숙씨가 만든 정원 모습. "겨울철이라 정원이 제일 안 예쁠 때 오셨다"며 "꽃필 때 오시라"고 했다. 뒤쪽 야산에는 그녀가 심어놓은 녹차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오문수
▲최미숙씨가 만든 정원 모습. "겨울철이라 정원이 제일 안 예쁠 때 오셨다"며 "꽃필 때 오시라"고 했다. 뒤쪽 야산에는 그녀가 심어놓은 녹차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오문수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 봉수 마을로 이사온지 22년째입니다. 산자락에 차를 심어서 재배하기도 하고 지인들과 명상 모임을 하기도 해요. 처음에는 나무 몇 개만 있었는데 두 손으로 3천평 정원에 꽃과 나무를 심고 20년 동안 가꾸니 이렇게 예쁘게 컸어요. 여름철에는 작품같은 느낌이 드는데 겨울철에는 정원이 제일 안 예쁠 때에요. 꽃필 때 다시 오세요."

헤어지며 그녀가 전해준 책은 <춤추는 정원>이다. 춤춘다고 해서 '무용을 전공했나' 하고 추측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약사로 근무했었다. 대학시절 사회과학 서적들을 탐독했던 그녀는 틈틈이 '크리슈나무르티'나 '오쇼' 같은 명상가들이 쓴 책을 읽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분노도 '오쇼'의 책만 읽으면 무장해제가 되어버리는 매력에 빠져 인도로 날아가 '오쇼' 아쉬람에서 한 달간 수행하며 평생춰도 못 출 춤을 췄다.

세계 각국에서 온 수행자들과 어울려 세상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억압되어 있던 감정과 에너지를 분출했다. '아쉬람'은 인도의 전통적인 암자 시설로 주로 수행자들의 수도원 역할을 하며 '구루'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학교 시설 같은 곳이다. '오쇼' 아쉬람을 꿈꿨던 그녀의 꿈은 정원으로 탄생했고 매일 아침 차를 마시며 정원을 산책한다.

▲봉수마을에 귀촌한 사람 중에는 넓은 땅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오문수
▲봉수마을에 귀촌한 사람 중에는 넓은 땅에 멋진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오문수

목포가 고향인 김혜춘씨는 봉수마을로 들어온 지 4개월째로 귀농 귀촌 교육까지 받았다.

"문경에서 살고 싶은데 신랑 때문에 이곳으로 왔어요.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동네분들이 잘해줘서 너무 좋아요"

"아파트에서 살다 이곳에 오니 아픈데가 없다"고 한 강씨는 여수 해산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지 3년째다. 마을 한켠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전시된 '선경조각실'이 있다. 동리 사람들은 가끔 이곳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조각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25년째 염색을 하는 황방례씨는 황토와 감을 이용해 천연염색을 한다. 70살이 넘은 황방례씨는 "감물은 삼복더위에 들여야 해서 인자는 안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폐교된 초등학교가 있는 월암마을 인근에는 20여 가구가 들어와 새로 집을 짓거나 기존에 있던 집을 구매해 살고 있다. 봉화산 산자락에 비스듬히 자리잡은 집들에는 정원수나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10여 미터를 더 가니 호주에서 온 원어민 교사와 결혼한 부부가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돌산은 갓김치가 유명한 고장이다. 곳곳에 노지 재배한 갓이나 꼬들배기가 자라고 있었고 겨울을 이기기 위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기도 했다.

텃세 없는 우리 마을

▲ 차운대(62세) 이장 부부 모습. 넉넉한 품으로 외지에서 전입해 온 분들을 끌어안아주는 정신적 지주랄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고 살아 작년에 여수수산업협동조합에서 주는 효자 효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문수
▲ 차운대(62세) 이장 부부 모습. 넉넉한 품으로 외지에서 전입해 온 분들을 끌어안아주는 정신적 지주랄 수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고 살아 작년에 여수수산업협동조합에서 주는 효자 효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문수

언론보도를 보면 시골 마을로 전입하려는 귀농 귀촌 세대들이 부닥치는 문제 중 하나는 텃세다. 하지만 봉수마을로 전입한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차운대 이장에 대한 평가는 '좋은 분'이라는 평이다. 이장 부인이 남편을 두고 "'머리 아픈깨 인자 그냥 삽시다'라고 말하면 '내가 조금만 더 움직이면 여러 사람이 좋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전했다.

항상 너털웃음을 짓는 이장부부는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모시고 산다. 때문일까? 2022년 여수수산업협동조합에서 주는 효자 효부상을 탔다. 저녁을 먹고 마을회관에 가니 15명 정도의 주민이 기다리고 있었다. 봉수마을에 이사온 지 10년째인 박영평(74세)씨가 입을 열었다.

"거문도가 고향으로 부산에서 45년 살았는데 거문도나 부산이나 바닷가라 싫어서 돌산에서 바다가 안 보이는 이곳에 자리잡았습니다. 분위기도 좋고 이장님이 잘해주시니까 좋아요."

참석자 중 최고령자인 곽흥복(85세)씨는 봉수마을 출신이다. "우리 마을로 사람들이 이사오는 걸 환영한다"고 말한 그가 "원래는 마을이 싫어서 외지로 나갔는데 사람들이 자꾸 들어오는 걸 보고 내 마을이 살기가 괜찮은 갑다고 생각해 다시 들어와 산다"고 말했다.

통영에서 이사온 황순주씨는 처가가 봉수마을이다. 그가 봉수마을의 매력에 흠뻑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 봉수마을 인근에는 외지에서 전입해온 20여가구가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오문수
▲ 봉수마을 인근에는 외지에서 전입해온 20여가구가 전원주택을 지어 살고 있다. ⓒ오문수

"처갓집에 왔는데 뻐꾸기, 개구리, 소리를 듣고 밤이면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평생 살아야 할 곳으로 정했어요. 때로는 메뚜기 개구리가 집까지 찾아옵니다. 자연이 살아있는 곳은 사람도 살기 좋은 곳 아니겠습니까?"

부여 출신으로 마을에 이사온 지 8년째인 최은락씨는 "아침 운동 산책로와 일출 장면이 기가 막히다"고 말하며 "산책로에 데크시설을 갖춰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수시에서는 '여수에서 1년살기' 시책을 벌이지만 다른 지자체에서 전입자들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에 비해 부족하다고 한다. 전입 신고하면 이사비용 10만 원 지원이 전부다. 자리에 참석한 주민들은 "돌산은 고령층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저상버스나 버스정류장 의자에 전기 히터시설을 설치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돌산으로 진입할 수 있는 다리는 돌산대교와 거북선대교 두 개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돌산은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차가 막혀 몸살을 겪는다고 한다. 지자체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 아닐까.

▲ 귀농귀촌한 분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환담하고 있다 ⓒ오문수
▲ 귀농귀촌한 분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환담하고 있다 ⓒ오문수
▲봉수마을 주 소득원은 갓과 꼬들배기다. 비닐하우스에서 갓이 자라고 있는 모습 ⓒ오문수
▲봉수마을 주 소득원은 갓과 꼬들배기다. 비닐하우스에서 갓이 자라고 있는 모습 ⓒ오문수
▲마을 출신 조각가가 만든 선경조각실 모습  ⓒ오문수
▲마을 출신 조각가가 만든 선경조각실 모습  ⓒ오문수
▲감과 황토를 이용해 천연염색을 하는 황방례씨가 손수 만든 작품을 보여줬다.  ⓒ오문수
▲감과 황토를 이용해 천연염색을 하는 황방례씨가 손수 만든 작품을 보여줬다.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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