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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원으로 출근한다.

환희 저서 '춤추는 정원' 연재(1)

  • 입력 2019.07.03 22:24
  • 수정 2020.04.25 17:04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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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여수시 돌산읍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적어 나간 작가 최미숙(55, 필명 '환희')씨는 여수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 전북 익산에서 10년 정도 약사로 일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접고 고향 여수에서 15년간 가꾼 정원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작가는 “정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적었고, 또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여수 시내에서 거주하며 돌산읍 봉수마을로 출퇴근 하듯 10년 넘게 3천평의 정원을 가꾼 이야기를 연재한다. 

돌산 봉수마을 정원의 정문

 

아침마다 돌산섬 다리를 건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터’인 정원으로 출근한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 위로 출렁대는 다리를 지날 때면 마치 속세에서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듯 내 몸과 마음은 기쁨 의 모드로 바뀐다. 다리 건너 정원으로 향하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고, 그 정원에서 조촐한 기념식도 가졌다.   

처음 정원을 막 가꾸기 시작했을 무렵,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마음이 설레었는지 모른다. 

‘아, 나 혼자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힘들게 일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죄의식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구불구불 2차선 바닷길 도로를 더 달려가 정원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조그만 도랑 위에 작은 나무다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두 개의 다리를 건너 드디어 ‘피안’의 세계에 도착한 것이다.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내 몸과 마음은 싱그러워지고, 세속의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듯 자유로움이 피어난다.

집에서 차로 고작 20분 남짓 거리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에너지체로 변신한다. 도시 아파트의 평범한 주부에서 산골짜기의 소탈하고 자유로운 ‘수행자’로 순식간에 ‘트랜서핑’된다.

지난 5월 펴낸 필자의 저서 [춤추는 정원]

 

정원의 하루

정원에 도착하면 우선 헐렁한 통바지로 갈아입고 홍차 한 잔을 들고 정원을 둘러본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햇살을 받으면서 싱그러운 아침 정원을 산책하는 이 시간을 난 정말 사랑한다. 이 시간만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정원의 꽃과 나무들과 교감하는 나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정원에는 그 어떤 천재 예술가도 표현할 수 없는 ‘음악’ 과 ‘색채’의 향연이 날마다 펼쳐진다.새 지저귀는 소리, 신우대 숲을 흔드는 바람 소리, 봉수골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이따금 뒷산에서 들려오는 고라니 울음소리도 정겹다. 멀리 동네에서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 같은 기계음도 정원에서는 자연의 소리와 멋지게 어우러진다.

색채의 향연은 또 얼마나 눈부신지. 꽃과 나무들의 다채로운 모양과 색깔은 단 한 순간도 똑같지 않다. 계절마다 다르고, 날씨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빛깔과 에너지를 내뿜는다.

정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고요하고 조용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다양한 생명이 뿜어내는 강한 생명력으로 매순간 충만하게 살아 움직이는 곳이다.

정원에서 보내는 하루는 거짓말처럼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호미 들고 몇 번 왔다갔다 하다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 뒤 조금 긴 티타임을 가지면 어느새 해는 앞산을 넘어간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면 하루가 온통 날아가 버린다. 하루가 쏜살처럼 지나가고 한 달도 금세 지나간다. 그래서 나는 정원을 가꾸었던 시간을 종종 ‘잃어버린 15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분명 하루 하루 충만하게 보낸 시간이었는데도 꿈속의 한 순간이었던 듯 쏜살처럼 흘러가버렸다. 그만큼 정원에서 지내는 시간은 한시도 심심하거나 지루할 틈이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정원에서의 일상은 늘 자연과 함께하며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간다

 

또 황홀한 퇴근 길

정원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퇴근’ 길은 또 얼마나 황홀한지. 바다를 끼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바다 노을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극치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 속으로 빠져 버리고 싶은 것일까.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노을 속으로 사라져 버려도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커다란 돌산대교의 주홍빛 노을 아래 나와 남편이 사는 아파트가 서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나는 다시 평범한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과 나는 서로의 일터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저녁시간도 정원에서 보낸 시간 못지않게 충만하고 감사한 시간이다. 만약 내가 시골 정원에서 살림을 했다면 아마 매일 이런 모드의 변화는 실감할 수 없었으리라. 이렇게 매일 오가는 도시와 시골의 두 가지 일상은 시간과 공간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내게는 매일 두 인생을 살듯 다른 차원의 ‘영상’이 펼쳐지곤 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영상은 내 ‘두 번째 삶’ 위로 지나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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