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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가져다 준 내 삶의 '터닝포인트'

환희 저서 '춤추는 정원' 연재 (3)
한의사와 약사와의 '조제분쟁' 불똥이 가정으로
잠시 전환하려고 떠난 하와이 여행에서 만난 명상

  • 입력 2019.08.08 12:03
  • 수정 2020.04.25 17:19
  • 기자명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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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여수시 돌산읍에서 정원을 가꾸며 느낀 감동과 깨달음을 적어 나간 작가 최미숙(55, 필명 '환희')씨는 여수에서 태어나 자라고 서울서 대학을 다녔다. 전북 익산에서 10년 정도 약사로 일했다.

약사라는 직업을 접고 고향 여수에서 15년간 가꾼 정원 이야기를 책으로 썼다. 작가는 “정원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제 자신의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적었고, 또 세계와 관계를 맺고 사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여수 시내에서 거주하며 돌산읍 봉수마을로 출퇴근 하듯 10년 넘게 3천평의 정원을 가꾼 이야기를 연재한다. 

춤추는 정원에 핀 수선화

 

정원 수선화 속에 핀 '나의 구도 이야기'

가끔 어떤 꽃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 말은 자식들 중 어떤 녀석이 가장 소중하냐는 질문 같아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생각나는 꽃은 수선화다.

어떤 시인이던가.  그는수선화는 자기 도취에 빠진 오만한 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수선화는 내면을 고요하게 응시하는 꽃이지만 나는 그 샛노란 빛깔에 더 매혹된다. 겨우내 어두웠던 잿빛 정원에 빛을 발하듯 환하게 피어나는 꽃,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잡지에서 눈 속에 핀 수선화를 본 적이 있다. 겨울부터 싹을 내밀 채비를 하는 수선화는 2월 중순이면 무리지어 세상으로 나온다. 겨울이 가고 드디어 봄이 왔다는 신호지만, 샛노랗고 귀여운 꽃을 보기까지는 또다시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노란 물감을 점점이 찍어놓듯이 피어나는 수선화를 보면 온 정원에 봄을 알리는 기쁨의 에너지가 퍼지는 듯하다. 수선화처럼 내 삶에도 긴 잿빛 투쟁이 막을 내리고 노란 기쁨이 펼쳐지기까지 나만의 치열한 구도이야기가 있다.

 

 

인생 최대의 슬럼프

30대 중반, 나는 민주화운동을 하다 뒤늦게 다시 대학에 들어간 남편을 대신해 아이를 키우면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시에 또래 약사들과 진보단체를 꾸려 사회활동에도 참여했다.

생각해보면 그때야말로 나의 신념을 실천하려 치열하게 노력한 시기였다. 그러나 뜻밖의 장애물과 마주쳤다. 아마 1993년일 것이다, ‘한약 조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약사와 한의사 간의 치열한 싸움 때문에 남편은 유급됐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 부부는 한약분쟁에 대한 이견으로 매일같이 싸우고(?) 있었다.

나는 약사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남편 역시 한의사 입장을 고수했다. 싸움이 길어지며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생애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였다.

결국 나는 여행을 떠나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러다 서점에 진열된 계간지에서 구도의 무용가와 함께하는 하와이 여행참여자 모집 광고를 발견하고 나는 나이든 여자 넷, 그리고 남자 한 명과 미국으로 날아갔다.

생애 최고의 여행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행이었다. 하와이에서 밤마다 빗소리를 들으며 해먹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고 아침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작렬하는 태양과 마주했다. 투명하고 반짝이는 이슬이 맺힌 그곳에서 아침마다 긴 시간 산책을 했다.

프로그램 참가자는 모두 닉네임을 쓴다. 지도자는 뜬구름’, 나는 ’. 그날 그날 뜬구름이 즉흥적으로 결정한 스케줄에 따랐다. 구도의 무용가인 뜬구름은 내게 이라는 하와이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게 내가 받은 두 번째 이름이다.

여행 내내 차 안에서는 감미로운 하와이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누드비치를 가고,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즐겼으며 하와이 공연을 봤다. 길을 걷다가 음악이 흘러나오면 우린 그 자리에서 춤을 췄다. 밤에는 마음껏 노래 부르며 다시 춤췄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황홀한 파티였다.

어느날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뜬구름에게 던졌다. 누구보다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그에게 꼭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뜬구름,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뜬구름은 잠시 당황한 듯 보였다.

있다는 생각이 들어.”

뜻밖의 대답이었다. 운명과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듯한 뜬구름의 이 대답은 내게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하와이로 오기 전 나는 삶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아이를 더 낳을까, 아니면 약국을 확장할까. 그렇지 않으면 사회변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할까.

그러나 하와이 여행은 이 모든 것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향을 내게 제시했다. 바로 명상적 삶이다. 나는 명상을 통해 내 운명을 알아보고 그 운명을 받아들일지 결정하기로 했다.

여행을 마치고 나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남편을 으스러져라 껴안았다. 그전까지 나와 치열하게 대립했던 그가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이후 그는 나의 명상과 수행적 삶에 적극적인 지원자가 됐다. 그렇게 까탈스럽던 내가 명상을 통해 부드러워지고 그 혜택은 고스란히 남편에게 돌아갔으니까.

이렇게 나는 여행을 통하여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극적으로 변화시킬 터닝포인트를 만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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