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보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부모를 이해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지금도 자신들이 어릴적에 보았던 부모가 그대로인 줄 알고 부모를 항상 우산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그들이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나 파릇파릇 젊기만 할 줄만 알았던 그들도 학업과 군복무, 직장과 결혼, 육아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어느덧 나이가 들고 퇴직해 결국 우리 나이가 된다.
이때가 되어서야 나이를 실감하게 된다. 그 긴 세월 동안 이루어 놓은 것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망연자실이다. 단단하고 촘촘하게 살아왔어야 했는데…. 이제서야 무심하게 세월을 보냈다는 것에 자책하고 무심한 세월을 한탄한다.
이런 뉘우침과 한탄을 남기지 않게 살았어야 했는데…. 탓할 데는 없고 유수같은 세월이 원망스럽다. 권불십년 이팔청춘도 이 나이에는 부질없는 메아리로만 남게 된다.
젊음을 무엇에다 비기랴! 젊을 때 잘 나가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나이가 들어가면 백발은 먼저 알고 가로 질러가고 마음은 위축된다. 젊은이의 잘못은 실수이고, 늙은 사람이 하는 것은 주책이라는 것도 나이가 들어가면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선대를 대할 때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 우리가 그 나이가 되었다. 분명한 한 가지는 ‘젊은 사람은 절대 쭈글하게 늙지 않을 것이다’와 나이 든 사람은 절대 젊어질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들이 신문화를 못 받아들이면 꼰대라고 한다. 감히 충고하다간 마찰이 일어난다. 이해만 해야지 의견도 내놓지 못한다.
인생 계급장이 수십개지만 구닥다리라고 치부한다. 이 나이에 녹아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젊은이들이 겪어보지 못한 숱한 희노애락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젊음과 안 바꾼다. 이대로가 좋다.
노인들에게는 살면서 쌓아 놓은 우정과 배움이 있고 지혜도 터득했고 공유경제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자격도 있다. 젊은이들이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경험담이 넘쳐난다.
젊은이들이여! 우리도 그대들만큼 젊어 보았고 그대들만큼 고민하면서 살아보았다. 나이 들었다고 꼰대라며 뒷방늙은이 취급하면 서럽다오! 시간은 그대의 얼굴에도 주름살을 만든다오.
문득 그대 젊은이와 함께 읊어보고 싶은 ‘사무엘 울만’ 의 <청춘>이란 시가 떠올랐다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