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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특별기획] 섬과 사람을 품은 700년의 숨결, 여수 횡간도 소나무

마을 수호목 소나무, 하늘사닥다리 카페 그리고 섬 밥상

  • 입력 2025.09.23 05:55
  • 수정 2025.10.01 08:15
  • 기자명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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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산 군내리항에서 횡간도를 오가는 여객선 한려3호다. ⓒ조찬현
▲ 돌산 군내리항에서 횡간도를 오가는 여객선 한려3호다. ⓒ조찬현

전남 여수 남면 횡간도. 여수 돌산읍 군내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화태대교 아래를 물결 흐르듯 지나면 20여 분 만에 닿는 작은 섬이다.

선착장에 발을 내디디면 눈앞으로 ‘새알치’라 불리는 몽돌밭이 펼쳐지고, 썰물 때면 등대까지 이어지는 자갈길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지난 19일 그 섬에 가봤다.

횡간도의 자랑... 7백 년 된 소나무 보호수

▲ 횡간도 700년 세월을 견뎌낸 소나무 고목 아래 서니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웅장함이 느껴진다. 네 명의 어르신이 모이고 나서야 한 아름 소나무 둘레를 껴안을 수가 있었다. ⓒ조찬현
▲ 횡간도 700년 세월을 견뎌낸 소나무 고목 아래 서니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웅장함이 느껴진다. 네 명의 어르신이 모이고 나서야 한 아름 소나무 둘레를 껴안을 수가 있었다. ⓒ조찬현

횡간도의 자랑은 단연 700년 된 소나무 보호수다. 섬 언덕 위에 우뚝 선 이 나무는 높이 30m, 둘레 4.6m에 달한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 소나무를 수호목으로 여기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전문가 조사 결과 수령이 약 7백 년으로 확인되면서 ‘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마을 어르신 세 명이 나무 둘레에 모여 팔로 껴안아도 팔이 닿지 않는다. 네 명의 어르신이 모이고 나서야 한 아름 소나무 둘레를 껴안을 수가 있었다.

700년 세월을 견뎌낸 고목 아래 서니 말로 감히 형언할 수 없는 웅장함이 느껴진다. 소나무의 굵은 줄기와 껍질, 사방으로 뻗은 가지는 강인한 생명력과 위엄을 드러내며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고목의 자태가 주는 인상은 단순한 외형미를 넘어선다. 가지가 비대칭으로 뻗거나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곡선은 인위적 조형이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횡간도 마을 풍경이다. ⓒ조찬현
▲ 300년 된 느티나무가 있는 횡간도 마을 풍경이다. ⓒ조찬현
▲ 여수 횡간도 300년 수령의 후박나무숲이다. ⓒ조찬현
▲ 여수 횡간도 300년 수령의 후박나무숲이다. ⓒ조찬현

이 소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섬 곳곳에는 300년을 넘긴 후박나무와 느티나무, 200~300년 된 노거수들이 남아 있어 세월의 깊이를 보여준다. 나무와 섬, 그리고 주민들의 삶이 오랜 시간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횡간도는 예부터 바다와 함께 살아온 섬이다. 대·소횡간도와 화태도 사이 빠른 조류를 활용한 낭장망 멸치잡이는 이 섬을 널리 알린 전통 어업 방식이다. 지금도 주민들은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로 생활을 이어가며, “섬을 떠나면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횡간도는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쉼과 머뭄이 있는 대횡간도’라는 주제로 향후 5년간 50억 원이 투입돼 둘레길과 숲속공연장, 전망대, 카페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수백 년 노거수가 증언하듯, 횡간도는 단순한 여행지를 넘어 ‘시간이 머무는 섬’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700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소나무가 섬과 사람을 함께 품고 서 있다.

횡간도 어르신의 삶을 담은 ‘하늘사닥다리 카페’

▲ 하늘사닥다리카페 카페지기 어르신들이다. ⓒ조찬현
▲ 하늘사닥다리카페 카페지기 어르신들이다. ⓒ조찬현

섬 한가운데 있는 카페에 들어서면 다소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건물 벽면 가득 걸린 수십 점의 초상화. 이곳은 ‘하늘사닥다리 카페’이자 ‘인생박물관’이다.

카페 안은 곱게 그려진 마을 어르신 얼굴들이 손님을 맞는다. 모두 이 섬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섬 주민들이다. 70대, 8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들의 삶이 그대로 담겼다. “사진을 찍어 작가가 그림으로 다시 그려주셨어요. 바다에서 고기 잡던 모습, 밭에서 일하던 순간들이 이렇게 작품이 됐죠.” 카페를 지키는 주민의 설명이다.

횡간도는 사람이 정착한 지 400년이 넘은 섬이다. 1626년 첫 마을이 들어선 이후 바다가 내어주는 멸치와 전복으로 번성했다. 조선시대에는 전복 산지로 이름을 알렸고, 호황기에는 멸치 어장이 활기를 더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심화돼 평균 연령이 75세에 이른다.

▲ 카페지기 어르신이 하늘사닥다리 카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찬현
▲ 카페지기 어르신이 하늘사닥다리 카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찬현

카페 운영 방식도 특별하다. 별도의 수익 구조가 없는 대신 방문객이 모금함에 기부금을 넣고 간다. 그 작은 정성이 모여 카페를 유지한다. “사람이 아름다워야 마을이 삽니다.” 주민의 말은 카페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휴식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기록하는 ‘마을 박물관’인 셈이다.

섬의 풍광만큼이나 인상적인 ‘하늘사닥다리 카페’. 이곳은 관광 명소가 아니라, 한 세대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여수 남면 횡간도 마을 담쟁이가 있는 풍경이다. ⓒ조찬현
▲ 여수 남면 횡간도 마을 담쟁이가 있는 풍경이다. ⓒ조찬현

여수 횡간도, 바다를 담은 ‘섬 밥상’의 진수

여수 남면 횡간도를 찾으면 섬 주민들이 직접 바다에서 건져 올린 재료로 차려낸 ‘섬 밥상’을 만날 수 있다. 성게알에 돌김을 버무려낸 반찬부터 고둥, 꼴뚜기, 가사리·파래로 끓인 감칠맛나는 된장국까지, 그야말로 바다가 차려낸 밥상이다.

“이건 성게알하고 김을 버무려 놓은 거예요. 고소한 맛이 환상이에요.”

섬 주민의 설명처럼, 단순해 보이는 반찬 하나에도 여수 앞바다의 맛이 깊게 배어 있다.

밥상에는 바지락이 들어간 가사리·파래 된장국이 빠지지 않는다. “대한민국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진짜 맛있는 국물 맛”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수하면서도 진하다.

횡간도의 식탁은 ‘자급의 미학’을 보여준다. 밭에서 기른 참깨로 짠 참기름·들깨·고춧가루까지 모두 섬에서 직접 준비한 재료들이다. 손님이 많지 않기에 미리 예약받아, 그날그날 잡히는 해산물로만 밥상을 차린다.

▲ 여수 횡간도 ‘횡간바닷가식당’의 1인 15,000원 6인 한상차림이다. ⓒ조찬현
▲ 여수 횡간도 ‘횡간바닷가식당’의 1인 15,000원 6인 한상차림이다. ⓒ조찬현
▲ 성게알과 돌김을 갖은 양념에 버무려낸 성게알돌김 무침이다. ⓒ조찬현
▲ 성게알과 돌김을 갖은 양념에 버무려낸 성게알돌김 무침이다. ⓒ조찬현

그래서 매번 다른 메뉴가 나온다. 말린 군소나, 꼴뚜기, 멸치, 생선 등이 계절과 어획 상황에 따라 반찬으로 오르기도 한다.

섬 밥상을 맛본 이들은 하나같이 성게알·김 무침을 최고의 별미로 꼽았다. “다른 곳에서도 해산물은 먹어봤지만, 성게알과 돌김을 함께 먹는 맛은 이 집만의 독특한 풍미가 있다”는 평가다.

섬 주민들의 손끝에서 완성되는 횡간도의 밥상은 그 자체로 바다의 역사와 현재를 담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맛과 섬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진 ‘진짜 밥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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