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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로 이민 왔어요"

우두리 햇번의 귀촌이야기(2)

  • 입력 2019.02.07 16:40
  • 수정 2019.02.14 14:46
  • 기자명 김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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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귀농귀촌  하신 분들에게 분양받은 닭을 키우고 있다.

여수에서의 첫 출발은 '이민왔다' 였다. 그동안 여러 나라를 거쳐 살았으니 생각의 갈래가 그렇게 이어졌다.

연고 없는 낯선 곳에선 '이민 왔는 걸' 이라는 생각을 담고 살면 편하다.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여수는 사투리가 강하지 않다. 사투리가 강하지 않는 것은 지역색이 강하지 않다는 의미인것 같기도 했다. 

닭의 배설물을 모아 발효시켜 퇴비로 사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여수산단으로 인해 전국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이다보니 외지인이 적응하기는 좋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아 간 탓이리라.

사는 곳은 시내 덕충동, 농터는 돌산 우두리, 거북선 대교를 지나가며 해양공원을 감상하고, 돌산대교를 지나가며 경도바다를 감상하니 날마다 여행객으로 사는 느낌이다.

돌산 우두리 농가집애서 바라본 바다 풍경.  우두리의 이 풍경이  좋아서 구입한 집이다. 민박집 등록도 했다.

사실 처음 우두리 농가집은 형편없는 폐가였다. 우범지역 같아 보이고 누군가 와서 '쉬'를 하고 가는 것이 부지기수!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산다는 그 로망은 남프랑스를 생각하며 우두리집을 구상했지만 꿈을 현실로 이루기에는 ~~ 그래서 비가 새지 않고,  전기 들어오고, 따뜻한 물 나오는 정도의 농가집을 오고 가며, 손바닥만한 땅을 일구기 위해 매진하며, 길잡이가 되어 줄 농업기술센터를 찾았고, 그곳을 통해 흙과 함께 사는 화양면, 돌산등 곳곳의 밭동무들을 사귀며 콩밥의 콩이 아닌, 콩을 종자로 보는 시각을 키우기 시작했다.

귀촌 6년,  돌 고르기부터 시작된 밭은 이랑고랑 모양새를 갖추고, 닭똥 모은 거름통이 숙성될 때 쯤 우리 부부도 이제는 땀을 훔치며 집 앞의 바다를 보는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밭에 갔다 오는 나를 만난 이웃 주민이 "미애 씨, 처음에는 안 그러더니 왜 그렇게 추접스럽게 하고 다녀?" 라는 말을 건넨다. 

그냥 편한처지라고 여기면서 '농사일 차림'에 대한 지나가는 말이었을 것이다.

땅 고른 후 무화과 묘목을 정리중인 필자.  농사일은 농업기술센터에서 배웠다.

그 한마디에 실은 맘이 상했다. 어쩔 때 그냥 던지는 상투어들도 상황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비수가 되지 않던가?

흙이 묻은 거친 옷을 벗고, 신던 장화를 벗어던지고는 거울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새옷도 걸쳐봤다.  농부의 차림도 좋지만,  "내가 농사만 지으려고 여수에 온 건 아니지?" 하며 가끔은 일하는 복장을 벗어야 한다고 맘을 먹었다.  

"그래, 문화를 향유하는 '마음가짐'의 옷차림도 챙겨입자!"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며 예울마루 홈피를 열어보고는 흙과 함께 하면서도 문화를 즐기는 삶을 노크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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