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라는 말은 요즘 한국인들이 꼭 바라는 바가 아닐까? 스페인어 'Buenos'는 '좋은'이라는 뜻이고 'Aires'는 '공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도시 이름이다.
이 도시 건설에 착수한 페드로 데 멘도사(Pedro de Mendoza)와 라플라타강 지역에 상륙한 산초 델 캄포(Sancho del Campo)는 대초원의 신선한 공기를 보고 "이 땅은 어찌 이리 공기가 좋을꼬!"라고 감탄했는데 그 한 마디 말에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도시 개척 당시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나보다. 중학교 때 아르헨티나로 이민 왔다는 한국인 가이드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권에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1/3이 살고 있는 거대한 도시"라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비록 심하지는 않았지만 낡은 자동차들이 뿜어 대는 매연과 넘치는 사람으로 약간 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기 있는 모습과 곳곳에서 추는 탱고춤을 보며 정열과 열정의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은이 많이 생산된다고 해서 불려진 이름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라는 국명에 얽힌 내용을 알면 이 땅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다. 1516년 탐험가 후안 '디아스 데 쏠리스'가 이 땅을 발견한 후 스페인인들은 한복판을 흐르는 '라플라타강'을 '은의 강'(Rio de la plata)이라고 불렀다.
그 후 300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이 나라가 프랑스의 도움으로 독립하자 '은'이라는 스페인어 'plata'에서 프랑스어 'argent'로 바뀌면서 국명이 '아르헨티나(Argentina)'로 변경됐다.
가이드가 일행을 맨 먼저 안내한 곳은 '프로라리스 헤네리까(Floralis Generica). 설치미술가인 에두아르도 까탈리노가 만든 대형 금속 꽃 조형물로 18톤가량의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등이 사용됐다. 낮에는 피고 밤에는 접히도록 만들었으나 비용 문제 등으로 현재는 거의 멈춰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 하면 생각 나는 사람이 하나 있다. 짙은 눈썹에 먼 곳을 바라보는 눈, 덥수룩한 머리에 시가 하나를 물고 있는 젊은 남자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붉은 배경에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혁명의 아이콘이 되었던 인물이다. 꽃 조형물 건너편에는 체 게바라가 다니던 대학교가 있었다. 태어난 곳이 아르헨티나여서 혹시나 하고 유심히 살펴봤지만 그에 관한 조형물은 의외로 적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가 있는 플라자 데 레푸블리카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는 시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상징물인 '오벨리스코'(Obelisco)가 있다. 1946년 도시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탑은 높이 67m에 바닥 부분의 넓이는 49㎡다. 아르헨티나 건축가 알베르토 프레비쉬가 디자인한 것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정치 사회적 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오벨리스코' 인근에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히는 콜론극장이 있다. 이곳에선 세계 정상급 오페라 및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다. 잠깐 구경이라도 하려고 정문 앞에 갔다가 되돌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기 때문이다.
원색 양철지붕과 벽돌로 유명한 작은 골목길 까미니또
라보까 지역에 가면 작고 알록달록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까미니또가 있다. 까미니또는 원색의 양철 지붕과 벽돌로 유명한 작은 골목길이다. 라보까 지구에 살던 가난한 이민자들이 가까운 항구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얻어와 집에 색을 칠하면서 알록달록한 거리가 만들어졌다.
까미니또가 유명해진 것은 이 지역 출신의 유명화가 베니또 낀게라 라르띤 덕분이다. 그는 라보까 지구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많이 남겼으며 각종 자료와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도 인근에 세웠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표적 축구팀인 보카주니어스 경기장 인근 상점에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 명의 인형이 있었다. 축구선수 마라도나, 에바 페론, 탱고 명인 까를로스 가르델이다.
문화가 경쟁력이다
시간이 있어 일행과 푸에르토 마데로 지역으로 갔다. 이 지역은 19세기 수심이 낮아 기능을 하지 못하고 버려져 있던 운하를 개조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흥 지구로 재개발한 곳으로 높은 빌딩과 고급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멋지게 생긴 '여자의 다리'와 길가에서 탱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가는데 드럼과 몇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운하 옆에서 노래 부르는 학생들을 향해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묻자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학생 하나가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세레나(Serena)와 대화내용이다.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아니요. 한국말은 오직 '안녕하세요?' 밖에 몰라요"
"아르헨티나와 한국은 지구 정반대에 위치하는데 어떻게 한국을 알았어요?"
"BTS멤버와 싸이 때문에 알게 됐어요.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요."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남미 성인들에게서 "일본인입니까? 아니면 중국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학생들에게서는 "안녀세요?"라는 질문과 함께 "한국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하는 대부분 학생들이 "안녕하세요?"라는 정확한 발음을 못하고 "안녀세요?"라는 발음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문화가 중요하다>라는 책속에서 문화가 경쟁력임을 강조했다. 그의 저서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듯 세계화가 문화를 소멸시키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문화적 차이는 일부 국민들을 경제적 불이익 속에 가두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특화된 장점을 만들어내 세계경제 속에서 국가 번영을 이루게 할 것이다. 다른 곳에서 손쉽게 자원을 조달할 수 있는 세계경제, 그 속에서 차별성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해주는 문화적 차이는 점점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강렬한 음악과 관능적인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탱고
낮 일정을 마친 일행은 밤이 되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제일 가는 탱고 공연장으로 갔다. 객석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주최 측에서는 공연을 시작하기 전에 맛있는 '아사도'와 곁들여 와인을 제공해줬다. 식도락을 즐기지 않는 내 입에도 살살 녹는 소고기 맛에 놀랐다. 하긴 뭐 소고기 1㎏에 5천원 밖에 안 되는 나라니 오죽하겠는가마는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정말 싸고 맛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각종 악기와 반도네온을 든 악사들이 등장하고 무용수들이 현란한 춤 솜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발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보이지가 않을 정도다. 중간 중간에 해설해주는 내용을 보면 스토리도 있었다.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관객들. 그러나 세상사 모든 게 명암이 있듯이 화려한 탱고 속에는 이민자들의 한과 슬픔,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댄스 음악 탱고는 19세기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라보까 지역의 선술집과 사창가에서 추던 춤에서 시작됐다. 탱고는 20세기 들어 여인으로서의 한 장르를 개척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기여한 사람이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다.
악사들 중에는 반도네온 연주자가 필수다. 구슬픈 소리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악기인 반도네온은 1830년 독일의 아코디언을 응용해 만들어진 악기다. 유럽에서 남미로 건너온 이민자들은 값비싼 아코디언 대신 반도네온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이후 이들의 음악에서 반도네온은 빠질 수 없는 악기가 됐다. 아스트로 피아졸라는 뛰어난 탱고 작곡가인 동시에 반도네온 연주가이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교민 가이드에게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정말 이렇게 춤추고 놀아요?" 하고 물었더니 "예! 이 사람들 놀 때는 정말 열정적으로 놀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침대에 누웠어도 신나는 음악과 열정적으로 춤추는 무희들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