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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여순 10월의 기억들' 작품으로 재탄생하다

여수민예총 주관 예술제, 종화동 해양공원서 야외전시로
문학.미술.사진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으로 '여순'을 알려
정채열 지부장 "16년 전 첫 전시에선 항쟁이란 단어는 꿈도 못 꿔.. 더욱 발전하는 사회 되길"

  • 입력 2020.10.17 21:13
  • 수정 2020.10.18 19:25
  • 기자명 전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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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2020평화인권예술제’ 가 열린 종포해양공원

17일 종포해양공원에서 여수민예총이 주관하는 ‘제12회 2020평화인권예술제’가 열렸다.

‘잊혀진 여순 10월의 기억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야외특별기획전에는 여수사진작가회, 여수작가회, 여수민미협 등 여수민예총 소속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됐다.

여수민예총은 지난해까지 공연 위주의 행사를 진행했으나 올해는 코로나로 실내모임이 어려워 야외전시로 기획했다.

여순사건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잔존으로 인해 72년의 세월 동안 국민들에게 올바로 인식되지 못했다. 이에 여수민예총 소속 작가들은 당시 정치적 권력 앞에 무참히 스러져 간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시민들에게 되새기고 진실을 전달하고자 이번 전시를 열었다.

전시된 작품은 시화 13점과 회화 15점, 사진 6점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들의 신작 뿐 아니라 과거 발표된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시민들을 맞이했다.

선영作, 나만 시작한다면

여수작가회의에서는 개개의 시화 작품이 아닌 13개의 시를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하는 참신함을 보여줬다.

13명 시인들의 작품은 캘리그라피 작가 선영 씨의 손끝에서 재탄생했다.

선영 작가는 메일로 전달받은 작가들의 시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고 그에 어울리는 서체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13점의 시는 공통적으로 여순항쟁을 다루고 있지만 선영 작가는 이들 모두 다른 분위기를 내도록 서체 선정에 공을 들였다. 그는 13편의 시 작품을 하나하나의 캘리그라피 작품으로 완성한 후 이를 다시 취합해 자신의 작품으로 완성했다.

선영 작가가 처음부터 이러한 작품을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태극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나 애국가의 한 구절을 캘리그라피로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작가들의 시를 캘리그라피로 쓰다보니 이를 활용한 작품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각 시의 제목을 활용한 나만의 캘리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가운데 흰 선으로 쓰인 X자는 모두가 입을 막고 침묵하고 있는 현실을 의미한다. 또한 태극기 문양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와 색 배치로 여순항쟁이 국가폭력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하병연 시인 ‘내 마지막 소원’

캘리그라피는 그저 시를 통째로 옮겨 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시와 어울리는 글씨체를 생각하고 그와 어울리는 배경, 글의 배치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병연 시인의 시 ‘내 마지막 소원’을 쓸 때는 할머니가 자식과 손주들에게 말을 건네는 내용에 맞게 왼손을 이용해 삐뚤빼뚤하게 글씨를 써서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선영 작가는 “여수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순사건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김재영, 엄마섬 애기섬

김재영 작가의 작품 '엄마섬 애기섬'은 여순사건 당시 바닷속에 수장된 피해자들을 기리며 완성한 작품이다. 작품 속 동백꽃과 덧신이 피해자를 상징한다.

김 작가는 방송을 통해 여순항쟁을 알게 됐고 이후 다양한 자료를 찾아본 후 작품을 완성했다.

박금만 작가는 과거 완성작과 최근 작품을 함께 전시했다. 전시된 최근작 ‘아 여순이여4’는 당시의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려는 박금만 작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박금만 작가, '아 여순이여4'

“당시의 참상이 담긴 사진을 참고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작품에 나타나는 갑옷을 입은 사람은 현재의 나 자신이다.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린 여수 시민들을 구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죄 없는 이웃이 죽어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말리지 못했다. 만약 지금 같은 세상이었다면 그들은 당당히 항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죄가 없다, 일어나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지영 작가의 캘리그라피 작품. '대화'라는 글자에 칼로 사선을 그었다

서예작인가 싶지만 이는 캘리그라피 작품이다. 붓으로 쓰는 캘리그라피는 정해진 서체가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이 서예와 다르다. 이지영 작가는 역사학자 E.H. 카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와 널리 알려진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두 문장을 캘리그라피로 완성했다.

 "여순항쟁의 해원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서로의 말만 하면서 대화가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가운데 작품에 사선을 그어 완성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라 원만한 합의를 이루기 위함이다. 그래야만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평화가 올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과거처럼 피흘리는 정치 투쟁을 하지 않는다. 누구든 각자의 영역에서 사회의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자유로운 사회가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에 나는 작가로서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이를 꾸준히 작품으로 만들어 낼 생각이다"

여수민미협 정채열 지부장의 작품도 전시됐다.

정채열 작가는 십여년 전부터 여순항쟁 관련 작품을 꾸준히 그려왔다.

이날 전시된 작품 중에는 여순 57주기에 전시된 작품도 있었다. 그는 여순항쟁 당시를 찍은 사진과 작가적 상상력을 합해 작품을 완성했다. 사진을 프린팅하고 그 위에 아크릴을 활용해 그림을 덧입히는 방식이다.

정채열 작 '원한 서린 공포의 그날'

그의 작품 '손가락총의 공포'는 12년 전 여순항쟁 52주기에 전시된 작품이다.

일부러 손가락을 붉은 색으로 칠해 강렬함과 여순사건의 잔인함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눈동자 속에 실사 사진을 덧입혔다.

정채열, 손가락총의 공포

정채열 지부장은 “이번 전시는 여수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놓은 결과물”이라며 “야외에서 전시하니 실내 전시와 달리 다양한 관람객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실내 전시로 한정된 사람들만 참여했는데 여순항쟁에 관심 없던 시민들도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십여년 만에 야외전시를 하다 보니 달라진 분위기도 몸소 체험했다고 한다. 여수민예총은 16년 전부터 여순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했다. 초기에는 야외전시를 주로 했지만 이후에는 실내 전시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16년 전인 2005년, 항쟁이라고 말할 생각도 못했다. 김대중 정부였음에도 그런 말은 어려웠다. 항쟁이라고 불리게 되기까지는 주철희 박사의 공이 컸다. 그러나 여수는 아직도 내부적인 문제가 많아 갈 길이 멀다”라며 아쉬움도 드러냈다.

한편 여순사건 72주기를 맞아 열리는 제 12회 평화인권예술제는 18일까지 여수해양공원 특별전시장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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