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특별법 제정 이후 첫 추념식이 전남도 주관으로 19일 오전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열렸다.
‘여순 10.19, 진실의 꽃이 피었습니다’를 주제로 한 올해 추념식에는 여순사건 유족과 제주4.3유족,순직경찰 유족, 진화위 정근식 위원장, 권오봉 시장과 전창곤 시의장, 송영길 더민주 대표, 국회의원, 전남도지사, 전남·제주도교육감 등 90여명이 참석했다.
오전 10시 묵념 사이렌이 울리자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고 이어 전남도립국악단의 진혼무 ‘눈물꽃’ 공연과 유족 사연 낭독, 여수시립합창단의 추모합창 공연 등이 열렸다.
2부 추념식에는 김부겸 국무총리의 영상추모사가 상영됐고 이어 추념식에 참석한 송영길 민주당대표와 김영록 전남지사가 분향했다. 초대했지만 참석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왔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영상을 통해 “긴 세월이 지난 이제야 정부과 주관하는 첫 기념식이 열렸다”며 “내년에 출범하는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를 중심으로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에 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송영길 민주당대표는 과거 반란군 부역자로 몰려 경찰에 잡혀간 아버지를 회상하며 “여순사건 국가기념일 지정의 국회 논의를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에 열리는 여순사건 추념식에 민주정부 4기 대통령을 모시고 이곳을 찾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박성태 유족협의회 상임대표는 국회 특별법 통과를 감사해하며 단상에서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특별법이 제정된만큼 하루빨리 진상규명을 통해 희생자 명예회복의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여순사건희생자 유족도 추념식에 참여했다. 여순유족 3세인 서영노(51.여수시 율촌면)씨는 좌익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후 행방불명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아래에 서영노 씨가 낭독한 편지 전문을 싣는다.
한편 추념식이 열린 이순신광장에는 여순사건 역사만화 발간을 기념하는 전시회와 박금만 작가 여순사건특별전시회도 함께 진행됐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보내는 편지>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서영노
안녕하십니까? 저는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3세대인 서영노입니다.
이번 여순 10-19 사건 제 73주기 합동 위령제는 특별법이 제정된 역사적인 해에 열리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여수, 순천 간 기찻길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조용한 어촌 마을에서 구장일을 보시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1948년 10월 20일 14연대 군인들이 탑승한 기차가 동네에 멈춰 구장, 반장을 호출하여 태우고 율촌지서 무기고를 지키게 하여 잠시 있었던 것이 좌익이 되어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을 마을 어귀에 모아 놓고, 할아버지 집에 불을 지르고, 놀란 이웃집 사람을 불러내어 불탄 집의 주인들 말하도록 겁박하니, 손가락총에 끌려 나온 할머니는 지게 작대기 두 세 개가 부러지도록 맞아 그 자리에서 실신하였습니다.
옷을 벗길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부어, 가위로 잘라내어 옷을 갈아 입히고, 밤이 되기를 기다려 멀리 떨어진 친정으로 피신하였고, 어두워지면 이웃 동네 이모 할머니 댁에서 신세를 지고, 다음 날 해가 뜨기 전에 국사봉 양지 바른 곳으로 도피를 하며, 모진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보도연맹에 가입 후, 집에서 야경 근무 가는 길을 순경이 몰래 연행하여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이후 할머니는 어린 5남매를 홀로 키우기 위해, 불탄 집 터 옆으로 친정집의 변소칸을 옮겨와 오두막집을 짓고, 행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어렵게 살았습니다.
장남인 저의 아버지는 사찰계 순사가 학교 교실에 찾아와 할아버지 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하였고, 창피했던 아버지는 그 뒤로 학교를 가지 못하니 동생인 고모마저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항상 못 배우고 못 사는 대물림에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집을 나가 행방불명 되신 할아버지를 평생 기다리며, 말문을 닫고, 눈물 공양으로, 모진 삶을 살아오신 할머니는 특별법이 통과한 2021년 올해, 백일 세의 나이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슬프고 아쉽기 그지 없습니다.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 오신 할머니는 늘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지만 그냥 흘려 들었습니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이후 할아버지께서 억울하게 학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저의 가슴은 터질것만 같습니다.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 모든 걱정, 고통, 슬픔 다 내려놓으시고, 그곳에서 두 분 만나셔서 손 잡고 여순지역 봄날 구경 오세요.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2021. 10. 19. 여순사건 여수유족회 서영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