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촌 도성마을 에그갤러리에서 세 번째 기획전시인 이나경 초대전이 열렸다.
1954년생인 이나경 작가는 5살부터 화가를 꿈꿨고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어린 시절 팔을 다쳐 한쪽 팔로 그림을 그리는 이나경 작가는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라는 공통된 주제로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졌다. 주제만 들으면 뭔가 낭만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철학적인 고뇌를 거쳐 나온 질문이다.
이나경 작가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어머니의 영향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번 초대전에는 그가 작업을 시작한 1980년대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려온 작품 중 일부를 선정하여 전시했다.
에그갤러리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먹먹해졌다는 이나경 작가는 이곳이야말로 작품의 의미가 가장 잘 전달될 수 있으며 자신의 미발표작을 전시하기에 적합한 장소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오랜 시간 헤맨 끝에 찾아낸 곳이 바로 여기 에그갤러리이다.
이날 전시회 인사말에서 이나경 작가는 중국 시인 소동파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작품철학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왜 나무가 붉은지 물었더니 소동파는 ‘내 마음 속에 맺힌 대나무의 본질을 그렸다’고 답했다. 저 역시 사람을 그리든 옥수수를 그리든 그 마음속에 맺힌 본질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는 작가노트에서 “어떤 사건, 어떤 지역을 구체적인 작품 소재로 구상하지 않는다. 삶 속에서 존재의 근원을 추구하고 찾아 헤매는 인간의 본능을 그리려 한다. 희로애락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구부러진 길모퉁이에서 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지 (중략) 이것을 그림으로 그리려고 한다” 라고 작업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나경 작가는 특별한 공정과정을 거쳐 완성된 캔버스 위에 천연염료로 그림을 그린다. 현재는 전북 남원에 작업실을 차려 작품을 작업하고 있다. 에그갤러리 박성태 관장의 전시제안을 받은 그는 “한센인정착촌 도성마을이 어떤 곳이며 그곳의 아픔을 이해하면서 (에그갤러리야말로) 제 작품의 의미가 잘 전달될 수 있는 전시공간이라고 생각했다”고 전시 이유를 밝혔다.
“그간 (제게) 너무 아픈 그림들은 차마 내보이지 못하고 그냥 두었는데 에그갤러리를 보고 제 작품과 잘 맞는 곳이라고 생각해 여기서 처음 공개하기로 했다.”
경남 마산에서 자란 이나경 작가는 바다가 익숙하다. 이번 에그갤러리에 전시작 중에서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나경 작가는 작품 전시 전 에그갤러리를 방문해 방마다 어울리는 작품의 색상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에그갤러리 소속 박정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이나경 작가는 캔버스에 한지 또는 실크를 덧대어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도토리나 상수리열매, 밤껍질을 끓여 직접 물감을 만들기 때문에 색감이 자연스럽다. 언뜻 색감이 비슷해보여도 모두 다른 색이다.
그의 작품 ‘애욕이 보살이다’는 처절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박정윤 도슨트는 “작품 속 여성은 사랑할 때 모든 것 다 내어줘 결국 눈이 멀었다. 그리고 이제 영혼과 육신이 모두 산화되어 형체가 없어지는 중이다. 즉, 현대판 인어공주로 이해하면 된다. 이나경 작가님은 평소 사랑이나 죽음 같은 주제를 처절하게 표현하시는 분이다. 작품이 조금 어두운 이유도 삶과 죽음 같은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40년전 만든 석판화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이나경 작가는 과거 천연염색과 무대의상을 만들던 경험을 살려 1981년 완성한 작품에 올해 황토를 덧칠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진행중이다.
가장 최신작은 밝은 느낌의 설치미술이다. 소금을 가득 뿌린 바닥은 바다를, 솟구치는 갈치와 몸이 떠오르는 여자는 희망을 뜻한다.
물이 가진 치유의 의미를 빌려와 작품을 구상했다고 설명한 박정윤 도슨트는 “작가님이 과거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어 작품이 좀 어두웠다면 근작은 희망적이고 밝은 색감이 사용됐다”고 덧붙였다.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 구절을 표현한 작품도 있다. “대나무 안이 빨간지 파란지 모른다. 그러나 어차피 다 똑같다”라는 구절에서 착안해 만든 작품은 어떤 물건을 하나로 규정하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는데 이처럼 제목이 없는 작품이 많은 것도 이나경 작가의 작품특징이다.
넓은 옥수수잎은 이나경 작가가 자주 사용한 작품소재다. 박정윤 도슨트는 “이나경 작가님은 넓은 옥수수잎이 바람의 형태와 방향을 표현하기 쉬워 즐겨 그리셨다. 또한 겨울이 다가오면 시골 들판에 색이 바랜 채 서 있는 옥수수대를 보고 쓸쓸한 느낌을 받아 작품에 표현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북 남원에서 작업 중인 이나경 작가는 70대임에도 현역 작가로 꾸준히 활동하며 다른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김수자 원광대 명예교수도 오프닝에 참여해 이나경 작가의 전시를 축하했다.
“이나경 선생님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사각틀에 갇힌 여타 작품과 달리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있고 장르구분도 없다. 한때 한복으로 서울 장안을 풍미하시더니 어느새 무대미술로 작업을 옮기시고 이제는 한지작업을 선보이셨다.
이나경 선생님의 작품에는 우리나라 전통 문인화정신이 배어 있으며 묘한 한지의 색채가 보는 사람을 안정시킨다. 선생님께서 직접 만드신 안료를 사용하셨다는 게 화폭에 반영되고 있다. 푸른빛은 쪽에서, 노란색은 황토에서, 지금 선생님이 입으신 갈색 치마색은 도토리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작품에 담긴 내용에는 이나경 선생님이 인생 굽이굽이에서 느낀 깨달음과 앞으로 살아갈 방향이 담겨 있다.
오늘 여기 오신 관객분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즐기시고 다함께 그 느낌을 공유하셨으면 좋겠다.“
전 여수시의원인 송재향 에그갤러리 자문위원장도 참여했다. 송재향 자문위원은 “오늘 이나경 작가전은 에그갤러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전시가 아닐까 한다”며 “화려한 축제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도 있지만 그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주민들이 스스로 찾는 전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가 끝나고 돌아가는 관객들 마음에 큰 울림이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에그갤러리 이나경전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 전시기간은 내달 24일까지다.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며 일요일 휴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