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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본영, 여수서 모두 ‘작은 이순신’이 되길

여수이순신학교 1기 개강식, 김종대 격려사

  • 입력 2019.03.16 18:49
  • 수정 2019.04.30 12:11
  • 기자명 오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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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소개글
지난 14일 여수문화원에서 이순신학교 제 1기 개강식이 있었다. 서울,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사단법인 여수여해재단에서 운영하는 이순학교 제 1기 30명이 참여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여수 이순신학교 제1기 30명 첫 개강 ]

 ‘여해(汝諧)’는 이순신의 자다. 이순신학교는 이순신의 정신과 리더십을 통해 근본을 바로 세우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 ‘작은 이순신’을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이날 격려사를 통해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역사인물 이순신 정신을 강조하며 지속적으로 이순신의 정신을 생활화해나가자고 주문했다. 아래는 이날 전국에 이순신정신의 씨앗을 뿌린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의 여수이순신학교 제1기 개강식 격려사 전문이다.

 

"우리 모두 '작은 이순신'이 됩시다" 

  김종대 / 전 헌법재판관. (사)서울·부산·여수여해재단 고문

지난 14일 여수에 온 김종대 전 헌법 재판관이 '작은 이순신'이 되자고 역설하고 있다.

저는 수년 전에 이순신을 전파할 ‘여해재단’에 관여했고, 지금은 서울.부산.여수의 여해재단 고문을 맡고있습니다. 올해 이순신학교가 서울에서 8기, 부산에서 6기, 여수에서 1기를 시작합니다. 오늘(3월 14일)은 여수이순신학교는 첫 개강식입니다. 축하합니다.

이순신은 지금으로부터 420년 전 1598년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후 우리 후손들이 어려울 때 마다 4번 호명하면서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 첫 번째는 18세기에 정조대왕이 이순신을 역사의 바다에서 끄집어 내서 조선의 역사인물로 등장시켜 백성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나라를 잘 이끌고자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이순신에 대한 존경심을 우러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전국은 물론 중국에까지 이순신의 시나 모든 기록들을 집대성해 ‘이충무공전서’라는 책을 만듭니다.

그 책은 개인기록치고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물론 거기엔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들어있고 조카가 쓴 행록도 들어있고 비문,연표... 이순신에 관한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어머어마한 자료를 모아 성공리에 ‘이충무공전서’ 작업을 마치고 정조가 돌아가시니까 다시 이순신은 땅속으로 들어가버립니다.

두 번째 이순신이 또 등장하는 것은 일제 강점기. 당시는 엄밀히 우리가 일본의 노예생활이나 다름 없었잖아요, 36년간. 그런데 소설가나 사학자들 중심으로 우리 역사인물 중에 일본 친구들을 꼼짝 못하게 할 우리의 선조가 한 사람 있으니 바로 이순신이어서 불러옵니다.

불러와서 위로받기 시작합니다. 그때 소설로도 많이 나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학자로서 이순신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 작업 역시 일제강점기가 끝나면서 또 들어가고 맙니다.이순신은 그런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순신이 돌아가시는 날 류성룡 대감은 파직을당해서 서울을 떠납니다. 이 두 영웅이 말이죠. 그 분이 돌아가시고 났을 때 이 두 영웅의 뜻을 조선의 지도자들이 이어가지를 못했죠. 그래서 이순신이 물리쳤던 그 왜적에게 나라를 잃었던 설움을 달래려고 한일합방 이후 이순신을 다시 불러냈던 것이죠. 그런데 무슨 일 있을 때만 불러왔다가 또 사그라들고...

세 번째는 박정희 대통령이 불러왔습니다. 이 사람은 새마을운동이나 조국 근대화하는 데 선구적인 영웅으로서 누군가를 등장시키고자 하면서 자기가 존경했던 이순신을 불러왔던 겁니다.

그때 이순신 유적지가 처음으로 전국적으로 정비가 다 됐습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죽고 나니까 이순신은 또 다시 사그라집니다.

네 번째 등장은 우리 민초들이, 바로 우리가 불러옵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거라고 봐야죠.

처음 제 저서가 나온 때가 2002년입니다. ‘이순신 평전(2002)’이, 그리고 ‘내게는 아직도 배가 열두척이 있습니다(2004)’가 나오고, 2004년에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드라마가 방영됩니다. 다른 저서도 많이 나오면서 지속적으로 이순신에 관한 연구가 발표되고 사회에서 주목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불씨가 당겨진겁니다.

저의 저서 ‘여해 이순신’(2008),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2012) ‘400년전 이순신 지금의 한국병을 치유하다(2015)’ 책도 나왔습니다.

아직까지도 이 불씨는 안 꺼졌습니다. 이 불씨의 중앙에 ‘여해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부산, 여수에 우리나라 세 군데서 ‘여해’재단이 설립된 겁니다.

서울여해재단 홈페이지

이 여해재단이라는 민간인들 중심으로 이순신을 현재로 불러온겁니다. 어떤 필요에 의해서 우리가 이순신을 불러왔느냐? 우리가 살면서 무얼 소중히 여기느냐의 문제 때문입니다.

우린 돈과 권력을 취하고자 합니다. 오로지 돈만 보고, 오로지 권력만을 통해서 높은 자리, 명예가 있는 자리만을 위해서 우리가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돈과 권력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추구하는 우리의 욕망은 한이 없죠. 한없는 욕망으로는, 한정된 것을 먹으려고 할 때는, 먹는 사람이 있고 먹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심화되면 양극화가 되죠. 이 양극이 충돌하면 부러집니다. 사회갈등이 지속되고 그러면 모두가 유복하지 못하고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극단적인 일화 하나가 세월호 사건입니다. 세월호 사건은 선주가 저만 알고 선장과 선원도 자기 목숨만 소중하다고 본 때문입니다.

세월호 선주는 왜 과적, 탈법을 했고, 선장은 왜 배를 버리고 도망가고 구호를 책임진 공직자들은 또 왜 그리 구호를 지체했을까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물질 위주의 삶을 살아감으로써 시작된 끝 모를 사적 탐욕이 공동체의 가치를 짓누름으로써 총체적 난국에 빠트리고 양극화시켜 각종 비리와 부정, 계층 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마침내 국가사회를 기본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게 한 것입니다. 이 병을 지금 고치지 않고서는 우리는 영원히 병든 세상에서 고통 속에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선장과 선원은 자기 목숨만 안겁니다. 300명 학생은 안중에도 없었죠. ‘나만 살아야겠다’, ‘선주는 규정도 안지키고 돈만 벌어야겠다’ 돈만 생각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한 결과가 세월호사건입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은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자! 세월호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이 세 주체(선주,선장,선원) 중에서 하나라도 정신을 차렸더라면 300여명의 어린 생명이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300여명의 어린 생명은 경기도 안산의 그 학교에만 해당되는 건 아닙니다. 서울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여수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광주, 부산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겁니다. 우리의 자식과 우리의 손자 손녀들이 똑같은 그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병든 세상을 고쳐나갈 약이 없느냐?’

우리 스스로 또 사회 지도자들이 그런 데 대해서 인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인물 중에서 누구를 무엇을 내세워 치료할까 고민했습니다. 저는 세월호 이후로 그래서 다시 이순신을 등장시킨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순신은 이 세상이 건강해질 때까지 지속되야 됩니다. 또 지속될 것입니다.

지속시키는 주체는 바로 ‘여해재단’이고, 이순신학교이고,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이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도, 또 내 자식과 손자손녀들이 건강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서도, 어떤 책무를 가져야 합니다.

건강한 사회 속에만이 다시는 세월호사건이 반복이 안됩니다.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되찾기 위한 ‘약재’가 저는 이순신의 정신이라고 봅니다. 우리 역사에서 이 양반만한 완벽한 정신과 본받을 가치를 가진 완벽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부에서 하는 인성교육 관련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지 2년 됐는데요 거기서도 강조합니다. ‘인성교육, 도덕을 가르치지 마라, 이순신의 삶과 정신을 그대로 가르쳐라, 훨씬 재미있고 효과적인 인성교육이 될 수 있다’ 그럽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수에서 특히 장소적으로 나라를 구하는 기폭제가 된 장소인 전라좌수영 본영에서 여러분이 이제 늦게나마 여수여해재단을 발족하고 이순신학교가 개강해 새로운 싹이 텄다는 것은 저로서는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여해재단은 8기고, 부산은 6기가 4월에 시작됩니다만 여수는 좀 늦어도 알차게 나가야죠.

여수에 와서 보니까 이미 ‘작은 이순신’을 많이 양성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3년간 이순신 아카데미 출신 여러분들이 3기까지 수료한 분들이 강사로 나서서 초등 5,6학년 800명을 가르쳤다고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초등. 중등학생 계속 여러분들이 맡아서 교육시킨다고 들었습니다. 바람직한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작은 이순신’이 되셔야 합니다. ‘작은 이순신’이란 그냥 생활하면서 이순신 정신을 따르는 겁니다. 우리가 이순신처럼 저 높은 똑같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무척 어렵습니다. 그를 본받고 따르는 ‘작은 이순신’이 되면 되는것입니다.

한가지 당부드리겠습니다. 이순신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공격하는 용도로 절대 쓰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걸 방어해 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웃음)

여러분! 저는 이순신을 공부하면서 제 머리 한 켠에 ‘이순신방’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려울 때면 그 방에서 이순신을 꺼내서 물어보곤 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세요. 일하기 힘들 때 굉장히 신선한 메시지를 줄 겁니다. 저는 꿈에도 이분이 나타나서 코치를 해줍니다.

그리고, 이순신 공부한다면서 지나치게 자료 찾는데만 시간 보내지는 마세요. 제가 이 책 (김종대 저서 ‘이순신,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 하나 쓴다고 얼마나 많은 자료를 버린 줄 아십니까. 그런데 이순신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가 버린 자료들을 또 다시 쓰레기통에서 가져옵니다. 그건 시간낭비를 하는 겁니다. 내가 그 노력을 했으니까 여러분들은 이미 노력한 사람들 덕 보며 편하게 공부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순신학교를 통해서 이순신 내면에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이 여러분의 몸 속에서 살아있는, 그런 ‘작은 이순신’이 되십시오. 더구나 여기는 여수 본영 아닙니까?

그 여수의 이순신학교이고 그러니 여러분들이 여수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인물들이 되고, 또 후배들이 양성되고 함으로써, 여수가 서울이나 부산에 이어 출범했으니 여수는 본영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는 겁니다. 다른 어느 도시에도 없잖습니까.

제대로 된 인식을 갖고 이순신을 만나보시길 바라고, 여러분이 이순신을 탐구하면 아마도 이순신은 여러분을 측면에서 지원할 겁니다. 저는 이순신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시원찮은 일을 하다가 이순신한테 핀잔도 많이 듣습니다.

남한테 말해주기 위한 이순신공부를 하지 마십시오. 그런 공부는 저절로 되는 것이고 크게 소용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은 스스로 깊숙이 이순신을 받아들이십시오. 여수 본영에 있는 지도자들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이순신을 전파하는 책임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꼭 그렇게 해서 여수 이순신학교 1기생 여러분은 더더욱 모범되고 여러분을 기점으로 여수가 이순신을 통해서 세계적인 도시가 되고 이순신의 도시 전라좌수영 본영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모범도시 여수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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