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몽골이 3일장을 치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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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몽골이 3일장을 치르는 이유
  • 오문수
  • 승인 2019.12.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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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기] 한국과 몽골의 장례풍습
몽골 다달솜에 있는 칭기스칸 오벨리스크 모습. 어린시절 오논강과 발지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산딸기와 쥐로 연명하는 수렵인으로 생활했던 칭기스칸은 성장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제국을 세웠지만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 오문수

세기적 인물 칭기스칸의 무덤이 있을까? 없다. 없는 게 아니라 발견되지 않았다. 몽골인과 수많은 학자들이 칭기스칸이 묻힌 곳을 찾아 나섰지만 찾지 못하고 묻힌 지역을 추정만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 고고학자 '이아킨프'에 따르면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은 샤먼교의 의식에 따라 고향에 묻혔다고 한다. 오르도스의 다르하드족은 칭기스칸이 우라뜨호슌에 있는 문산 근처 '후안-허' 북쪽에 매장되었다고 확신한다.

현재 칭기스칸의 추도식은 오르도스 바잉-촌훅 지방인 에젠-호로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도스 지방의 몽골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칭기스칸과 그의 후손들 즉, 위대한 칸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고 있다.

몽골 제1의 성산인 볼칸산이 보이는 곳에 있는 오보. 헤를렌강 상류에 있는 볼칸산은 몽골인들에게 신성한 영역이자 영혼의 안식처이며 권력의 상징이다. 푸른 하늘을 보며 정신적 위안을 삼기 위해 볼칸산을 종종 방문했던 칭기스칸은 이 근방 어딘가에 묻혔을지도 모른다 ⓒ오문수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과 함께 몽골 동북부에 있는 성산 볼칸산으로 가는 길 주변에는 몇개의 강들이 흐르고 있었다. 때문인지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동물들이 많이 보였다. 학자들은 이곳 어딘가에 칭기스칸의 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몽골 역사서 <집사>에는 칭기스칸이 이 지역으로 사냥하러 왔다가 한 그루의 큰 나무를 발견한 후 심신이 유쾌해져 사람들에게 한 말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지방은 나의 묘지로 삼기에 적합하다. 이곳을 기억해 두어라! 나와 나의 자손들의 매장지를 이곳으로 하라!"

당시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칭기스칸이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이곳을 매장지로 선택했다. 13~14세기 원대 몽골족의 장례의식을 기록한 '서정'의 <원사>에는 칭기스칸의 무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역대 몽골왕조의 무덤은 봉분이 없으며 말로 단단히 다져서 평지처럼 만든다. 테무진(칭기스칸) 무덤의 경우는 화살을 꽂아 울타리를 만든 뒤 순시병이 호위한다. 테무진의 무덤은 헤를렌강 주변에 있으며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전설에 의하면 테무진이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죽은 후 헤를렌강 주변에 장사지냈다고 하는데 그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칭기스칸의 무덤은 왜 발견할 수 없을까? 답은 유목민들의 장례풍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의 전통 장례풍습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1920년 이전의 몽골초원에서는 무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13세기 몽골을 방문했던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무덤을 찾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몽골칸들의 매장 시 주로 노력했던 것은 무덤의 소재지를 외부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시신을 파묻을 때 넓은 공간의 땅을 밟아 굳히고 고르게 하도록 말떼를 몰고 무덤 위로 지나갔다. 땅을 고르게 한 후 무덤에서 어미가 보는 앞에서 새끼낙타를 희생물로 찔러 죽였다. 그 후 무덤에 헌제시기가 됐을 때 죽은 새끼의 어미인 암낙타를 희생시켰다"


헌제는 제사를 의미하며 암낙타는 광활한 초원에서도 새끼가 울부짖으며 죽은 장소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죽은 자를 기리는 '골격보존' 사상

1920년 이후 몽골에는 중국과 구소련의 영향으로 일부 도시에 봉분과 표지를 해놓은 공동묘지를 찾아볼 수 있으나 광활한 초원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으로 고대 몽골의 장례습관은 흉노이래로 16세기 라마불교가 들어오기 전까지 조장(鳥葬) 및 칭기스칸의 밀장(謐葬)(평장), 혈장(穴葬), 수장(樹葬) 등 몇가지 형태가 있다.

몽골의 풍장(風葬) 풍습은 <신당서>, <구당서>, <실위전>에 실위와 몽골지방에 9세기까지 일반적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몽골 고대장례법 중 하나인 풍장은 야만적 풍습으로 알려진 견장(犬葬)과 죽은 사체를 부수어 새에게 주는 '조장'과는 전혀 다른 풍습이다.

즉, 풍장은 사람이 죽으면 먼저 그 시신을 초막에 안치하고 뼈만 남을 때까지 3년간 늑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유목민의 노인 공경법이다. 이는 한국의 전라도 지방에서도 오랫동안 행해진 관습이었다.

필자는 10여 년 전인 2007년 기이한 장례풍습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완도 청산도를 찾아가 현장을 목격해 주민들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했었다. 기이한 장례풍습은 초분이다.

< 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초분은 흔히 시체를 땅 위에 그냥 놓아둔 후 그 위에 풀을 덮어 무덤의 모양을 만든 것으로 위쪽에는 풀을 종횡으로 펼쳐놓고 노끈이나 풀로 엮어 봉분을 만들어 노끈머리는 땅위에 정을 박아 두르고 큰 돌로 눌러 무덤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입관과 출상까지 유교식으로 하되, 바로 땅에 매장하지 않고 관을 땅이나 돌축대, 또는 평상 위에 놓고 이엉으로 덮어서 3년 동안 그대로 둔다.

그 동안 명일(命日:돌아간 날)이나 명절에는 그 앞에서 제수를 차려 제사를 지내다가 살이 썩으면 뼈만을 추려 다시 땅에 묻는다. 따라서, 초분이라는 이름도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때 뼈를 깨끗이 씻거나 찧어서 살을 모두 떼어낸 다음에 매장을 하기도 하며, 이를 세골장(洗骨葬) 또는 증골장(烝骨葬)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초분은 유골을 처리하기에 앞서 먼저 육신을 처리하는 방법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부터 <수서> 고구려전, 그리고 <삼국유사> 등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장례에 대한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이러한 장법은 일반적인 유교식 장례가 단 한 번의 매장으로 끝나는 단장제(單葬制)임에 비하여서, 두 번의 매장절차를 거치는 복장제(復葬制)라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제(祭)의식과 관련된 몽골인의 성스러운 수 '3'

"초분전통이 어디서 왔을까?" 하고 궁금해 하던 필자에게 답이 왔다. 몽골의 옛 전통장례풍습이 한국에 퍼진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3일장도 몽골에서 연유했을까? 맞는 얘기다.

다달솜에 있는 오보로 칭기스칸을 기념하는 오보다. 오보앞에서 절을 마친 몽골인들이 시계방향으로 세번 돌리며 곡식을 뿌렸다 ⓒ오문수
몽골 유명 관광지 테렐지에 있는 라마사원 주위를 몽골풍습에 따라 시계방향으로 세번도는 일행들이 라마교 경통인 마니차를 돌리고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책을 한권 읽었다는 의미라고 한다 ⓒ오문수

전통적으로 몽골인의 장례는 3일장이다. 라마교가 들어오기 전 민간인들 사이에 흔했던 '조장' 시에는 시신을 들판에 버려 독수리나 맹수가 시신을 뜯어먹는 것을 확인한 후 집에 돌아갔다가 3일, 5일, 7일, 49일 그리고 3년 후를 마지막으로 장지를 찾아 상례를 치른다.

라마교 습속을 계승한 몽골인들은 장지를 떠나야할 때 영정을 든 이가 앞서고 유가족과 문상객들이 줄지어 무덤을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돈다.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도는 것은 고수레나 오보, 그리고 라마사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불교에서 3은 불(佛-부처), 법(法-불경), 승(僧-스님)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는 라마불교적인 해석이다. 도교에서 3재는 천(天), 지(地), 인(人)을 가리킨다. 혹자는 3의 의미를 천상계, 지상계, 지하계의 3세계를 상징하는 수로 풀이한다.

고조선유적답사회원과 함께 몽골현지 답사하던 중 발견한 사슴돌을 임실문화원 최성미 원장이 탁본을 떴고 고조선유적답사회 안동립 대표가 특수기법으로 인쇄한 사진이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천상계, 지상계, 지하계의 3계로 나뉘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오문수

 

천상계- 동서남북 4방위와 4계절을 주관하는 신들의 영역
지상계- 신이 되려다 능력이 조금 부족하여 신이 되지 못한 인간세계
지하계- 인간이 되려다 도를 닦지 못하고 인간이 되지 못한 축생의 세계


몽골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의 국가인 흉노, 선비, 오환, 타부가치의 북방민족은 3을 성수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사기> 흉노전의 기록에 따르면 제국을 삼분(동부, 중부, 서부)하여 통치하고 있다.

3과 관련된 축원행위에 대해 장장식 교수는 '영원한 하늘'(텡그리)의 도움을 받아 망인이 영면하기를 빌거나 지신의 노여움을 풀어주려는 의미로 해석했다. 숫자 3을 성스러운 수로 여겼던 현상은 몽골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포함해 널리 전래 된 풍습이다.

칭기스칸의 매장지를 숨기고 조상의 뼈가 육탈이 될 때까지 3년간 기다렸던 초분 장례의식은 뼈를 중시하는 몽골인들의 사상에서 비롯된 풍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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