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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사랑 '빼깽이죽'을 아시나요?

주미경의 음식칼럼③
되물림 되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좋은 전통음식 ‘빼갱이죽’

  • 입력 2020.09.16 18:00
  • 수정 2020.10.23 14:09
  • 기자명 글: 주미경 편집: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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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7년째 남경전복을 운영해온 유기농 전문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시국을 맞아 면역력을 높여주고 조미료 없는 음식 만들기 레시피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를 이기는 기본은 면역력이 답이다. 주미경의 음식칼럼을 통해 음식 전문가로서 건강에 대한 필자의 생각과 함께 건강한 음식 만들기 연재로 레시피를 공유코져 한다.

7년째 전복요리와 유기농 음식점을 이어온 음식전문가 주미경 대표의 모습

가난의 대명사로 통하는 이 땅의 아픈 이름 '풀때죽'.

그랬었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보릿고개 시절 봄날의 주린 배를 보리 싹이나 나물을 뜯어 멀겋게 끓인 풀때죽으로 허기를 채웠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허기가 져서 오죽하면 평생소원이 쌀밥에 고깃국 한 번 실컷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을까.

이렇듯 당시 죽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즘시대 웰빙죽이 인기다. 죽이 배고픔에서 웰빙식품으로 변했으니 '들죽날죽'한 세상살이는 오늘도 ing다.

엄마표 사랑! 추억의 '빼깽이죽'

추억이 담긴 엄마표 사랑 빼깽이죽 한상

다음백과 <북새기략(北塞記略)>에는 죽의기원에 대해 "곡물이 매우 귀하여 귀보리로 죽을 쑤어 먹는다"라고 쓰여 있다. 구황식으로 죽을 먹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구황식은 흉년 따위로 기근이 들었을 때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는 것을 말한다.

‘죽’하면 남도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수많은 다도해를 품은 여수의 많은 섬에는 고구마 작황이 풍성했다. 가을이 저무는 10월이후 고구마를 캐낸 뒤 하얗게 밭을 덮은 절간풍경은 지금도 아련하다. '빼깽이는 고구마 말랭이의 전라도 사투리이다. 필자에게도 춥고 배고팠던 아픈 시절이 있었다. 그땐 어려웠던 시절이 다시는 떠올리기 싫었는데 가끔은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참 아이러니하다.

고구마를 말린 빼갱이죽은 별미였다. 빼깽이죽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아파서 전 재산을 날리고 일찍 돌아가셨다. 엄마가 안 계신 빈자리를 천사 같은 외할머니가 대신했지만 어려운 살림 탓에 외할머니의 보살핌은 한계에 부딪쳤다.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음식은 몇 가지 안 되고,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정부미’는 찰기도 없고 밥맛이 없어 밀가루는 우리 집 주식이 되었다. 밀가루로 칼국수와 콩죽 그리고 소다빵을 자주 해먹었다. 그러다 질리면 엄마가 해주시던 빼깽이죽을 가끔 별미로 먹으며 엄마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빼깽이죽은 고구마를 썰어 대나무 채반에 말렸다가 군것질거리 없는 겨울날 콩넣고 밀가루를 버물버물 해서 푹 끓여주시던 '엄마표 사랑'이었다.

겨울철 끓여서 바람 잘 도는 장독대위에 얹어놓으면 죽이 식어 말랄 말랑 굳는다. 거기에 설탕을 사르르 뿌려 먹으면 또 다른 별미다. 하지만 요즘은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다. 경상도 어느 지역은 ‘빼떼기죽’이라 해서 지역특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여수 향토 음식문화 연구소' 통해 전통음식 기록 남겨야

주미경 대표가 직접 만든 빼깽이죽 레시피

여수는 지리학적 특성상 바다와 인접한 섬에는 독특한 음식이 많다. 바다에서 나오는 식재료는 전국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널렸다. 필자는 '여수 향토 음식문화 연구소'를 만들어 사라져가는 남도음식과 향토 음식들을 찾아내고 기록해 후대에게 남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사라져가는 음식중 제일 먼저 다뤄보고 싶은게 바로 빼깽이죽이다. 빼깽이의 재료인 고구마는 1764년 조선후기 대마도에서 들여와 동래지방에 심게 되고 '감저보'라는 재배법이 담긴 책자가 발간됨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저장이 어렵고 썩어버리는 고구마를 썰어서 말리는 방법으로 '빼깽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빼깽이는 벼농사가 잘되는 육지보다 쌀이 귀한 섬지역에서 구황작물로 재배되어 훨씬 귀하게 쓰였다. 말리는 과정에서 발효를 거치기 때문에 맛도 더 좋아지고 몸에 흡수되기 좋은 상태로 변한다. 식이섬유가 많아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웰빙음식이다.

우리 속담에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의미는 거리낌 없이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가리킨다. 빼깽이죽 만들기도 알고 보면 식은죽 먹기다. 재료는 고구마를 말린 빼깽이, 강낭콩, 팥, 밀가루, 굵은소금, 설탕을 준비한다.

조리법

1. 빼깽이와 강낭콩을 압력솥에 넣고 물을 부어 뭉그러질 때까지 푹 끓인다.

빼깽이 만드는 법은 고구마를 채 썰어서 집안 식품건조기에 말려서 해 드시면 간편하다. 늙은 호박을 한쪽 넣어줘도 맛있다.

2. 준비한 밀가루에 물을 적당량 부어 버물 버물 버무려준다. 이때 밀가루를 너무 떡이 지지 않게 살짝 간격을 유지한다.

3. 잘 삶아진 빼깽이와 강낭콩에 죽을 쑬 정도 적당량의 물과 소금을 넣고 끓이다가 끓어오르면 버물 버물 해놓은 밀가루를 넣고 살살 젓는다. 이때 너무 세게 저으면 건더기가 커지고 떡이 져서 좋지 않다.

4. 다 끓이고 나면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어서 먹으면 훨씬 맛있다.

코로나19로 삶이 힘들고 지칠수록 옛 추억에 빠져보자. 오늘은 온가족이 모여 빼깽이죽을 만들며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어떨까. 좋은 추억은 되물림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되물림 되어야 할 것은 '가난'이 아니라 '좋은 전통 음식'이다. 지금보다 더 어렵고 힘든 시기도 잘 극복했듯이 우린 코로나 쯤이야 슬기롭게 극복하리라 믿는다. 빼갱이 죽은 엄마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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