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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아부지 사랑 가득한 호박죽 한그릇

[주미경의 음식칼럼⑭] 호박죽에 추억이 새록새록
일평생 직장과 밭을 오가며 유기농 농사짓는 아버지

  • 입력 2021.12.30 09:09
  • 수정 2022.03.23 16:31
  • 기자명 주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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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필자는 7년째 남경전복을 운영해온 유기농 전문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시국을 맞아 면역력을 높여주고 조미료 없는 음식 만들기 레시피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코로나를 이기는 기본은 면역력이 답이다. <주미경의 음식칼럼>을 통해 음식 전문가로서 건강에 대한 필자의 생각과 함께 건강한 음식만들기 연재로 다양한 음식 레시피를 공유코자 한다.

▲ 요즘같은 추운겨울이면 따듯한 호박죽이 생각난다
▲ 요즘같은 추운겨울이면 따듯한 호박죽이 생각난다

지독히도 가난을 온몸으로 겪은 울 아부지는 내일모레가 팔순이지만 일평생 일을 하고 사신다. 가난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직장을 나가신다.

아버지께선 틈틈이 농사를 지어 외동딸에게 갖다주려고 전화를 하신다.

밭에 나갈란다. 뭐 필요한거 없냐?

가난 대물림 하지 않으려는 울아버지의 삶

집에서 조금 먼거리를 다니면서 농사를 지어서 고생 좀 덜하라고 오토바이를 사드렸더니 밭에 갔다온 날이면 많은 유기농 야채를 오토바이에 싣고 와 나를 깜짝 놀라게 한다.

▲ 아버지가 정성껏 키워주신 호박을 썰었다
▲ 아버지가 정성껏 키워주신 호박을 썰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직접 지으신 농사 수확물을 딸에게 자랑하고 싶으신가보다. 딸이 좋아하는 모습에 오늘도 울아부지 밭으로 나가신다.

밭이 비탈진 곳이라 언덕이 밭만큼 넓다. 그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줘서 호박을 비롯 콩, 대추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등을 가득 심었다.

내가 죽고 없어도 느그들 간식거리 해주라고 이것저것 다 심어놨다.

아버지의 정성이 깃든 호박농사는 푸지다. 밭에 풋호박이 주렁주렁 열려 올 여름 내내 손님들을 대접했다. 호박나물과 호박잎을 따다 데쳐 젓갈양념에 싸서 실컷 먹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익은 호박은 1톤 트럭으로 한 트럭을 땄다. 여름에는 풀밭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던 호박들이 가을이 지나고 잡초들이 생명을 다할 즈음 언덕배기에는 온통 호박천지다.

▲ 따끈한 호박죽 한그릇에 세상이 온통 따뜻해 보인다
▲ 따끈한 호박죽 한그릇에 세상이 온통 따뜻해 보인다

이렇게 수확한 호박은 늦가을 창고 한 켠에 박스를 깔아 차곡차곡 쌓아놓고 숙성시켜 곶감 빼먹듯 한 개씩 꺼내 먹으면 겨울내내 오지다. 오늘은 아버지와 손님들께 호박죽을 끓여 대접하려고 한다.

어린시절 이웃과 형제처럼 살았던 앞집 순이 언니네와 나눠먹던 참 정겨운 추억이 떠오른다. 늙은 호박을 놋숟갈로 박박 껍질을 벗겨 돈부넣고 버물버물한 밀가루를 넣어 노랗게 끓인 호박죽을 보면 때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푸짐이 세상을 풍성하게 한다는 것도 알았다.

▲ 버물버물 버무린 밀가루 반죽
▲ 버물버물 버무린 밀가루 반죽
▲ 매실을 넣고 반죽하면 소화가 잘된다
▲ 매실을 넣고 반죽하면 소화가 잘된다
▲ 호박을 삶아 믹서기에 간 호박진국
▲ 호박을 삶아 믹서기에 간 호박진국

추운 겨울 몸도 마음도 움츠려든다. 김소운 작가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잃지 않는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수필이다.

아버지가 애써 따다주신 호박을 보면서 한없는 부모님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 호박죽 한 그릇으로 영혼의 허기를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는 연말과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 우리 아버지가 밭에서 키운 호박
▲ 우리 아버지가 밭에서 키운 호박

▣ 맛있는 호박죽 레시피

재료: 늙은 호박, 돈부(강낭콩), 밀가루 내지 찹쌀가루, 매실액기스,
소금, 설탕

1. 호박은 껍질을 깎아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준비한다.

2. 강낭콩은 충분히 불린다.

3. 밀가루나 찹쌀가루는 물조금 넣고 매실액 조금 넣어 버물버물 살짝 덩어리지게 준비한다. (매실액을 넣으면 소화가 잘된다)

4.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은 호박을 압력솥에 넣고 약 10분정도
삶는다.

5. 강낭콩과 삶아진 호박을 솥에 넣고 국자로 으깨거나 믹서기에 간다.

6. 물을 적당량 넣고 소금 넣고 펄펄 끓으면 밀가루나 쌀가루 버무린 것을 넣고 끓이면 끝. 기호에 따라 새알을 만들어 넣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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