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넷통뉴스와 여수시의회 이야포미군폭격사건특별위원회가 5일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평화공원으로 현장답사를 다녀왔다.
이들은 ‘노근리사건 희생자심사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노근리특별법)’ 제정과정을 설명듣고 실제 미군폭격이 벌어진 쌍굴다리와 평화공원을 방문했다.
여수시의회 '이야포 특위' 노근리평화공원 답사
한국전쟁이 한창인 1950년 7월26일, 영동군 주곡리 마을 주민들은 소개명령이 떨어지자 미 육군의 유도를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다.
그러나 피난을 떠난 날부터 나흘간 미 공군의 폭격과 기관총 사격이 전개되고 영동군 황간면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군인의 학살이라는 점에서 오랜 시간 은폐되었다가 1960년 한 피해자의 진정서가 제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뚜렷한 변화는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1994년 또다른 노근리사건 피해자가 실록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출간한다. 이 소설을 접한 AP 통신 기자는 1999년 사건을 최초보도하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노근리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다. 이를보도한 기자들은 언론계의 노벨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이 소설의 저자가 바로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의 아버지 정은용씨다.
정구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 겸 노근리국제평화기념관 관장은 이 당시 노근리 미군 민간인 학살대책위원회 대변인 겸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노근리사건을 세상에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노근리특별법은 지난 2004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어 3월 5일 노근리사건 특별법이 공포, 2010년에는 노근리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이 개봉하기도 했다. 1998년 노근리사건피해자대책위원회의 주관으로 시작된 위령행사는 2013년까지 총 15회 개최됐다.
이날 정구도 이사장은 노근리사건 및 특별법 제정 강의에서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군의 고마움을 알되, 잘못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오랜 기간 자료를 찾아보내며 미국의 사죄를 촉구했으나 ‘사건에 개입한 적 없다’는 답변을 받아야만 했다. 강대국과 싸움에 승산이 보이지 않자 경영학도인 그는 충북대 역사교수의 힘을 빌려 노근리사건을 다룬 논문과 책을 써낸다. 그중 한 논문이 출판되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어 전국 도서관에 배포되는 성과도 얻었다.
“여수가 이야포미군폭격사건을 알리려면 진정성을 가지고 파헤치는 학자를 만나야 한다.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책임 있는 인생관을 가진 사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가치있는 일에는 일정한 헌신과 포기가 따른다. 역사는 한 나라의 얼이며, 정신세계를 구축하는 일인만큼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외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정은용씨 부고
정구도 이사장은 노근리의 진실을 파헤치며 가장 힘들었던 일 중 하나로 한국에서 반미주의자, 친북세력이라는 공격을 받았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미국의 사과는 받았지만 오히려 자국에서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정 이사장을 반미주의자로 여기지 않았다. 뉴욕타임즈는 정 이사장의 선친인 정은용 씨의 부고 기사를 실었고 프랑스 신문 일간지에는 3면에 걸쳐 정은용 씨의 죽음을 보도하며 애도했다. 그렇게 노근리사건은 한국에서 새롭게 받아들여졌다.
“오늘 오신 분들이 이야포특별법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는 굉장히 어렵다. 특히 미군 관련 사안은 여야, 정부 할 것 없이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노근리재단이 해냈다는 선례가 있다.
또한 특별법을 만들려면 지자체의 군수가, 시장이 노력해야 한다. 미군폭격을 이야기하는 일은 반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이자 생명존엄, 반전의 문제이다.
노근리의 메시지는 ‘어떤 이유에서든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야포 문제도 똑같다. 생명 하나도 중요한데 수백명이 돌아가셨다. 여수는 피해 당사자가 아닌 타지역 사람들의 죽음을 이렇게 끔직하게 위하고 있는데 이는 굉장히 수준 높은 일이다. 힘들더라도 이왕 시작한 일, 끝을 보시길 바란다.“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문갑태 여수시의원은 여순항쟁 피해자가 5개 지역에 걸쳐 있는데 여순항쟁박물관 입지를 어떻게 선정해야 하는지 물었다.
이에 정구도 이사장은 독일의 유태인학살박물관을 예로 들어 대답했다. 정 이사장은 “독일도 몇 년에 걸쳐서 입지 논쟁을 벌였다. 학살 현장을 위주로 정할 것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지을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여순항쟁박물관은 각 시군의 의원들이 모여서 워크샵과 연구, 토의를 통해 가장 효과가 좋은 곳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여수넷통 심명남 이사장은 타지역민인 이야포미군폭격사건 피해자 배보상을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정구도 이사장은 “피해자 배보상까지는 어렵더라도 생활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는 있다. 현재 영동군도 이렇게 지불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뒤이어 엄길수 여수넷통 전 이사장은 미국이 진정한 한국의 우방인지 물었다. 이에 정구도 이사장은 “매우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미국이 개입하게 된 전후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전쟁 후 미국의 경제적인 원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된 것도 사실이고 군사독재시절 한국 정부를 견제했던 것도 미국이다. 이 질문은 역사적으로 논쟁의 소지가 있다. 어쨌든 진실은 자주국방의 힘이 없던 한국정부가 유엔과 미국을 불러들였다는 것이다.
미국의 행동도 비난받을 일이 많지만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국회는 어떠했나. 우리가 내부적으로 성숙해야 하는 것이 먼저다. 미국의 애치슨 선언이 없었다면 6.25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국익을 챙겼고 우리는 그러지 못한 점이 중요하다.”
정구도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미군의 폭격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현재 한국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나라이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노근리사건의 피해자는 어렵게 미국 현직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나 힘의 논리로 인해 노근리 외의 다른 미군피해사건은 조사되지 못했다. 우리는 지혜롭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강의가 끝나고 참여자들은 노근리 평화공원과 쌍굴다리를 답사했다. 평화공원에는 노근리평화기념관과 교육관, 위령탑, 조각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위령탑에서 참여자 대표로 박성미 위원장의 헌화와 분향을 한 뒤 답사 마지막 장소인 쌍굴다리로 이동했다.
쌍굴다리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59호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비극의 현장이다.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전용진 사무처장이 현장을 동행하며 설명했다.
“7월24일에 파견된 미군이 25일 이곳에 도착했다. 당시 미군은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생각해 이곳에 어린 소년들을 투입했다. 그러다보니 투입된 소년들이 총을 버리고 도망가기도 했다. 결국 미군은 피난민을 통제하기 위해 10명 이상 무리지어 있는 곳에 폭격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쌍굴다리에는 하얀 표시로 세모와 동그라미, 네모가 그려져 있다. 전용진 사무처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1999년부터 1년간 한국과 미국이 진상조사를 하며 총알이 박힌 자국을 표시한 것이다. 또한 쌍굴다리 부근에는 유해가 많이 발굴되었는데 이것은 후에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만들어진 계기가 되었다.
노근리에서 배운 이야포사건, 앞으로 과제
전용진 사무처장은 “노근리사건은 많은 사건에 개입한 미국이 유일하게 대통령 유감표명을 한 사건이다. AP통신은 외교비밀문서가 해제되자마자 이를 파헤쳐 피난민통제지침을 밝혀냈다. 여기에 당시 참전군인 인터뷰까지 이뤄지자 미국 정부가 결국 손을 들고 인정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사무처장은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답사에는 여수시의회와 여수넷통뉴스 관계자 외에도 뉴젠리더십학교 학생들과 김인옥 교감선생님도 함께 했다. 김인옥 교감은 “이런 역사적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답사를 함께 한 윤정은 씨는 지난 8월 여수넷통이 실시한 여수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국화 한송이 모금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윤정은 씨는 “너무 가슴 아픈 사실”이라며 “이야포특별법이 제정되어 유가족이 합당한 보상을 받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성미 여수시의원은 “정구도 이사장님의 ‘어려운 길을 시작했다’는 말씀과 함께 특위위원님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보시고 잘 될것이라는 응원의 말씀, 그리고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사례는 좋은 정보였다”고 답사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함께 하지 못한 이야포, 안도 어르신들과 유가족들에게는 따뜻한 봄에 다시 함께 다녀올 수 있도록 추진해보겠다”고 전했다.
심명남 이사장은 “두시간 동안 열정적인 강연을 펼쳐주신 정구도 이사장님의 열강에 감동했다. 우리 역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힘을 모은다면 '끝내 이루리라'며 또 한번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한국전쟁 중 발생한 수많은 미군폭격사건을 (노근리사건 하나로) 퉁치려는 미국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 노근리평화재단 정구도 이사장님의 통 큰 결단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여수시의회 이야포특위는 이날 답사에서 얻은 자료를 토대로 이야포특별법 제정 방향을 설립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