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김포공항에서 이존립작가에게 전화를 거니 깜짝 반가워 한다.종종 찾던 인사동 거리가 낯설어 지면서 마음 먹고 인사동으로 향했다.21,500원 이라는 저렴한 항공료 덕분에 서울 나들이 길이 부담스럽지 않다. 자동차로 꽉찬 여수공항은 도시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하니 잠시 찾아온 손님들에게 여수를 양보 하고 나는 서울로 간다.비가 내린다. 비가 와도 좋다. 아니 눈이 와도 좋을 듯...빛나는 햇살 아래 구름떼 처럼 사람이 모인다면 오늘 같이 비가 내릴 때가 코로나 상황에서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 즐기기엔 최적이다.김포공항에서 5호선
여수 화양면사무소 부근 큰길에 택시 한 대가 멈춰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차량 앞으로 까투리(암꿩)와 꺼병이(꿩 새끼) 다섯 마리 가량이 무단횡단 중이었습니다.진풍경이 따로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 암탉이 병아리들을 거느리고 마당에서 노니는 모습은 보았어도 까투리가 꺼병이들을 데리고 도로를 건너는 모습은 처음 보았습니다.택시 기사가 멈춰서 기다려 줬기에 망정이지 자칫 꺼병이들 참사가 날 뻔하였습니다. 까투리는 어미라 역시 걸음이 빨랐습니다. 가장 먼저 길을 건넌 뒤 새끼들이 무사히 건너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꺼병이들은 엄마
기다리고 기다리던 모란꽃이 오늘 드디어 피었습니다. 화왕(花王), '꽃 중의 왕'이라 그런지 아니면 새색시의 수줍음 때문인지 시나브로 피는군요.봄이면 산과 들에 온갖 꽃이 피어납니다. 매화, 복사꽃, 개나리, 진달래, 수선화, 모과꽃, 철쭉꽃, 목련꽃.... 그 하고많은 꽃 중에 모란은 어찌 '왕'의 자리에 등극하였을까요?그것도 삼국시대에 이미 '화왕'으로 뽑혔으니 천년도 훨씬 넘게 장기 집권입니다. 이만하면 퇴임할 때도 되었으니 화상(花相: 꽃의 재상)인 '작약'에게 옥좌를 내줘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하긴 모란꽃은 '자리
가까운 선배네 밭 300평을 빌려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감나무와 매실나무가 심겨 있는 밭입니다.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 잡풀이 우거져 있습니다. 매실은 그나마 여러 개 달렸지만 가지 전정이 필요해 보였고 감나무는 아직 크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할 거 같습니다.밭을 비워 두기 아까워 감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어놨었나 봅니다. 오늘 오후 종묘상에 가서 흰 옥수수와 검정 옥수수 모종을 각 50개씩 100개를 샀습니다. 전에도 옥수수를 몇 차례 심어봤으나 옥수수 수확이 그리 많지 않아 아쉬웠습니다.종묘상 주인에게 "어찌해야 옥수수를 잘
아침에 닭 모이를 주러 닭장에 갔다가 화들짝 놀랐습니다.닭장 한가운데가 푹 찢겨 있음을 발견한 겁니다. 마치 두꺼운 쇠몽둥이 같은 것으로 위에서 아래로 세게 내려친 것처럼 찢긴 상태입니다. 사람 주먹 하나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구멍입니다. 천만다행으로 키우던 닭 네 마리는 안전하였습니다.닭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대체 어느 녀석 짓인지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닭장에 CCTV도 없으니 밤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볼 방법도 없어 답답합니다.작년 2월 병아리 몇 마리를 기르기 시작할 때 몇 차례 쓰린 경험을 하였습니다. 한파가
고급문화 즐기기. 나는 문학을 전공한 것도, 예술을 배운 것도 아니어서 공연장이나 전시장을 찾아 다니며 문화예술과 친해지기로 했다. 우리 지역에 복합문화공간 예울마루가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축복이다. 예울마루 장도는 예술과 인생 그리고 자연이 혼연일체가 되는 곳이다. 나도 그곳에서 고급문화를 즐기고 싶었다.집에서도 감상할 수 있고, 유튜브에서 볼 수 있지만 내가 공연장으로 가는 것은 장소가 미치는 지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공연장에서는 현장감과 집중력으로 인해 감상의 차원이 달라진다. 시간과 열정을 바치니 공연장의 문화가 내 몸에
편집자 소개글 이 글을 쓴 조화현은 2004년 인천에서 창단한 유학파 출신의 전문연주단원으로 구성된 실내악단 단장이다. 그는 몇년 전 여수시민이되었다. 여수시 율촌면 가장리 ‘난화마을’에서 미술가인 남편 김영규 화백과 함께 ‘시골집 음악회’를 열고 있다.‘'모든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공연’을 모토로 폭넓은 음악회를 이어가며 전국적으로 연주를 다니기도 한다. 시골집 음악회는 지역 주민을 위해 소박하지만 알차게 자신들이 살고 있는 파란대문집 마당에서 개최한다. 이들 부부가 여수에서 펼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은 지상
장도, 진섬다리를 떠올리면 아릿한 울림과 감동이 전해진다.장도가 예술섬으로 바뀌기 전의 모습과 풍경이 머릿속에서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피어나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과 함께 썰물로 드러난 진섬다리를 확인하고 섬을 거닐던 기억이 생생하다.내 기억 속 장도는 여느 시골마을처럼 소박한 풍경으로 남아있다.진섬다리를 건너면 채전을 일구는 밭이 먼저 반겨주었고, 나란히 놓인 지붕 낮은 오래된 집 몇채. 그리고 낯선 방문객에게 꼬리를 흔들던 누런 강아지가 있었다. 또 비탈진 언덕길을 올라가면 보이는 마늘 심은 밭과, 매실나무, 소나무, 잡목이 어우
'아비투스'라는 새로운 사회심리학 단어를 알게 되었다.'아비투스'란 주어진 환경과 경험을 통해 새겨진 좋은 습관과 성인이 된 후 만나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넓혀진 개인의 지적 영역을 말한다.어린 시절 형성된 아비투스가 바탕에 깔리면 말하고 즐기고 행동하는 것이 달라지고,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결국 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갖고 있는 아비투스가 보여지는 것이다.아비투스를 생각하다 보니 너무나 조화로운 아비투스를 형성하여 자유로이 수준 높게 사는 내 벗이 떠올랐다.그는 좋은 아비투스를 갖추기 위한 여섯가지의
따뜻한 여수까지 한파가 찾아와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주말내내 꼼짝도 않고 집에만 있었다.춥다고 낮밤 가리지 않고 보일러를 틀어도 오래된 집 창문 틈으로 맘대로 드나드는 바람 때문에 움츠리고만 있게 된다.그렇게 요 며칠 움츠리고 있으니 무기력이 전신을 지배하고 만다. 무기력함을 떨치고자 오늘은 완전무장하고 용기내어 집을 나섰다.추운 길가에 며칠동안 세워둔 자동차가 시동이 잘 걸릴지 염려했지만 다행히 자동차는 제 본분을 다하느라 힘찬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렸다.곧장 지난주에 걸었던 화양면 자전거도로를 향해 달렸다. 자동차로 섬달천길
이십년간 이어온 도시락봉사가 오늘(12월 31일) 마무리됐다.여수시노인복지관이 '독거노인도시락봉사' 사업을 지난 12월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에 사업이 끝나니 더 이상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접하자 기분이 묘했다.처음부터 이렇게 오랜 시간 봉사를 이어올 각오를 한 건 아니었다.2001년 어느날, 지역을 위해 봉사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정보지에서 도시락을 전달할 차량 운전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지금까지 봉사는 특별한 장기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 여겼는데 도시락배달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그것은 감동이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아닌 보는 것.그림을 샀다. 돈과 그림을 바꿨다. 효용의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소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그림 앞에서 감동 어린 눈물을 흘린 경험으로 그 순간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흘러가는 그림도 있지만 그림이 내게로 다가 올 때가 있다. 그림이 내게 다가온 날, 그림이 내게 말을 걸었고, 내가 그림 속으로 들어 갔다.그림 앞에서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이 내 의식을 확장 시켰다. 그림을 바라보며 지난 날의 쓰라렸던 감정이, 무거웠던 상황들이 작품에 배어
바람이 분다.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 색을 띤 가을바람이 분다.가을바람은 봄바람처럼 향기를 싣고 오지는 않지만 소리를 실고 왔다.예울마루 앞 장도의 쪽빛 바다는 푸른 하늘을 담아 맑고 청아함을 더해준다.소풍 가기 좋은 날 공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대극장 앞으로 모이고 있다.마스크를 써서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눈빛이나 태도에서 설렘이 보인다. 얼마나 공연에 목말랐던 사람들인가!코로나로 예상치 못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와 청각 상실이라는 예상치 못한 고통을 안고 살았던 베토벤, 힘겨운 시기를 음악을 도구로 삼아
춤추는 정원의 연중행사 중 최고의 행사인 ‘가든 티파티’가 있다.올해 만든 싱그러운 햇홍차를 선보이고, 정원이 가장 예쁜 시기를 택한다. 통상 6월이 정원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에 적기다.6월은 우리 정원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시기다. 작고 앙증맞은 분홍색 스탠다드 로즈와 빨간 덩굴장미들이 사랑스럽게 피어나고, 돌담 아래로는 연분홍 사랑초와 달맞이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향기로운 비파 열매도 익어가고 보리수나무에도 빨간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다. 봄부터 목소리 훈련을 한 탓인지 이쯤이면 새들도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시판 음료수를 싫어하는 남편을 위해 꾸준히 식혜를 만들어왔다.그러다 문득 식혜의 원재료인 엿기름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인터넷을 검색하고, 친정어머니께도 방법을 여쭤봤다. 육체파 주부인 나는 몸을 쓰는 일이 취미이다. 친정어머니의 설명대로 겉보리를 물에 푹 담궈 하루 세 번 물을 주었다. 콩나물을 키워 본 터라 하루 세번 물 주는 일이 매우 익숙하게 여겨졌다.이틀 뒤 누런 겉보리에서 하얀 눈이 틔며 알알이 있던 것이 짧은 실타래를 뿜어내며 서로서로 엉키며 자라기 시작했다.안 해 본 일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겉보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무산되는 일이 잦아서 공연문화를 누리는 기회가 줄어든 요즘 지역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가 관심을 끌고 있다20일 여수 율촌면의 난화마을에서 열린 '조화현 시골집 음악회' 는 지난 6월 첫 음악회를 가진 이후 벌써 네 번째다.인천에서 아이신포니에타를 결성하여 전국적으로 연주를 다니는 조화현 단장은 율촌에 둥지를 튼 후 지역 주민을 위해 소박하지만 알찬 연주회를 추진하고 있다.아이신포니에타는 작은 연주팀으로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 더블베이스로 구성되어 있다.자발적으로 결성된 마을 서포터즈들의 자원봉사로 간
태풍 ‘마이삭’이 지나간 오동도 방파제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바다를 두 토막 낸 방파제 아래는 태풍에 몰려 온 쓰레기들이 온통 떠 있다.저건 바다가 만든 쓰레기일까? 아니다. 바다에서 그냥 생긴 쓰레기가 아니라 인간들의 쓰레기다. 인간에 의해서 생긴 바다쓰레기다.“바다는 쓰레기장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양식업이나 어업 종사하면서도 바다에 쓰레기를 막 생산해 내는 사람들, 제품을 스치로폼으로 포장해 그 심각성을 생각하기보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사람들... 그 틈에 나도 있다. 먼저, 최소한 바다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김훈의 글은 오랫동안 천천히 살피고 깊이 생각하고 표현된 글이다. 내겐 그의 글은 버릴 문장이 하나도 없다.담백하면서도 깊고 날카로운 표현을 해 내는 그의 글솜씨에 반한지 오래다. 유명한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밥벌이의 지겨움’, ‘연필로 쓰기’, ‘남한 산성’, ‘화장’ 등 웬만한 그의 책은 다 읽었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자전거 여행'이다.자신의 내면에 담긴 생각들을 고단함 마다않고 매번 연필로 꼭꼭 눌러 쓰는 글쓰기를 하고, 자전거 두 바퀴로 흙을 밀어내는 두 다리 고단함도 이겨내고
코로나로 집콕하며 사람을 만나는 일이 줄어들다 보니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때 나는 주방과 집안 구석구석을 살핀다.주부에게 살림이란 하려면 끝없는 것이요 안하려 하면 할 것이 없는 법.나는 지금처럼 남아 도는 시간에 ‘안 해본 일을 해 보기’로 했다.일상적으로 사 먹기만 했던 것을 내가 만들어 보는 것이다. ‘우무만들기’ 도전!제대로 된 우무 맛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수 우두리 집을 리모델링 할 때 였다. 마을 아주머니께서 '더운데 고생한다'며 마시라고 가져온 얼음 둥둥 띄워온 것이 처음 맛 본 여수제 우무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