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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폭격으로 억울하고 끔찍...이야포에 다시 필요한 공감

[이야포 특별기고] ⑫아름다운 섬에서 벌어진 비극, 이야포
하루빨리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피해규모 확인해야

  • 입력 2022.08.01 10:30
  • 수정 2022.08.01 16:44
  • 기자명 주철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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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현 국회의원
                          주철현 국회의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 8월 3일, 여수시 남면 이야포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정박 중이던 피난선 위에 들이닥친 미군 비행기의 무차별적인 폭격 때문이었다. 배 위에는 태극기도 걸려 있었고, 아군기로 보고 손을 흔들며 반가워하다가 폭격을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야포 앞바다는 무덤 없는 묘지

▲ 이야포 평화공원
▲ 이야포 평화공원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는 그 비행기를 미군 소속 전폭기로 추정하고, 미군이 폭격 당시 국제법 규정을 충분히 준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했다.

비행기가 몇 차례 반복해서 나타나 기총사격을 하자 사람들이 총탄에 맞아 죽거나 바다에 떨어져 죽으면서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배에 쌓인 시신들은 부패하여 냄새가 심하자 배와 함께 그대로 소각되면서, 이야포 앞바다는 무덤 없는 묘지가 되었다. 찾지 못한 시신들도 부지기수였고, 그 후 몇 날 며칠은 온전치 않은 몰골로 잃어버린 부모나 자식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폭격으로 인한 피해도 억울하고 끔찍했지만,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부 진실이 규명되기까지 살아남은 자들은 고통을 호소조차 못한 채 60년 가까이 침묵해야만 했다.

여순사건을 온 몸으로 겪은 여수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여순사건 당시 5연대에 의한 잔혹한 피해를 겪어야 했던 섬이 바로 안도였기에 침묵은 더 길어져야 했을지 모른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아주 오랜 세월이 필요했고, 피해자와 유가족의 용기, 여수 시민사회의 헌신이 더해져야만 했다.

그 용기와 헌신 덕분에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일부 진실이 규명되었고, 2021년 여수시의회에서 ‘이야포, 두룩여 해상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며 사건이 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그렇게 진실의 뼈대는 드러나고 다가오는 3일에는 이야포평화공원에 추모비를 세워 영혼을 달래고자 하는 노력과 다짐을 담아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진실 규명하고 피해자와 피해규모 확인해야

가장 시급한 일은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와 피해규모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미 많은 생존자와 목격자들이 고통스러운 진실을 품고 세상을 떠났고,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을 비롯해 목격한 여러 증인들도 생존해 계시는 상태이지만 다급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미군 폭격기는 왜 피난민 수송선에 폭격을 가했는지, 생존 유족들은 얼마나 살아 계신지 진실 규명이 필요하고, 이에 걸맞은 기록 발굴부터 보존과 확산, 연구지원, 교육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노력이 따라야 한다.

▲ 지난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추모사를 하는 주철현 국회의원  ⓒ박근세
▲ 지난해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에서 추모사를 하는 주철현 국회의원  ⓒ박근세

우리는 틀어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일인지 여순사건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생생하게 경험했다. 하지만 미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분명하게 바로 잡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울 수 있었다. 지역에서 서로 화합하고 한 목소리를 내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부수적인 소득이었다.

이야포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바라보기만 해도 숨막힐 듯 벅차고 아름다운 자연의 유산이다. 그 아름다운 섬에서 72년 전 벌어졌던 비극은 그래서 역설적이고, 그만큼 더욱 서글프고 비극적이다.

우리 여수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고 그 바다와 함께 꿈꾸고 희망을 설계하고 있다. 우리가 여수 바다를 품고 미래로 나아가는 꿈을 꾼다면, 그 바다에서 벌어진 상처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고 보듬으며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대표 해양도시’도 ‘신해양시대’라는 항해도 그 의미를 다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 1기 과거진실화해위원회에 보고서에 기록된 생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안도 마을사람들은 함께 그 아픔을 감당했다고 한다. 안도 마을 사람들은 생존자들을 데려다 함께 치료하고, 가족 시신을 찾은 사람들을 함께 묻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도 먹고 사는 것조차 벅차던 시절, 안도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따스함이 지금 다시 필요하다. 더 많은 여수시민들께서 사건의 참상과 고통의 목소리에 깊이 공감해야 지나간 설움을 달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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