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특별인터뷰⑳] 2021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엄길수 추진위원장에게 듣는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추모제 이후 과제
"조그마한 추모공간이라도 생겼으면 했는데... 평화공원 생겼다"
'국화 한송이' 온라인 모금 운동 잔잔한 감동..."시민 여러분께 감사"
"71년만에 열린 민관 합동추모제, 희생자가 신고하라는 황당한 국가행정 잘못됐다"
"국민에게 국가는 어머니와 같다 국가와 정부는 미국의 책임을 물어라"

  • 입력 2021.08.09 16:52
  • 수정 2021.08.10 15:33
  • 기자명 글: 심명남 사진: 오병종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 소개글
올해 창간 10주년을 맞아 본지는 2월 22일부터 권오봉 시장 특별인터뷰를 시작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기관장들의 인터뷰를 연재 중이다. 본지 발행인 심명남 대표기자는 3월 4일 여수시의회 전창곤 의장, 17일 여수세계박람회장 강용주 이사장, 23일 문병훈 여수경찰서장, 4월 1일 여수해경 송민웅 서장, 16일 여수상공회의소 이용규 회장, 19일 여수소방서 김창수 서장, 27일 조신희 여수지방해양수산청장, 29일 해양경찰교육원 김성종 원장, 5월 7일 전라남도여수교육지원청 김해룡 교육장, 21일 여수수산업협동조합 김상문 조합장, 25일 여수광양항만공사 차민식 사장, 28일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 6월 1일 여수농협 박헌영 조합장, 11일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 17일 여수시민사회연대회의 김태성 상임대표, 22일 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최관식 지부장, 7월 8일 전국민안전교육진흥원 강길원 이사장에 이어 12일 장석웅 전남교육감, 8월 9일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엄길수 추진위원장과 대담했다. 다음은 김영록 전남도지사와 인터뷰가 이어진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엄길수 추진위원장이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관련 "국가와 정부는 미국의 책임을 물어라"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엄길수 추진위원장이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관련 "국가와 정부는 미국의 책임을 물어라"라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번 이야포 미군폭격 71주년 추모제는 안도가 생긴 이래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가장 많이 참석한 행사였어요. 올해 4회째인데 행사가 성공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의외로 짧은 시간에 널리 알려져 국가폭력에 관해 많은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어요. 우연히 시작된 이야포 추모제는 어쩌면 <여수넷통뉴스>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엄길수 추진위원장의 말이다.

지난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평화공원에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제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여수넷통 이사회는 이번 행사를 위해 5월 이사회에서 추모행사를 추진키로 의결했다. 이후 이야포 미군폭격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하면서 이야포 행사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이야포 미군폭격 추모제 엄길수 추진위원장이 선출되면서 이번 행사를 총괄 지휘했다. 

조그마한 추모공간이라도 생겼으면 했는데... 평화공원 생겼다

▲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평화공원에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제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이 열린 가운데 하늘꽃 추모조형물 아래 이춘혁 어르신의 생존자 증언록이 보인다
▲ 8월 3일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 평화공원에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위령제 및 추모조형물 제막식이 열린 가운데 하늘꽃 추모조형물 아래 이춘혁 어르신의 생존자 증언록이 보인다

엄길수 추진위원장은 “처음 시작할 때 위령할 수 있는 조그마한 추모공간이라도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의외로 빠른 시일안에 성과를 냈던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면서 “행동과 실천을 통해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에 한발 더 다가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엄 추진위원장은 향후 과제에 대해 “행사가 끝난 뒤 기사를 보고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에 대해 미국의 자료요구에 전적으로 협조하겠다는 한때 국방을 담당했던 전문가의 전화가 왔다”면서 “1950년 당시 미군폭격 자료를 요구했더니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승낙했다”라며 “이번에 지역구 의원님들이 특별법 제정을 약속해 주셨는데 각계각층에서 민간인 협의체 구성을 통해 특별법 제정에서 여러 가지 요구를 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야포 평화공원' 이름판 제막식 광경
▲'이야포 평화공원' 이름판 제막식 광경

엄 위원장은 “많은 분이 모금 운동을 알고는 있었지만 모금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도 했던 것 같다”면서 “시민들이 우리와 뜻을 함께 하고 있다. <여수넷통뉴스>가 중심이 되어 민간인 협의체를 빨리 만들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9일 오전 <여수넷통뉴스> 사무실에서 가진 엄길수 추진위원장과 나눈 인터뷰를 싣는다.

- 먼저 4회째를 맞는 이번 추모제 얘기 한번 해주시죠?

“지난 3일 무더운 날씨와 엄중한 코로나 정국에도 불구하고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추모제에 뜻을 모아 함께해주신 시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는 뜻으로 하는 추모제입니다. 추모제 식전 행사로 이야포 평화공원 입구에 명판 제막식과 위령 조형물 제막식에 이어 넋 올리기 ‘살풀이춤’이 여수시 시립국악단의 공연으로 시작됐습니다. 위령조형물은 최병수 작가, 추모시는 역사학사 주철희 박사 그리고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마지막 생존자이신 이춘혁 어르신의 증언글도 새겼습니다.

특히 위령조형물 '하늘꽃'은 이한열 열사 걸개 그림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최병수 작가의 작품으로 격렬한 파도와 피난선 모형의 배 형상 위에 희생자의 넋을 국화꽃과 별로 조각하여 설치하였습니다. 그밖에 사회적기업 <나무애그림> 김해룡 대표와 심명봉 추진위원 등이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함께 조형물 설치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71년만에 열린 민관 합동추모제

희생자가 신고하라는 황당한 국가행정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년을 맞아 이번에 열린 추모제가 민관 첫 추모제였죠?

“그렇습니다. 그동안 우리 지역 남면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 민간인 학살사건은 무관심 속에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지역 언론사인 <여수넷통뉴스>와 <여수뉴스타임즈> 그리고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가 민간인 주도의 추모행사를 가져온지 어느덧 4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은 민간인 주도로 추모제가 진행되어 왔지만 올해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추모제는 민관이 처음으로 함께한 추모제로 민간인 중심의 추진위원회와 시민단체, 지역 국회의원, 여수시의회, 여수시가 함께해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온몸으로 겪은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이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을 온몸으로 겪은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이 그날의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 이야포 미군기 폭격사건은 어떤 사건이죠?

“올해는 한국전쟁기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를 맞이하는 해입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1950년 8월 3일 6.25 전쟁 당시 이야포 해상에서 미국 공군 전폭기에 의해 발생한 민간인 학살사건입니다. 아직까지 종결이 되지 않은 사건입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은 여수시 남면 안도 이야포에 정박한 민간인 피난선을 향해 미군 전투기가 폭격한 사건으로 한국전쟁기 노근리 양민학살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 즉 ‘제노사이드’입니다.“

- 7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종결되지 않고 있어요. 왜죠?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이야포 해변 희생자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지만, 사건과 관련된 직접적인 폭격기록이나 관련 문서가 부족해 가해 주체를 특정하지는 못했다’라고 했습니다. 또 '이야포 폭격 이후 안도에서 뱃길로 20분 가량 떨어진 남면 횡간도 두룩여 해상에서도 조기잡이 배들에 대한 폭격을 당해 20여명의 어부들이 무참히 희생됐다‘라고 기록했습니다.

당시 대부분은 피난민들로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죽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오랜 세월 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는 한맺힌 사건으로 종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지역 남면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 민간인 학살사건은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야포 사건은 희생자들이 지역민이 아닌 피난민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두룩여나 여자만 미군폭격사건은 지역민이었지만 아직도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어요. 정부가 희생자들이 홈피에 신고하라는 어이없는 처방을 했어요. 희생자들이 다 죽고 없는데 어떻게 신고를 합니까?”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추모제가 올해로 4년를 맞고 있는데 사건 발생 68년만에 추모제를 열었던 이유가 뭐죠?

“4년전 당시 <여수넷통뉴스> 심명남 편집위원장과 남면 안도마을 여름 방충망 설치 봉사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방충망을 고치러온 이야포 주민 이사연 어르신으로부터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당시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춘혁 어르신의 사연을 전해 듣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시민들의 뜻을 모아 여수지역 시민 언론사인 <여수넷통뉴스>가 추모제를 시작하였습니다. 노근리 미군 전투기 폭격사건과 다르게 그동안 우리 지역 남면 이야포, 두룩여, 여자만 미군폭격 민간인 학살사건은 무관심속에 잊혀져가고 있었는데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국민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기 위한 민간인 차원의 노력과 함께 국가에 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촉구하고 싶었습니다."

-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 어르신의 증언과 사연은 어땠나요?

”이야포 피난민 미군기 폭격학살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은 이 땅에서 전쟁없는 평화가 후대에 영원히 지속되길 소원하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참상>을 증언하셨습니다. 좀 더 내용을 살펴보면 정부는 부산으로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분산 수용하고자 서울피난민수용소 사람들을 인근 도서지방으로 이동시켰고, 이춘혁 어르신 가족도 정부에서 징발한 배를 타고 통영과 욕지도를 거쳐 또다시 거문도를 향해 이동했습니다.

피난선이 남면 안도 이야포 해상을 지날 때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야포 곶머리에서 해상 감시하고 있던 경찰의 정박 명령이었습니다. 피난선은 이야포 해안에 정박하며 경찰 검문을 기다렸습니다. 1950년 8월 2일 오후였습니다. 다음날인 8월 3일 아침, 피난민들은 안도주민들이 마련해준 주먹밥을 먹고 경찰 검문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피난선에 나타난 것은 경찰이 아니라 미군폭격기 4대였습니다. 피난민들은 미군폭격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으나 미군전폭기는 태극기가 펄럭이는 피난선을 향해 무차별 기관총을 쏟아 부었습니다. 피난선은 죽음의 도가니로 변했습니다. 일곱 가족중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포대기에 업고 있는 세살배기 남동생과 여동생도 기관총을 맞고 바다에 떨어져 숨졌습니다.

피난선에서 살아남은 피난민들을 이야포 건너편 연도로 이동시키는 날 피난선은 불타올랐습니다. 기름을 끼얹어 삼일 밤낮을 불탄 피난선은 수장되어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수많은 피난민이 죽거나 부상당한 이야포 학살은 1950년 7월 26일 충북 영동 노근리 피난민 미군학살사건이 난지 일주일 뒤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나 오폭이 아닌 '미군기 피난민학살사건'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71년이라는 원통한 세월이 '묵종'속에 흘러 왔지만 피난선은 수장시켰어도 학살 진상마저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학살 목격자인 안도주민들과 이사연씨의 용기있는 증언이 지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원통하게 숨져간 수많은 피난민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는 학살의 주체인 미국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구순을 앞둔 어르신은 이 땅에 다시는 전쟁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가 겪었던 불행한 시대를 증언으로 남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야포 미군폭격71주년 추모식에 주철현, 김회재 의원과 전창곤 의장, 박현식 부시장, 박성미 시의원을 비롯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이 총 출동해 추모제를 치른 모습
▲ 이야포 미군폭격71주년 추모식에 주철현, 김회재 의원과 전창곤 의장, 박현식 부시장, 박성미 시의원을 비롯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이 총 출동해 추모제를 치른 모습

-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민간인 희생자 수는 아직 파악하긴 힘든 상황이죠?

“2010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는 이야포 해변 희생자들이 ‘미군의 불법적인 폭격으로 희생됐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냈지만, 사건과 관련된 직접적인 폭격기록이나 관련 문서가 부족해 가해 주체를 특정하지는 못했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사위는 호남지역에서 이뤄진 17건의 미군폭격사건을 조사했지만, 이야포와 두룩여 사건만 인정 결정하고 나머지는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정했습니다.

안도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팩트는 주한 미군 전투기의 발포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던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피난선 격침에 미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입니다. 대부분 피난민들이 희생되었고 돌아가셨지만 생존자의 증언과 이야포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약 350명 정도 태운 피난선을 폭격하여 150명 정도 죽은 사람을 해안과 주변에 두었다가 다시 배에 실어서 3일간 소각하였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와 역사학자들의 연구로 진상 규명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 현재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추진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습니까?

"지역 시민 언론사인 <여수넷통뉴스>와 <여수뉴스타임즈> 그리고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가 민간인 주도의 추모행사를 가져온 지 어느덧 4주년이 되었습니다. 특히 언론사의 미군폭격사건 보도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최초로 민관이 함께한 매우 의미있는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2021년 7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추진위원회 구성(엄길수 위원장외 추진위원 35명 합류) 됐고 당일 주철현, 김회재(여수시 갑,을 국회의원) 여수시 박현식 부시장, 전창곤 여수시의장, 박성미, 이미경, 정광지, 문갑태 의원, 이광일 도의원, 마지막 생존자 이춘혁 어르신, 소설가 양영제,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 박종길 향토사학자, 심명남 여수넷통 이사장과 주미경 문화위원장, 김경만 여수뉴스타임즈 대표, 해양환경인명구조단 여수구조대 박근호 대장 등 코로나 사태를 준수해 50명 이하가 참석했습니다."

국민에게 국가는 어머니와 같다
국가와 정부는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국화 한송이' 온라인 모금 운동 잔잔한 감동

이야포 해안에 방치되고 있는 피난선 잔해로 추정되는 침몰선의 모습 ⓒ박근호 대장
이야포 해안에 방치되고 있는 피난선 잔해로 추정되는 침몰선의 모습 ⓒ박근호 대장

- 올해 시의회 차원에서 이야포 관련 조례제정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했어요?

"늦었지만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추모제 이후 변화는 특히 언론사의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보도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또한 <해양환경인명구조대 여수구조대>에 의해 피난선으로 추정되는 침몰선이 발견되어 현재 위치를 확인해 놓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하루 빨리 침몰선을 인양해 진상규명을 바라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여수시의회가 ‘이야포사건’ 현장을 찾아 주민의견 청취로 시의회 차원에서 이야포 관련 조례 제정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올 6월 11일 박성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여수시 한국전쟁 중 남면 이야포 두룩여 해상 미군폭격사건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여수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후 2021년 7월 7일 여수시의회에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민간인추진위원회는 추진위원장 엄길수 외 여수시와 국회의원과 여수시의회 의원 등 추진위원 35명이 합류했고, 7월 22일에는 특별법 제정 추진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박성미 의원이 특별위원장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수고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희생자를 위령하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 향후 진상규명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고 할 수 있는데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앞으로 과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이젠 여수시와 정부가 나설 때입니다. 충북 영동 노근리 피난민 학살사건과 더불어 이야포 미군기에 의한 피난민 학살 사건은 미군이 한국전쟁을 어떻게 치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학살사건입니다. 이야포 미군폭격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앞으로 과제로는 미국 전투기의 출격사실을 워싱턴에 있는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가서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이야포 미군폭격 생존자와 마을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년에 피난선으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하였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침몰선을 인양해 진상규명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미군기 폭격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재조사와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합니다. 희생을 당한 유가족들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미군 노근리 학살 사건은 1999년 9월 29일, AP통신에 의해 전 세계에 알려진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부정해 왔던 미국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으로 기록됐었습니다.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의 전모를 파헤쳐 전 세계에 알린 3명의 AP기자는 2000년 언론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야포 미군 폭격사건도 지역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며 분발을 촉구합니다. 그리고 특별법 대비 차원에서라도 여수에서 발생한 국가 폭력사건은 특정 단체만이 아닌 시민의 협의체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번 21대 국회에서 특별법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어제 추모제 행사에 참석하신 여수시 주철현, 김회재 국회의원께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약속 하셨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 창간10주년을 맞아 여수넷통뉴스 심명남 대표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엄길수 추진위원장과 특별인터뷰 모습
▲ 창간10주년을 맞아 여수넷통뉴스 심명남 대표가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엄길수 추진위원장과 특별인터뷰 모습

- 특별법이 제정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고 기금마련을 위한 '국화 한송이' 온라인 모금 운동은 잔잔한 감동입니다. 끝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추진위원회는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추모제를 준비해 왔습니다. 3차례 현장답사와 7차례 추진위원회 회의를 통해 행사 준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추모조형물 ‘하늘꽃’ 은 부족한 예산으로 시작하였는데 여수시비로 450만원과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국화 한송이’ 온라인 모금운동(약 200만원)과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금 300만원을 모금해 위령조형물을 제작하였습니다. 모금에 참여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민에게 국가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국가는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국민들의 피맺힌 한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되어 희생자를 위령하며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학살 진상을 밝혀 억울하고 불명예스럽게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과 앞으로 살아갈 이 땅의 후손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존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지킬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권이고 인권이 지속 될 때 대한민국 평화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는 미국의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또한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라면 미군폭격기 민간인 학살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사죄해야 합니다.

끝으로 이야포 미군폭격사건 71주년 추모제가 전쟁이 초래한 비극과 인권 유린의 현장을 확인하고, 인권과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작권자 © 여수넷통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